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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포화 시대에 내뱉는 올드보이 고백담

trex 2009. 8. 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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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紙에 백스트리트 보이즈가 커버에 나왔을 때 되먹지도 않은 엄숙한 시선으로 대한 적이 있었다. 특별히 비분강개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생경함에 '파격적이군'이라는 품평을 해던 치기어린 시절, 버블검팝이 매체에서 '진지하게' 다뤄지는 풍토에 대한 부러움일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의미로 지금 시대 이 나라 아이돌들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 진지함의 방패를 들고 우리는 아이들의 종아리를 흘깃 훔쳐보고, 제복 차림에 아연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짝짓기 놀이를 하고, 자신보다 더 어린 아기를 돌보고, 화보를 찍고,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다 간혹 때론 자주 (자신들 또는 남의)노래를 외워 부른다. 누군가는 탈퇴를 하고 누군가는 이합집산을 하고 누군가는 싸이질을 하고 누군가는 곡을 만든다. 이 포화상태에서 우리들은 아이들을 허벅지 순서대로 은혜롭게 '격하게 아껴'준다. 부끄러움이란 유치원에서 잠시 배웠다가 희석된 개념일까. 시선으로 소비하고 청각으로 휴지통 비우기를 하고 촉각의 클릭질로 새로운 사진을 찾아 헤맨다. 당분간은 그럴거 같다. 그리고 나같은 일군의 부류들은 난 체하며 이런 세태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찬다.


그러다 문득 혀를 차던 나는 어떤 한 때를 상기한다.


지금에 비해 부끄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부끄러워했고, 더욱 취향을 은닉하던 시절 내가 소비했던 일군의 풍선껌들을 상기한다. 누군가는 이것들을 소위 '길티 프레져'라고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가 소비조차도 하지 않는 이들에게 저 명칭은 엇나간 면이 있다. 누군가의 현재이나 누군가에겐 과거였던, 어떤 이들에겐 애시당초 해당사항이 아니었던 사실들. 아이돌 애호의 어떤 취향과 일면들, 그 이야기를 고백한다.


잭슨5의 현대식 모델을 꿈꾸던 입지전적 인물인 모리스 스타(Maurice Starr)는 5인조 흑인 그룹 '뉴 에디션'을 조직해 나름의 성공을 거둔다. 이후 그들의 머리통이 굵어지고 각기 독립하는 양상이 (바비 브라운 등을 대표해)두드러지자 모리스 스타는 손쉽게 그 길에서 발을 빼고 다음 기획으로 이어간다. 그 이름 '뉴 키즈 온더 블럭'. 한 때의 '마키 마크'이자 지금의 '마크 월버그'가 하마터면 활동할 뻔한 이 백인 5인조 편성 그룹이 처음부터 성공가두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투어 버스에 몸을 싣은 아이들은 클럽가를 전전하며, '흑인식' 목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노래했어야 했다. 데뷔반 86년작의 가난해 보이는 앨범 커버는 보송보송한 털빛이 보일랑말랑한 분위기가 특히나 인상적인데 R&B풍의 발라드와 커버곡, 랩송, 훵키 넘버 등이 모인 앨범 구성은 훗날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놓고 치더라도 후작 [Hangin' Tough]보다 이 앨범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아무튼' 이 작품이 내게 첫 뉴 키즈 온더 블럭이었다는 사실이다. 2,000원과 3,000원대 사이에 놓인 카세트 테이프 구매비의 아슬아슬함에 나는 항상 신중했어야 했고, 어떤 일부는 운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다. 내 느낌을 믿는가. 눈을 감고 감각에 의존하여라.라는 사부님의 말씀...따윈 없었고 나는 될 수 있으면 안전한 길을 가려 했다. 가볍게 시작한 구입과 감상이 멤버들 사진 모으기와 관련 문구 수집으로 이어질줄은 정말 몰랐다. 내 나이대 아이돌 애호의 대표적 양상이 강수지 책받침 정도였는데, 나는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참 까마득한 기억이다. 더욱 까마득해지길 간혹 바라기도 한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다섯 명의 남자애들보다 안전한 길이었다. 게다가 프랑스의 여자 싱어 엘자와의 듀엣이라는 방어막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엘자의 청명한 보컬색 덕분에 남자 아이들은 흡사 엘프 강림의 꿈이라도 꾸는 듯 했는데, 실제로 사진으로 접한 엘자는 '미인형' 외모 정도였다. 하지만 어쨌거나 구매 원인의 원천은 글렌 메데이로스 자체였다. 후작 싱글에서의 바비 브라운 피처링 덕일수도 있었고, 하와이 출신의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 않았던' 안정된 외형(정확히는 체형)이 주는 안정감 덕일수도 있었다. 앨범 [not me](88) 역시 안정된 발라드 넘버들이 있던 작품이었다. 훗날 이 땅의 학생들이 신승훈의 앨범을 들을 때 기분이 그랬을까.


하지만 아까운 용돈이 휑하게 날아가는 날도 있게 마련. 뉴 키즈 온더 블럭의 백보컬이 버틴다는 싱글의 성공을 믿고 구매한 토미 페이지의 [Paintings in My Mind](89)는 명백한 실패였다. 적당히 허스키하지만 궁극엔 여린 (그리고 불안한)음색, 엘비스 프레슬리 클론의 겉가지 모델 같은 외모의 토미 페이지는 한국에선 나름 상종가였다. 하지만 오래 들을 거리는 아니었다. 글렌 메데이로스의 앨범엔 있고 토미 페이지엔 부족했던 뭔가는 무엇이었을까. 고민을 되짚어 보지만 모르겠다. '노래들이 별로였어요'라는 말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다. 같은 반 아이들은 할로윈 카세트 테이프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나는 이래도 될까 싶었다. 넌 취향이 이러니 이게 어떠냐 누군가 윌슨 필립스 녹음반을 건네주던 시절이다.


결국 말이 나온 김에 '여자 목소리' 앨범도 들었음을 밝힌다. 하지만 '아빠, 설교는 집어 치우세요'의 주인공이 아닌 포니 캐년사 발매에 빛나는 '동아시아 타겟' 아이돌이었음을 솔직히 토로한다. 알리사 밀라노는 지금 뭐하는지 솔직히 관심도 없는 입장이지만 당시 '하드 바디 무비'인 [코만도]에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딸네미로 분한 처자였다. 아버지 아놀드가 목숨을 바쳐 적들을 메다 꽂고, 꼬챙이로 꽂아가며 구할려던 귀여운 딸...이라는데 난 그 영화를 정작 본 적도 없었다. 굉장히 어처구니 없는 동기 중 하나인 '그냥'이라는 이유로 산 앨범 [The Best in the World](90)엔 동아시아 아이들을 겨냥한 댄스팝 넘버들이 '아무 색깔없는' 음색에 실려 담겨있다. 이 앨범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한반도의 산'다라'박의 필리핀 시절 앨범과 한번 경중을 겨루고 싶다는 생각도 들긴 하다. 물론 시간이 아깝겠지만.


문제는 내가 이 앨범을 제법 즐겨 들었단 사실이며 - 들을 목록이 몇 개 없다는 현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토미 페이지 보다 귀에 달고 살았던 걸 보면 정말 좋아했던 앨범인게 사실인 듯 하다. 요새도 간혹 몇몇 멜로디는 기억이 난다. 하긴 아이돌팝의 본질이 쫀득한 식품첨가물의 중독성일진대 이는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다만 알리사 밀라노의 앞 앨범과 뒷 앨범 모두 추가 구매 대상은 아니었는데 이는 참 다행일런지도.


그렇게 중학생은 고등학교 입학부터 갑작스레 '교복 부활 세대 해당자'가 되었고, 앞 자리 녀석의 'Blind Love를 노래방에 불렀다!'라는 자랑을 들으며 뒷자리 녀석과 '세계최고 동양최대~' 가사를 따라하며 시시덕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시대가 달라져가고 있었다. 뉴 키즈 온더 블럭의 사진집과 다이어리가 치워진 자리에 다른 것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뒤에 만난 [Use Your Illusion Pt.1]이 어떤 개인의 취향이 가진 일관된 경향을 뒤틀었다는걸 본인도 전혀 몰랐다고 전해진다. 물론 지금도 앞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예상을 하며 버팀목 같은 취향을 쥐고 살지는 않는다고 덧붙여 전해진다. [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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