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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07 한국 영화 지리상에서의 [한공주]
  2. 2009.05.30 [마더] (5)
posted by 렉스 trex 2014. 5. 7. 19:04

밀양에서


이창동의 [밀양] 마지막 장면. 누추한 인간의 바닥 위에 조성된 작은 화단과 그 위를 내리쬐는 햇살을 보여준다. 밀양은 그 단어 자체로 은밀한 볕을 뜻하는데, 그 언어의 힘만으로 한 여인의 망가진 육신을 말없이 보듬어 안는다. 신성함의 경지이면서도 거기까지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선, 자리매김으로서의 권능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은 탄식을 낳았는데 나는 21세기 들어서 이창동에 의해 ‘문예영화’가 재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오아시스]로 인한 ‘개인적인 마음 상함’은 이로써 풀어지게 되었고, 그의 행보는 내 감정과 처지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시]로 이어져 하나의 경지를 낳았다.


지방도시 밀양은 은밀한 볕이 내리쬐는 죄 사함의 지리적 배경이 되었지만, 정말 훗날 밀양은 여중생 사건에 인해 인간의 마귀화와 시스템의 흉물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위치로 공교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링크] '여중생 집단성폭행', 비공개 약속 깨고 피해자에게 폭언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0017831)


[시]의 주된 무대는 정작 밀양이 아니었지만 영화는 마치 전작 [밀양]의 무대에서 이어지듯 첫 장면을 연다.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 저편에서 소리 없이 여중생 교복 하복을 입은 사체가 떠내려온다. 이미 사체인 처지이므로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사연을 복기할 수 없다. 이 난처함은 [마더](봉준호 감독)의 옥상 위에 널린 ‘교복’ 사체 여학생과 유사한 처지이다. 자신의 이름과 사연을 호명할 수 없는 여학생들의 사체를 보여준 뒤 한국 영화의 일부 일군은 예술의 위치를 고민하고, 인간 윤리에 대한 고뇌를 토로하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부모들은 윤리적 고민을 애써 밟고, 아이의 복수를 사법의 영역을 넘어 직접 감행하기 시작했다. (김용한 감독의 [돈 크라이 마미],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 등) 아이들은 반성하지 않으며 죄의 영상을 담았으며, 그럼으로써 부모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엔 자경 행위에 대한 흥분된 죄책감을 안고, 광경을 두 눈 뜨고 봐야 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한공주]는 여기 다른 지점에서 걸어온다. 주인공 한공주는 자신을 호명할 줄 알고, 사연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 그러나 어머니는 말을 자르며, 아버지와 ‘남자’ 선생님은 자꾸만 핵심을 의도적으로 비켜난 이야기들을 한다. - ‘수영’이라는 행위를 최소한의 의지를 갖추며 서툴게나마 배워간다.

 

* [한공주]의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반드시 ‘밀양 사건’을 두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발언했다.

* 한공주라는 이름은 공교롭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맡은 배역과 동명이인이다.



인천에서


[한공주]의 주된 배경은 인천이다. 그렇다.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 이해준 감독)와 [파수꾼](윤성현 감독)에서 교복 입은 남고생 아이들이 맥아더 동상 아래와 차이나타운을 쏘다니고, [고양이를 부탁해] 의 여학생들이 불투명한 스무 살 앞날을 지레짐작도 못 하던 그곳 말이다. 이들 작품 중 [파수꾼]과 [한공주]는 다소 닮아있는데, 동년배의 죽음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처지의 아이(들) 이 놓여 있고 주인공(들)의 사연을 밟아가는 간헐적인 과거씬들의 삽입 연출들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반면 [파수꾼]의 연출은 사연에 대한 여백을 의도적으로 만들지만, [한공주]의 연출엔 외면하고 싶은 사연의 여백조차 채우는 난폭함이 서려 있다. 폭력을 행사할 때 아이들은 고릴라의 탈을 쓴 40여 마리 군집의 짐승에 가까운 상태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점은 [시]의 ‘부모들’처럼 이 영화의 어른들 역시 여전히 ‘합의’라는 편의적인 표현의 폭력을 지속해서 가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면 죽음의 사연을 ‘듣고자 하는’ [파수꾼]의 조성하가 보여주는 절박함은 투박하게나마 차라리 신사적인 면모가 있다.) 즉 40여 마리의 짐승을 낳은 것은 물론, 짐승의 상태에 대한 입 닫음을 부탁하는 80여 마리의 어미 짐승들이 엄연히 이 세상엔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한공주가 애초에 수영을 배우려 한 목적, 단 25미터 완주만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해보고자 했던 원동력은 이렇게 봉쇄된다. 오만 진심을 내보이며 강아지 같은 충심으로 다가온 새 친구 은희마저 대사로 표현한다. ‘거긴 나가는 길 없어.’


* [링크] 성폭행도 억울한데…밀양 여학생 냉대 끝 가출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6/17/20070617000319.html



한강에서 


서울은 ‘배신자’이자 유일하게 한공주에게 환한 미소를 허락받은 어머니가 있는 곳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어머니가 있는 곳은 동물병원이 밀집한 충무로 일대라고 한다.) 앞에서 적은 대로 어머니는 이런 한공주의 말을 애초부터 자르고, 진짜 ‘배신자’가 된다. 아버지에게 건 마지막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멜로디의 앰프 소리, ‘남자’ 선생님의 찜질방에 간 사실에 대한 답변, ‘잘했다.’ 등이 주는 아득한 절망감은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세상 속에서 더 나빠진 한공주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공주가 택한 종착지는, 앞서 잠시 거론한 봉준호 감독이 옥상에 여학생 사체를 [마더] 속에 널기 전 [괴물]을 낳은 바 있는 ‘한강’이다. 괴물은 ‘관대함’을 요구하는 미국에 의해 한국이 피치 못하게 낳은 생명체이며, 한강 변에서 어느덧 튀어나와 종 내엔 ‘교복’ 입은 현서를 냉큼 삼켰으나 위액에 미처 녹이진 못한 상태로 대지 위에 불타 죽는다. 한공주는 햇살 내리쬐는 인간의 누추한 바닥 대신 이 한강에 온몸을 담갔으며, 될 수 있는 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나올 생각은 없는 듯 보인다.


이것은 하천에 내쳐진 옛 친구 화옥이 지속해서 환기하는 죄의식이 일으킨 씻김 또는 동일화 같기도 한데, 대신 한공주는 출연한 배우들이 후시 녹음한 응원 구호를 들으며 희망의 물길 질을 한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는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객석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감상 차이는 극명할 터이다. 작지만 성실한 영화가 예산의 문제로 의도했던 CG 효과가 연출의 입장과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일 수도 있겠다. 허나 근본적으로 그런 부차적인 문제를 떠나서 한공주를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분명한 사실이 나로 하여금 영화가 보여주려는 희망의 기운마저도 끝없는 슬픔으로 도치되어 비친다.


* 이 영화가 내게 준 몇 가지 사소한 불만과 이 영화가 가진 좋은 강점 중 하나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미처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뜻하기도 하다. 이 부분은 다른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언급해 주시리라 믿는다. [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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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렉스 trex 2009. 5. 30. 22:05

[꽃보다 돼지껍데기, 원빈보다 세팍타크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쌉쌀한 맛의 톱밥이 수북한 사막의 모습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질척거리고 끈끈한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어다니는 거대한 행성의 모습일 것이다. 하단 포스팅 [관악산行]에 등장한 아이는 앞으로 나이가 먹어도 기뻐도 슬퍼도 신경질이 나도 화가 나도 엄마를 부를 것이다. 용돈을 구걸할 때나 사고를 칠 때나 배우자를 소개할 때나 질척한 두 남녀는 지리하게도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망 안에서 서로를 분리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초법적인 존재다. 그녀는 아들의 타락을 못내 방조해주고 과오의 발걸음을 차분히 뒤따라오며 덮어줄 것이고 변화를 안쓰럽게 긍정해 줄 것이다. 봉준호는 이 초법적인 모성의 전제을 극단으로 밀고간다. 어떤 사람들은 [마더]를 [괴물]과 [설국열차]라는 거대 프로젝트 사이에 끼인 소품으로 인지하고 싶겠지만, 정말 소품은 [도쿄]의 에피소드일 뿐이며 [마더]는 그의 전작들이 그러하듯 여전히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다. 또다른 어떤 사람들은 [살인의 추억]을 상기하며 애써 비교하고 싶겠지만 이런 비교우위 설정도 별로 도움은 안되는 듯 하다. [마더]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최근 박찬욱의 [박쥐]와 더불어 [마더]를 보고 느낀 점은 이 두 감독들이 점점 '계급의 문제'에서 '윤리학의 문제'로 시선을 옮기는 듯 한다는 인상이었다. [박쥐]는 빼도박도 못할 '러브멜로 영화'였고, [마더]는 - 어떤 의미에서 [괴물] 이후의 - '가족 영화'이지만 이 영화들이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상당수의 대목들은 '판단의 준거와 선택, 윤리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불편한 기운을 형성하는 것은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인 선택의 문제, 그리고 은폐하기 보다는 대체로 드러내놓고 묘사하는 폭력적인 장면을 (그대로)응시하게 만드는 카메라의 시선, 마지막으로는 떠받들기 쉬운 단어 중 하나였던 '모성'을 불경스럽게 훼손하려 드는 섹슈얼한 정서들이다.(니가 그러면 안돼지~ / 자고 갈려? 흐흐 같은 대사들, 그리고 하이얀 허벅지.)


[주옥 같이 엄선한 로케 장소를 넘나드는 엄마]

이 위태로운 영화 안에서 김혜자의 얼굴은 완전히 스펙터클인데, 그녀의 작은 체구가 보여주는 낯선 몸짓과 깜빡거리는 눈망울은 '바보 흉내'에 불과한 하찮은 연기를 펼치는 원빈과는 애초에 승부가 안된다. 영화는 친절하게 정보를 빵가루마냥 초반부터 흘리고, 이야기는 얼기설기 엉성하게 뭉쳐진다. 그러다 어느 지점부터 자연스레 '확' 터진다. 이후 기다리는 파국... 마지막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붉은 햇살은 지금껏 정면을 돌파해온 어머니의 원초적인 에너지를 경이롭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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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un 192km 2009.05.31 11:36 신고  Addr  Edit/Del  Reply

    김혜자의 저 사진은..
    마치 원령공주의 모습 같네요..-ㅂ-;;
    ..술이 덜 깼나 봅니다요..;;

  2. evans. 2009.06.03 16:49  Addr  Edit/Del  Reply

    원빈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입체적인 배우가 했다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박카스의 추억; 때 저는 원빈이 엄마를 자극해서 자기를 여기서 빨리 나가게끔.
    언제나의 엄마처럼 뒤치닥거리를 해주었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봉준호 감독은 "누가 누구를 지배하려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춰보는것도 재미있을것이다. 라고 얘기하네요.
    디테일은 다르지만 살인의 추억에서 박해일을 보던 것과 비슷한 시선으로 원빈을 다루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아 그나저나 참...혜자언니.
    투썸즈업.

    • BlogIcon 렉스 trex 2009.06.04 11:17 신고  Addr  Edit/Del

      안 그래도 동행자가 영화를 본 그 날,
      차라리 '박해일이었음?'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의외로 그럴싸할지도요.(너무 멀쩡한 허우대를 가졌지만)

  3. BlogIcon emptycafe 2009.07.03 18:21  Addr  Edit/Del  Reply

    오랜만에 와서 왕창 글읽고 갑니다. 글이 더욱더 명문이 되신듯.^^
    트랜스포머에 집중해 계실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