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봉준호 (4)
Rexism : 렉시즘
[기생충]의 초반은 봉준호의 복귀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한국영화 속의 광경처럼 보인다.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는 와이파이 신호 잡기 장면과 비롯한 가벼운 웃음을 나오게 하는 장면들의 유머들이 그렇게 타율이 좋진 않았고, 박서준이 등장할 땐 내가 한국 영상물에서 느끼는 따분함이 극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던 작품은 가족 하나둘이 조여정과 이선균의 집안에 슬슬 틈입하던 대목들에서 슬슬 [플란다스의 개] 당시의 리듬을 상기시켰다. 데뷔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국 사회의 권태로움에 균열을 내며 자신만의 리듬감으로 세상없던 광경들을 만들던 그 재능의 시대 말이다. [괴물]의 뉴스 장면에 나온 감염 위험성 경고처럼 송강호 가족들은 위태롭게 계급의 주제조차 망각한 채 ‘선을 감히 넘어 들기’ 시작했..
변희봉이 할아버지로 나오는 초반부 미야자키 하야오풍 (애니의)실사 영화 부분이 지나가면, 칸 국제 광고제 수준의 교훈극이 진행된다. 그리고 액션의 감각은 감독 본인의 [괴물]과 제법 흡사하고, 정재일의 음악은 기대보다는 이하거니와 다소 정신사나움을 부추긴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인지 폴 다노를 위시한 헐리우드 배우들은 뭔가 B급 연기(B급 캐릭터인가?) 이상을 발휘하지 못하고, 옥자와 미자의 분전기만이 극에 대한 시선과 관심도를 붙잡아둔다. 봉준호의 실패작인가? 그렇게 규정지을 폭력을 행사할 필요도 없고 그럴 자격도 없다고 본다. 그와 스탭들이 뿌린 노력과 숨이 벅찰 노력들은 곳곳에 박혀있고, 이 영화의 교훈 역시 굉장히 명료하다. [설국열차]와 더불어 그가 엔딩에 뭔가 희망의 조짐을 남기는 것은 한번쯤 ..
영화를 보고 계급을 이야기하는건 쉬운 일이다. 너무 쉬운 일이라 거기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감독이 파놓은 쉬운 함정에 빠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조금 축소해서 생각했다. 한 남자가 햇볕을 쬐는 삶을 찾기 위해 심연을 파헤치고 파헤치다 급기야 당도한 마지막 곳이 실은 자신마저 시커멓게 집어삼킬 진정한 심연이었다는 아득한 발견의 이야기라고. 그런데 이 심연을 같이 파헤치며 걸어온 불안한 동행자 - '냄'! -는 주인공이 택한 '직진'의 길이 아닌 다른 쪽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채로웠다. 급기야 이 남자가 못 이룬 다른 길 찾기의 성과는 2세가 성취한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은 누군가에겐 절망으로 보일수도 있겠다 싶다. 막말로 설원에 피칠갑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대지 위, 지구..
[꽃보다 돼지껍데기, 원빈보다 세팍타크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쌉쌀한 맛의 톱밥이 수북한 사막의 모습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질척거리고 끈끈한 거대한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천년이고 만년이고 기어다니는 거대한 행성의 모습일 것이다. 하단 포스팅 [관악산行]에 등장한 아이는 앞으로 나이가 먹어도 기뻐도 슬퍼도 신경질이 나도 화가 나도 엄마를 부를 것이다. 용돈을 구걸할 때나 사고를 칠 때나 배우자를 소개할 때나 질척한 두 남녀는 지리하게도 엄마와 아들이라는 관계망 안에서 서로를 분리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는 초법적인 존재다. 그녀는 아들의 타락을 못내 방조해주고 과오의 발걸음을 차분히 뒤따라오며 덮어줄 것이고 변화를 안쓰럽게 긍정해 줄 것이다. 봉준호는 이 초법적인 모성의 전제을 극단으로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