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trex 2019. 6. 22. 14:27

“우리 학교 보건 교사 쌤이 퇴마사였대.” 이야기 [보건교사 안은영]의 작가니 이런 가지뻗기가 가능하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정세랑 작가의 첫 단편소설집이었대. 난 몰랐네. 느슨하지만 흐릿한 연계로 이어진 공동체 개개인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맥을 잡히게 하고(웨딩드레스 44), 이런 전작 [피프티 피플]을 연상케하는 주제의식은 환상적인 설정의 형태로 보다 구체화되고(해피 쿠키 이어), 다시금 연대와 소극적인 형태로나마 지탱을 주는 연대의 중요함을 이야기한다(이혼 세일). 여기에 수줍게 작가가 사학 전공임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가상 역사물의 서사를 빌어 페이지를 후두둑 넘기게 만들고(알다시피, 은열), 테크놀러지는 작가가 여러 작품들을 통해 강조한 선한 인간들의 노력과 최선을 실현케하는 도구로 나온다(보늬). 그래 가상 역사물. 또는 SF식 사고가 여느 장편물 보다 단편물의 외형을 빌어 보다 적극적으로 지형도를 확장하고(이마와 모래), 민속과 토속의 손을 빌어오는 ‘정세랑 또는 안은영식 세상’은 여기에도 잘 굴러가고 있다(옥상에서 만나요, 영원히 77 사이즈). 

정세랑 초입자에게도 팬들에게도 각기 다른 실감으로 다가올 재미의 조각들. 천진하고도 치열하게나마 작가가 지속적으로 그만의 방식의 형성하는 여성 서사로써도 여전히 좋다.

옥상에서 만나요 2 (큰글자도서)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미디어창비 20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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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x 2019. 4. 27. 09:48

병원이라는 공간을 영상 매체가 선호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연애는 기본에 가장 그럴싸한 이성애 기반 유교 가족 휴먼 스토리를 넣기에 가장 무난하고(병과 죽음, 극복이 있다!) 근간에는 정치 드라마 뺨치는 욕망과 가투가 서린 서사도 가능하고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미니어처 화조차 가능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세랑 작가가 이 한정된 공간, 어쩌면 드넓게 확장할수도 있을지 모를 이 공간의 주변부 곳곳에 50명을 배치한다.(한 독자는 정확히 51명이라고 한다) 잘 읽히고 재미난 책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겐 [보건교사 안은영] 보다 [재인, 재욱, 재훈] 계열로 읽혔다. 그렇다. 덜 미숙해도 언제나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른 마음을 먹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세상에 한 톨씩 기여를 하는 그런 이야기다.

아 그래도 악역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사고를 저지른 어떤 가해자가 한 명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훈육과 습속의 관성으로 후배의 고막을 나가게 만든 중년이 있다.(끝까지 반성하지 않는다. 도태되어 곰팡이 나는 빵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나머지들은 대체로 선의가 있다. 이들의 선의는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의 풍경을 그들 자신도 알게 모르게 올곧게 유지하는 작은 보탬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그 기여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도 세상은 강인하게 버티고 끝끝내 변하지 않을 둔함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을 넉넉하고 넓게 둘러본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씩씩함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장애, 다양한 성적지향, 대안적 가정 형성의 가능성, 서울과 경기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다인종 사회구조의 변화, 무엇보다 중요한 한 사회 안에서 시민으로서 덕목과 교양을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함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한국사회에 아연 질색할 파장을 남기는 끊어지지 않는 참사와 재난, 그리고 남은 이들의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사회를 보는 근심과 더불어 그래도 상실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촉구가 보이는 작품이다. 

 

피프티 피플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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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x 2018. 12. 10. 23:06
재인, 재욱, 재훈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은행나무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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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은 3 남매다. 이들에게 일어난 우연한 (적당한 수준의)초능력의 발현은 이들의 인생, 아니 일상에 조금씩 영향을 준다. 한국을 중심으로 세계 도처에 여기저기 흩어진 이들 남매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통해 조금씩의 공헌을 하게 된다.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숭고한 것인데, 우리에겐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진 않지만 설사 오더라도 이 기회에 대한 선택을 숙고할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이들이 기꺼이 자신들을 둘러싼 환경과 연관된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판단의 계기는 바로 힘에 기인한다.

그럼 힘에 대한 예찬일까? 그것보단 선의에 대한 긍정에 가까울 것이다. 수많은 타인들이 주목하거나 설사 선의의 결과가 일으킬 파장이 대규모가 아니더라도, 기꺼이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것은 소박한 선의라는 베이스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 선의가 타인에게 끼칠 선영향 뿐 아니라 그 자신을 조금씩 움직이고 변화케 하는 과정. 이 짧은 소설 안에 담겨있다.

특히나 여성의 일상과 그 일상에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환경의 변화, 그 필요성을 말하는데 작가 개인이 현재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지금의 시선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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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x 2018. 5. 13. 21:51
보건교사 안은영
국내도서
저자 : 정세랑
출판 : 민음사 2015.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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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과 눈에 확연한 기복으로 대변되는 학생 시절의 소위 감수성. 이 마음에 틈입하는 기복신앙 속 존재들과 주변의 이상 현상들. 하지만 걱정마시라. 우리 사학엔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경쾌하고 잘 읽히고, 그리고 단편이 진도를 나갈수록 그 본성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의 면면들이 좋다. 역사 교과서, 타자를 배제하는데 있어 가장 손쉬운 장기를 발휘하는 못돼 먹은 이곳의 실정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터치한다.

때론 장르 코믹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가볍게 대하게 되는 연작 같기도 하지만 때론 뾰루퉁하면서도 결국 조심스럽게 세상과 타인을 대면하는 매력적인 인물들이 조성하는 이야기가 일단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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