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리뷰 : 이문세 [5집 -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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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00대 명반 리뷰 :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81122
오늘 실렸네요. 요즘 빅뱅이 이상하게 리메이크한 - 애초에 선곡 자체가 문제였던 - '붉은 노을'에 대한 아주아주 짧은 언급도 있고... 허허. 아무튼 작성한 원문입니다. 링크한 글엔 네이버 담당자 재량에 의해 문장의 퇴고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부족한 글이지만 잘 봐주시길. 아 원고 송고는 9월경 했습니다.
故 이영훈과의 만남, 새로운 가능성
‘별밤지기’라는 별명이 그를 가수보다 DJ라는 직책으로 기억하는 초반의 사정을 짐작케 한다. 그렇다. 통기타 하나 든 재치있는 입담꾼에 가까웠던 가수 이문세는 ‘파랑새’ 등의 노래와 ‘밤의 디스크쇼’ 프로그램으로 80년대 초중반 인지도를 서서히 넓혀가던 중이었다. 그를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끔 만든 운명적 계기는 작곡가 이영훈, 편곡가 김명곤과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이리하여 80년대 후반 세련된 팝과 처연한 한국적 스탠더드 재즈가 잘 배합된 팝발라드의 시대가 새로운 개국을 알렸다. 문학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유려한 언어, 클래식한 작법의 멜로디가 이문세의 3,4,5집을 연달아 명반의 위치로 자리매김시켰다. 이는 故 이영훈 덕이기도 했지만 그의 곡을 잘 소화할 수 있었던 이문세 자신의 탁월한 능력 덕이기도 했다.
팝 발라드의 황금시대 개막.
어떤 음악인들에겐 꿈같은 명제 또는 목표가 있다. 그건 다름아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설득력 있는 좋은 음악을 만든다’라는 것인데,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명제를 목표로 삼은 상당수의 음악인들은 명백한 한계 때문에 제풀에 쓰러지게 마련인데, 그런 경우가 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서 더욱 요원한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문세의 5집 [시를 위한 시]는 그 위치에 등극할 수 있었던 경우다. 시대와 음악인의 역량이 만난 행복한 경우라 하겠다.
당연히 이 길이 절로 열린 것은 아니었다. 무명에 가까운 입장이었지만 이영훈의 곡 ‘소녀’의 멜로디를 탐냈던 싱어 이문세의 노력과 그의 목소리를 허락한 작곡가와의 행복한 만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가세한 김명곤의 편곡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은, 오히려 앞으로의 움직임을 선도한 한국형 팝 발라드의 명맥을 제시한 계기가 된 것이다. 스탠더드 재즈풍의 분위기와 클래식한 분위기의 편곡은 다소 신디사이저 일변도의 가요 편곡과 차별화를 이루면서 일종의 ‘발라드 고급화’를 유도한 것이었다. 3집에서 조금씩 보였던 가능성은 4집 [사랑이 지나가면]에서 만개하는데, 문장 그대로의 표현인 ‘한 곡도 뺄 곳이 없다’는 진풍경을 우리는 목격하게 된다.
영화 [록키]에 나온 트레이너와 복서의 관계로 자신과 이문세와의 관계를 설명하던 이영훈은 5집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에 와서 완숙의 경지를 보여준다. 조금 서둘러 말하자면 5집 이후의 협업은 예전 같지 못했고 7집 이후 실질적인 와해로 이어졌다.(물론 이후 관계 복원이 있기는 했었다.) 이런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5집을 더욱 완고한 명반의 위치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따스한 톤의 성인 취향의 현악이 곡 전반을 감싸는 ‘시를 위한 시’부터 이미 전작에서 진일보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나긋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이문세의 보컬은 일순 감정선이 고조될 때는 한층 상승하며 뻗어나간다. 이영훈의 시적 가사와 이문세의 창법이 가진 장점이 잘 배합된 행복한 만남이다. 뒤를 잇는 ‘안개꽃 추억으로’는 가히 감정의 파장공세라 일컫을만 하다.
이별 이후의 쓰라린 가슴속, 오래되어 잊혀질라 다시 되새기는 옛 연인에 대한 연정을 아찔하게 담은 가사는 다시금 곱씹어도 좋다. '내 맘을 쉬게 하여줘 창가에 비치는 너의 모습/ 흩날리는 빗자락에 쌓여 어리운 빗물인 것을' (안개꽃 추억으로) '돌아보면 아주 멀리 가진 않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어 / 그대 발자욱 세월 속에 흔적도 없네 / 너를 잃은 내가 아쉬워' (기억의 초상) '창밖엔 어둠뿐이이야 내 오랜 빈 상자처럼 / 깨끗이 지워버릴 수 없는 건 내 오랜 그녀뿐이야' (내 오랜 그녀) 물론 이런 정서의 최고봉을 보여준 것은 타이틀곡 ‘가로수 그늘아래 서면’이었다. 이별이라는 찰나의 순간을 영겁(永劫)의 시간까지 지속시키는 이영훈식 로맨티시즘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런 처연함을 일순간에 씻게 해주는 박진감 넘치는 트랙 ‘붉은 노을’의 히트도 의미 깊다. 이 곡의 성공은 이문세와 무대 안 관객들 사이의 교감을 한층 강화시키는데 그 의미가 크지 않았을까. 그런 사실을 상기한다면 이 앨범의 성공은 지금 시점에서 되짚어보면 놀라운 점이 있다. TV라는 매체에 기대지 않은 언더의 위치에서도 고급 가요 앨범을 대히트시킬 수 있었던 시대. 그렇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 MBC의 연말 가요시상식을 제외한 거의 일체의 자리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이문세의 독특한 위치는 오히려 ‘진정 음악하는 이’의 이미지로서 그를 인식시킨 점도 크다. 이는 훗날 공연 무대의 한 아이콘으로 이문세를 자리매김하게 한다.
5집은 ‘광화문 연가’같은 스테디셀러 트랙만으로 기억하기에 아까운 앨범이기도 하다. 4집에 ‘그녀의 웃음소리뿐’이 있다면 5집엔 ‘끝의 시작’이 있으며, 3집 ‘빗속에서’의 재즈풍 분위기가 그립다면 5집의 ‘기억의 초상’도 다른 맛으로 음미할만 하다. 이렇게 전 세대가 향유할만한 걸작 대중음반이 탄생하였다. 그 뒤를 이어 음반제작자에겐 새로운 명제가 주어졌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포착하자.’ 이 역할을 변진섭의 데뷔 앨범이 이어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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