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유년, 길창덕 선생님. 본문
덜컹거리는 밀양발 구미행 무궁화호(또는 통일호) 속의 세 가족(그땐 동생이 없었다). 아들인 나는 자꾸만 부모님의 눈치를 봤다. 큰집에서 받은 용돈은 이미 어머니가 가지고 계시고, 나는 그 돈 중 일부를 [어깨동무]나 [보물섬]이 사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땐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얼마나 무섭던지.
부모님은 책의 한켠에 있는 하얀 빈 공간이나 달력 뒷장의 빈 공간을 만화로 채우는걸 싫어하셨다. 가당치도 않게 아들이 의사가 되길 바랬던 - 어린 나이에도 갈라진 사람들의 뱃속을 보며 수술해야 한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 그들에게 만화란 공부할 시간을 방해할 요소에 불과했고, 식사 시간에 KBS의 [딱따구리]를 보길 좋아했던 아들의 장래는 걱정거리였다.
큰 인심쓰듯 허락을 받을 때의 기분은 어찌나 기쁘던지. 경산을 지날 때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동대구가 지날 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까 고민을 하고, 왜관을 지날 때 생각한 대사를 부모에게 꺼내고, 공단 지역이 보일 때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구미역에 도착하면 나오는 춘양당서점에서 두툼한 [보물섬]을 샀었다. 내가 산 그 달은 지난달보다 더 두껍길 바라면서...
금오국민(초등 아님)학교에서 금오산 올라가는 길목에 시립도서관이 설립되었을 당시 간행물실이었던가, 어린이책들이 잔뜩 있는 1층 공간에서 [소년중앙] 등 만화책만 보다가 공무원 아주머니의 눈총과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남의 집 자식에게 그렇게 쉽게 혼을 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교 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남은 시간에 빈 노트 뒷편에 연재 만화를 그리고 친구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윤승원 아저씨도 있었고 신문수 아저씨도 있었고, 다른 한편엔 김형배 아저씨, 고유성 아저씨, 박동파 아저씨, 장태산 아저씨, 이상무 아저씨, 이향원 아저씨 등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다 좋아했었지만 내게 만화를 보고 배 부둥켜안고 웃게 만든 처음의 경험을 선사한 사람은 길창덕 아저씨였다. 누군가에겐 그 대상이 김수정 아저씨였을 것이고, 고우영 아저씨였겠지. 그런 경험의 원형질을 선사한 길창덕 아저씨의 만화들은 아직도 간혹 기억이 난다.
만약 고집세와 꺼벙이가 한 동네에 살았다면? 아 정말 그 동네는 제법 왁자지껄하지 않았을까.
+ '꺼벙이’ 길창덕 화백, ‘지족상락(知足常樂)’ 네 글자 남겼다.
: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1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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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부터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이야길 보도로 보곤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준비할 새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금도 만화를 보며 간혹 웃기는 하지만 그때의 웃음과 지금의 웃음의 의미는 다른 듯 하다. 무턱대고 고집을 피우다 부모와 선생님을 뒤집어지게 만들고, 멋도 모르고 집을 나선 길에 모험을 하다 길을 잃고 엉엉 울며 집에 돌아오던 주인공들. 그 이상한 애틋함과 교훈, 그리고 반항의 상상력들. 이 시점에서 내게 다시 자리 잡기 힘들 웃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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