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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지하철 플랫폼에서 다음 차를 기다리다 휘어청대는 취객이 다가올 때 얄궂게도 나는 생명의 위협을 가볍게 느낀다. 그가 어떤 이유에서 거대한 상실감의 무게를 안은 채 나를 철길로 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도시괴담 수준의 상상력을 발휘한 탓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하철에 올라타면 퀭한 눈매의 중년 사내가 가스를 살포하고 이내 내가 대형사고의 피해자가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묻지마 증오 범죄'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 살아오면서 마주친 수많은 대형 사건사고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이미 죽음이라는 명제 자체가 내가 20대를 넘기는 시점에서 비일비재하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도의 차이일뿐 죽음은 내가 걷는 일상의 겹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팔락이고 있었다. 나는 긍정적이려 하고 밝으..
- 2년전 조모님 별세 때에 슬펐던 것은 조모님의 일 자체보다 그녀의 영정을 기다리던 큰댁 방의 조부님이었다. 조부님의 눈안에 맺힌 눈물의 덩어리들을 잠시도 주시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간 이후로 그는 급격히 노쇠해졌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나온 둘째 아들이 - 나의 부친이기도 한 -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 노쇠는 눈에 띄게 진행이 되었다. 몸은 하체부터 무너졌고, 언어는 흐릿해졌고, 청각은 우리 세대와 차단이 되었다. - 조모님이 세상을 떠난 것은 2년전의 6월 첫날이었던가. 조부님은 2009년 6월 29일 오전 7시 30분, 그가 가지를 뻗었고 뿌리를 내렸던 밀양, 그곳 한 병원 속의 하얀 벽 아래 숨쉬기를 멈추셨다.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깔린 철도 위를 관리하던 공무원직을 그의 큰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