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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한때, 홍상수의 작품 목록에 대해 이 나라 에로 영상물 사업자들의 선호가 뚜렷했던 불편한 시절이 있었다. 불륜이라는 흔한 제재와 술자리와 원나잇으로 이어지는 돌발적 상황이 그들의 말초신경과 사업적 본능을 자극했던 듯하다. [생활의 발견], [극장전], [오! 수정] 속의 노출과 성애 장면이 던져준 영감은 영상물 사업자들의 인용과 패러디 욕구를 건드렸던 것이다.([오! 수정]의 경우는 처녀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이들의 페로몬을 급기야 폭파시켰던 모양. 언급도 부끄러운 타이틀들이 한때 양산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먼 과거를 거치고 오니 [도망친 여자]에선 어떤 분명한 변화는 보인다. 나 혼자만의 짐작이지만 '어쨌거나' 페미니즘이 홍상수에게도 변화의 지점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내 표..
김종관의 [더 테이블]처럼 크지 않은 카페에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가 또다른 새로운 사람을 손님으로 들인다. 그럼에도 극의 무대가 제법 활력있게 이동한다. 꼭 카페가 아니어도 좋고, 밥집 및 술도 되는 밥집 등으로 이동한다. 그래도 갑갑하고 한숨을 주는 것은 정갈한 김종관의 공간과는 다른 홍상수 세상의 사람들과 그들이 뱉는 언어들이다. 유사한 문장들의 반복, 새롭게 태어나다/예쁘시다/얼굴이 좋아보인다/어디 여행을 가려 한다/너 때문이다/그리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발악발악. 그 여전함들. 유독 더 짧은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참 꽉 차있어 상대적으로 체감하기엔 더 길게 느껴진다. 이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대격전엔 죽음의 기온이 도사란 덕이다. 죽음의 기억이 있고 죽음의 경험치가 있고 그들은 남탓도 하..
왜 하필 김민희의 얼굴과 미소, 연기의 모든 것이 빛나는 순간순간의 대목들이 홍상수 작품에서 있을 때 관객인 우리들은 당혹감과 난처함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시간, 관계, 반복 등 익숙한 홍상수의 영화들의 대목들도 이제 이 작품 안에서는 빛을 잃고 따분해지고 고리타분해진다. 씨네21의 이 감독에 대한 꾸준한 지지조차도 여기에선 멈출 듯. 그걸 감추기 위한 의미심장해 보이나 역시나 태만한 대사들도 힘에 부친다.
기억의 재현과 꿈과 현실의 아랑곳하지 않고 넘나드는 경계, 장소의 반복 문제는 홍상수 영화에서 익숙한 요소들이다. [그 후] 역시 마찬가지인데, 유독 [그 후]에선 불륜을 둘러싼 날선 이야기들이 오간다. 그게 남들 싸움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기나 힘든, 삼키기 불편한 대목이 분명하게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말다툼과 날선 대목들은 홍상수 영화에서 언제나 봐오던 진경들이다. 또는 그것에 불과하다. 이 영화에 대한 여러 상찬들은 유럽 평단에 넘기도록 하자. 홍상수는 김민희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좋은 대목, 예쁜 화면을 주고 싶어하는 듯하다. 이번에도 그 노력은 빛을 발한다. 흑백 화면 안에서 자신이 좋은 연기자임을 입증해내는 김민희를 보는 감정이란 문장으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화차]에선 소재와 감독 ..
상당히 직접적으로 홍상수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서 당혹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민희를 위한 큰 한마당을 펼친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피지컬의 한계가 분명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의 김민희의 연기는 탁월하다. [화차]와는 다른 연기이기도 하지만 홍상수의 작품 안에서도 우뚝 설 경지다. 그녀는 사랑의 항구성에 회의하면서도 - 송선미는 극중에서 유난히 '평생 갈 관계'를 자주 말한다 - 때론 천착하고, 때론 광인처럼... 아니 잠자리에 눕는다. 추운 잠자리이긴 하지만. 술자리가 홍상수의 여느 작품들처럼 중요한 영화이면서도, 극중의 주인공 그녀는 배고픔에 대해 솔직히 토로하고 자주 발산한다. 그럼에도 웃을 여유보다는 작품을 지배하는 정조는 어둑함(밤의 해변에서?)과 어떤 깊숙한 비애다. 저벅저벅 걷는 김민희..
이제 홍상수 영화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기엔 다소 마음의 방해가 깃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걸 예술인의 변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이 영화에서 실제로 나오는 상대에 대한 욕설과 국면전환에 따른 존대를 보고 여성혐오의 어떤 양면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쉽지 않은 복잡한 심사다. 일단 홍상수 영화치고 맑은 해피엔딩이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나오는 꿈의 장치와 반복과 변주의 요소들은 여전한데, 상당히 정색을 한 판타지를 당당하게 휘두른다. 서로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각자에 대한 정보량에 있어 차이가 있고, 실질적으로 관계의 맥을 쥐고 있는 이는 가장 정색을 하고 있으니 수수께끼는 거듭 난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무례하기 이를지 없으니… 쩝. - 홍상수 작품치고도 고마워요(감사해요)와 미안해요(죄송해요)라는 대..
이제 난 슬슬 "저기 저런데 썰매장이 있네?""썰매장이 있어요." 같이 리얼리즘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상 리얼과는 다른 어긋난 공기의 홍상수 영화에 대한 인내가 조금씩 사라자고 있다. 게다가 유독 많은 알콜의 기운이 지배한 본편 덕에, 나도 흐물해지고 흐트러지는 기분이. 가히 편치만은 않은 이 기분이 깊어졌다. 김민희에 대한 예쁨, 이 감정을 숨기지 않는 카메라의 포커스와 청각의 집중은 기분 나쁘지 않았고 남자 주인공의 보이스 오버가 자리한 1부(오렌지빛 덧칠)와 부재한 2부(노란 덧칠)의 차이에 대한 고민도 새삼 들었다. 비슷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꿈과 현실, 시선, 입장의 문제에 따라 종이를 자르고 붙이고 접고 영화식 공작놀이를 하는 태도에도 여전히 존중을 보내고 싶다. 그럼에도 난 좀 이젠 지친거 ..
바닥에 흘려 다시 주운 편지지의 바꿔진 서열대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짧은 상영 시간 안에 관객들은 정보의 배열을 다시 맞춰야 한다. 더군다나 미처 줍지 못한 나머지 편지지의 내러티브를 상상해야 한다. 기억의 문제와 각자 가진 시선의 정보 차이에 대해 평단을 자극시키던 홍상수는 이제 대놓고 '시간'의 명제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영화 생명을 이어간다. 가장 많은 영어 대사가 나오는 작품이니만큼 홍상수의 공간은 좀체 강북 종로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코스모폴리탄적이 되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