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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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trex 2009. 1. 17. 10:45
09년 01월 금주차 [네이버 오늘의 뮤직] 업데이트분 리뷰의 초안입니다. 오타와 띄어쓰기 오류, 비문 그대로입니다. 부끄럽지만 기록.

+ 네이버 게재/경향신문 | 가슴네트워크 공동선정
한국 100대 명반 리뷰 :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117



옛날 옛적 홍대에서...


홍대 인디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노브레인의 결성 과정도 빛나는 구석이 있다. 노브레인은 맘 붙이고 활동할 밴드를 찾으러 혈혈단신 마산에서 상경한 ‘불대갈’ 이성우, 그리고 기타리스트 차승우를 중심으로 고등학교 동창으로 구성된 크라이 베이비(Cry Baby)의 의기투합으로 탄생하였다. 위퍼(Weeper)와 같이 한 [Our Nation 2]을 드럭에서 발매한 후 홍대의 기린아로 등장한 노브레인은 이윽고 독립하여 그들만의 레이블 ‘문화사기단’을 출범하기에 이른다. 활동 초창기부터 황금기를 구가한 흔치 않은 경우인 노브레인의 활약은 데뷔반이자 더블 앨범인 [청년폭도맹진가]로 큰 결실을 얻는다. 홍대 인디씬이 낼 수 있는 당시의 최선의 결과물인 이 작품으로 노브레인이 보여줄 미래는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차승우의 탈퇴를 예견하기 전까진.


홍대 전성기의 가장 강력한 한방.

지금의 사정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이지만 홍대 인디씬의 가능성에 대해 상당히 많은 시선들이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그들이 점치던 여러 가능성의 단초에는 분명 [청년폭도맹진가] 같은 데뷔반이 보여준 놀라운 성취도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추어리즘이 단지 패기로 점철된 치기어린 언행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 에너지라는 증거물, 이를 기적 같은 노브레인의 데뷔반 [청년폭도맹진가]는 증명했다.  홍대 인디씬 초기 사운드에 펑크(Punk)라는 장르 요소가 유독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영미권을 중심으로 한 유행의 일변도에 편승했다기 보다는 당시의 한국적 상황에 기인했다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직설법의 언어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이 천민자본주의의 구도로 움직이는 기성세대의 법칙에 대한 반발심을 숨기지 않았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아이들은 자신들의 유행을 선도하기에 이른다.

노브레인은 조금 이르게 먼저 결성하여 활동하던 크라잉넛(Crying Nut)과 나란히 [Our Nation] 시리즈 1,2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그로 인해 하나의 대표성을 얻기에 이른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자신들만의 레이블인 ‘문화사기단’을 설립하고 친구들과 한바탕 일을 저지른다. 이들이 확립한 ‘조선펑크’ 사운드는 단순히 반항적 태도와 ‘때려부수기’ 사운드로만 인식되었던 펑크 장르를 넘어 노브레인이라는 밴드를 ‘생각보다’ 옹골찬 사운드를 지닌 ‘꽤나 개념있는’ 브레인의 밴드로 홍대 대중에게 인지되었다. [청년폭도맹진가]는 그 분량만큼 실로 무서운 앨범이었다. 펑크는 물론이며 관악 연주가 탑재된 스카와 레게 장르, 심지어 트롯트의 구수한 흥취와 정치적인 언사의 민중가요를 연상케하는 저항성과 선동성을 한꺼번에 지닌 근사한 선물 세트였던 것이다.

한정된 지면에 이 다채로운 더블 앨범의 요소 하나하나씩을 자세히 뜯어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읽는 이들을 위해 쉽게 설명하자면 이 각각의 디스크는 파트.1인 ‘난투편’과 파트.2인 ‘청춘예찬편’으로 나눠져 있다. 어감을 봐도 예상되듯이 ‘난투편’엔 앨범 타이틀처럼 ‘맹진’하는 펑크 사운드로 충만하다. 간단한 몸풀기 같은 곡 ‘날이 저문다’를 필두로, 짓궂은 보컬로 부른 ‘애국가’를 인트로로 시작하는 ‘청년폭도맹진가’가 본격적인 포문을 여는 것이다. ‘호로자식들’과 ‘정열의 펑크라이더’ 같은 트랙들에서 불쑥불쑥 삐져나오는 열기와 방장한 혈기를 감당할 수 있다면 실컷 맛보시길 바란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듯한) 노브레인의 최전성기 사운드이다. 어디 그뿐인가. ‘십대 정치’ 후반부에서 차승우의 기타가 보여주는 사이키델릭한 질주감 역시 이 앨범이 우리에게 준 값진 선물이다. ‘너희들의 창백했던 고함소리는 어디로 갔는지 / 들리지 않고 횅한 겨울하늘 뜬구름만이 / 아 98년 서울’ 같은 가사도 마찬가지다.

파트.2인 ‘청춘예찬’편엔 좀더 느슨한 느낌의 스카와 레게풍 넘버들이 포진되어 있다. 파트.1의 ‘난투편’이 맵싸한 양념들이 투입된 음식의 맛이었다면, 이번 파트는 쫄깃하고 감칠맛 나는 입감이 제법 괜찮을 것이다. 세션으로 참가한 고경천의 키보드와 노브레인의 친구들이 만들어준 코러스 라인이 음악적으로는 다채로움을, 정서적으로는 처연함을 더해준다. ‘제발 나를’, ‘생기없는 모습’ 등의 트랙에서 느껴지는 것은 청춘의 게으름과 책임방기가 아닌 불확실한 내일을 막연하게 또 한번 맞이해야 하는 하루 단위의 고단함이다. ‘서슬퍼런 칼로 어서 나를 사정없이 난자해주오’ 같은 가사가 보여주는 섬뜩함과 ‘너의 정의를 알라 / 너의 주체를 인식하라 충실하라’ 같은 계도체의 가사는 선명히 대비되는데, 청춘의 아이러니이자 특권은 사실 이런 게 아닐까. 노브레인은 이 양편의 목소리를 담은 ‘세대의 대변자’가 되었다.

‘애국가’ 인용도 그렇지만, ‘이 땅 어디엔들’에 나오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인용도 흥미롭다. 80년대식의 엄숙함에 대한 홍대 카오스(Chaos)의 화답 같다는 인상이 짙다. 이처럼 [청년폭도맹진가]는 당시의 특이한 내외적 상황을 대변하는 명반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