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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원혼의 계승자를 위하여

trex 2010. 9. 16. 09:11
+ 좋은 기회가 닿아서, 한겨레 웹진 HOOK에도 간혹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실명에 사진에 아주 그냥...

    서영희가 출연하는 영화에 대해 말하자니 디테일상으로 그렇고 [추격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정의를 내리는데 익숙한 몹쓸 ‘리뷰어 블로거형’ 인간인지라, 미리부터 ’[추격자]에 대한 답변’ 운운하며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하 [김복남])에 대한 인상을 굳힌 탓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영화가 진행되면서 [추격자]의 서영희와 [김복남]의 서영희는 겹치면서도 대구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바로 다음 문단으로 내려가자) [추격자]의 서영희는 목이 댕겅 잘려나간 상태지만, [김복남]에서의 서영희는 남성들의 목을 댕겅 자르고, 팔을 긁고, 내장을 분간없이 찔러댄다.(여성들에 대해선 비교적 깔끔한[?] 살해를 감행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는 셈이다) [추격자]에서 서영희의 딸은 서영희가 남긴 세상의 유일한 흔적이지만, [김복남]에서의 서영희의 딸은 그토록 갈구한 ‘도움’의 이유였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고 먼저 떠나보낸 불귀의 객이다.

    간혹 시트콤, 때론 대부업 광고들에서 만난 서영희의 얼굴은 이런 류의 영화들에서 유난히 퀭해지며 극적인 장점을 드러낸다. 둔해 보이지만 실은 근면하기 이를데 없는 움직임, 소중한 것을 상실했을 때의 악다구니의 발동동과 ’태양을 째려보니 말을 걸대’ 이후 장면부터 부쩍 바빠지는 낫질의 손놀림까지 영화는 무서운 서영희 캐릭터의 국면전환을 보여준다. 그럴싸 하지만 실은 흔한 표현인 ’[추격자]에 대한 답변’이라는 문장은 실은 이 장면들 이후부터 [김복남]을 앞선 소위 (한국의)연쇄살인류, 스릴러물들과 구분하게 만든다. [김복남]의 전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임상수의 근작 [하녀] 등에서 보인 한국사회의 투영 운운, 또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실토류의 정서다. ‘시골쥐’가 ‘서울쥐’네 가서 고생했다네의 이야기가 전이된 듯한 예상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지며, 후반부는 앞서 말한 ‘태양을 째려보니 말을 걸대’  대사 이후의 눈치 안 보는 유혈사태의 파국이다.

    일견 거칠게 보이는 이 후반부가 내겐 흥미로웠고, 영화 군데군데 묻은 단점의 얼룩들을 상쇄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녀의 광기서린 각성 아닌 각성은 섬 내부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자각에 기인한 것이 아닌 ‘어떤 초자연적 기운’에 의한 것에 가깝게 그려졌으며, 이후의 장면들은 (불쾌하지 않은)기시감의 향연들이었다. 김기덕 사단(?)의 장철수 감독의 본작에서 나는 김기덕의 흔적들을 수많은 영화 속 ‘혈흔’이 아닌 후반부의 곱게 만들어진 무덤들에서 발견했었다. 김기덕이 저예산과의 고군분투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영화 속에서 만들어낸 ‘어여쁜’ 장면들의 정성이 장철수의 [김복남]에선 곱게 빛나는 장독대 무덤에서 재현된 기분이 들었다. 해원(지성원 분)이 거실에서 누울 때 나는 괜시리 홍상수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의 마지막 장면, 이응경과 거실과 신문지들이 떠올랐다. 정서상 겹친다기 보다 영화가 주는 아득함과 축축한 기운에서 나름 ‘4D’를 느꼈던 탓이리라.

    무엇보다 해원의 것인지 아닌지 알 도리는 없었지만, 서영희 아니 복남이 입은 하얀 원피스와 복남의 헝크러진 긴 머리칼이 수많은 한국영화 속 원혼들을 연상케한다. ‘청컨대 제가 잔칫날 그 놈의 어깨 위에 나비가 되어 올라탈테니 사또께선 그 놈을 잡아주시어 큰 벌을 주신다면 제 한은 더이상 없겠나이다.’라고 빌 수 밖에 없었던 아랑을 비롯한 숱한 원혼들. 이제서야 김복남이라는 이름에 닿아 직접 낫질의 응징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플래닛 테러]가 아닌지라, 그녀의 안락한 생존을 확실하게 약속해주진 못한다. 영화 속엔 숱하게 이성간에, 또는 동성간에 상대방의 가슴을 움켜쥐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엔 해원의 실루엣과 영화 속 무대인 섬 무도가 겹쳐 보인다. 바로 누운 해원의 가슴의 실루엣과 무도의 높이 솟은 봉우리는 은밀한 비밀을 간직한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는데, 그 비밀과 내재된 억압이 김복남의 낫질을 한낱 전설로 전락시킬까 나는 문득 겁이 났다. 그 위치에서 멈추지 않는 ‘친절함’(영화 속 불친절에 대한 정의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의 손길을 앞으로 소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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