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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장황설

trex 2010. 6. 18. 14:59
수많은 인터뷰를 하고, 저녁엔 미녀들에 둘러쌓여 파티를 한다. 다음날 숙취에 일어나니 매니저가 재촉을 한다. 락커룸에서 감독 영감탱이가 뭐라고 하는데 아무튼 집중은 안된다. 그리고 경기장에 들어선다. 모두 나에게 손짓을 하고 환호를 한다. 여기저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관객들의 휘슬, 고무된다. 나는 또 경기에 임한다.


이렇게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나이키인지 아디다스인지 어디서 만든) CF를 깐느국제광고 그랑프리 상영제에서 본 적이 있다. 제법 가슴이 고무되는 광고였다. 역시 프로스포츠의 꽃은 스타 플레이어다. 그의 삶에 30초-1분 남짓 빠졌다가 다시 귀환한 기분이었다. 


어제 메시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플레이를 보고 느꼈다. 세계의 벽, 스타 플레이어의 자신감과 근성이라는 벽은 저토록 높은 것이구나. 어떤 아득한 느낌의 실감을 했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그 벽에 도전하고 넘는 뜨겁기 그지 없는 순간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사람들은 그걸 보기 위해서 축구를 보기도 한다. 물론 아직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걸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적은 없는 듯 하다. 앞으로는 어떨른지.


사람들이 축구를 보는 것과 응원하는 모든 행위들을 한번에 싸잡아서 마케팅에 놀아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만큼 무력한 투정은 없어 보인다. 그렇게 지적할 수 있는 수많은 근거와 여기저기 얼굴을 비치는 김연아의 면상이 있기는 하다만, 응원하는 몇몇 사람들의 진심과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땀을 함몰시킬 수 있는 공격적인 논리가 탄탄하거나 미학의 경지에 닿은 예를 본 적은 별로 없는 듯 하다.


당연히 그 수많은 인파에는 수많은 바보들이 섞여있다. 서클 렌즈를 눈에 박아놓고 가슴을 볼륨업한 여자애들이 기획사의 명운을 걸고 '응원녀'로 호명되고, 거리를 오물로 채우는 아이들과 무엇보다 장강의 물결처럼 도저하게 넘실대는 애국주의의 기운이 있다. 그 기운은 워낙 압도적이라 지금 우리 눈앞의 근심거리를 억지로 씻겨버리고, 지금 당장의 융화만을 야기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물흐물 사라진다. 그 시간 동안엔 경기가 끝나면 네티즌들은 2ch의 글을 일일이 퍼오고 번역하고 자위하고 낄낄댄다. 


그래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응원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진심이라고 말하고, 아카데미 문체에 길들여진 이들은 그것이 당신의 진심이 아닌 문제적 상황이라고 말한다. 흩날리는 머리결과 꿈틀대는 말근육의 슬로우 모션 잔치가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카니발일까요. 마약일까요. 도피처일까요. 어쩌면 지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2010년의 시험대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기를 걸고, 매 경기마다 한국의 패배를 예상하고 한국의 승리를 기원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나는 붉은 티셔츠 물결이 두려워서 방이나 직장에서 조잘거리는 훈수를 하며 시청을 한다. 그 정도까지가 이 기간 동안 내가 월드컵에 보낼 수 있는 감정소모인 듯 하다. 딱 이 정도가 좋다. 이러다가 무시무시하게 설득력 있는 CF를 보면 또 한번 되새기겠지. 역시 프로스포츠의 꽃은 스타 플레이어라고, 남들도 다 아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대량소비사회 속에서의 보이지 않는 작은 점으로써의 개체는 이렇게 설득되고 꾀임에 넘어가고 그렇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