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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발매 1주년, 행복하셨습니까?

trex 2010. 11. 29. 10:39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16685  



   포털의 뉴스란을 뒤적이다, 아이폰 발매가 이제 1주년이고 그게 작년 11월 28일의 일임을 알았다. 이제 갓 1년 접어든 일이지만, 사실상 아이폰이라는 이슈 키워드가 한국의 넷 공간을 휩쓴건 그전부터 있어 왔던 일이었다. 트위터에 둥지를 틀던 당시, 아이폰 전도사격이 된 이찬진씨가 하도 타임라인상에 아이폰 이야길 하길래 그만 질려버려 '언팔'을 한 것이 새삼 기억난다. 쓰고 있던 아이팟 나노 덕에 애플 특유의 디자인과 손에 들어오는 그립감, 무엇보다 화면상에 펼쳐지는 UX에 좋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윈도우 환경에서의 아이튠즈 '동기화'의 악몽이나 전화기로써의 효용에는 의문을 품은 터였다. 문제의 11월 28일 이후 실제로 본 아이폰은 생각보다 어여쁘고 매력적인 기기였다. 구매 이후 드문드문 업무를 보면서 아이폰에 관한 온갖 설정을 다 하던 옆자리 직원 덕에 훔쳐 볼 수 있었는데, 인상은 크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기다릴만 했다였고, 나머지 하나는 쓸려면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폰 구매를 기뻐한 직원은 구매 당일 동기화와 설정으로 하루를 지샜고 지금 내 옆자리에 없지만, 적어도 이 기기에 대한 호기심 수치는 잔뜩 높여놓고 간 셈이었다.



   정보 수집이 이어졌다. 대관절 와이파이는 무엇인고, 물에 풍덩 빠지면 어찌 되는 것인고, 문자를 어떻게 보낸다고?, 보조 배터리라는 것도 사야 하는 것인가 등등 한달여 간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이듬해, 즉 올해 1월 2일 토요일의 찬 바람을 뚫고 검은 박스를 집에 모셔(!) 오기에 이르렀다. 구매 후 하늘을 날 듯 기뻤냐고 물으신다면 아니라고 답하겠다. 아이폰 구매 이후의 감정은 좀 오묘한 것이었다. 이상한 부채감, 내게 걸맞는 소비를 한 것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기인가 하는 지릿한 어지러움이 감돌았다. 그 부채감에서 벗어나기까지엔 2개월여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완전히 아이폰을 손에 쥐고 속을 꿰뚫을 정도로 통달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의 24시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효용한계치 안에서 적절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 한편으로는 이 기기의 잠재력을 100%, 200% 확대해서 활용하는 이들의 방법론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누르면서도 말이다.





   사실상 메모 기능도, 일기예보도, 지하철 노선도도 일반 핸드폰 안에 담겨져 있다. 아이폰과 일군의 App(어플리케이션)들이 보장하는 것은, 보다 강력하게 웹 환경과 연동해 사용자의 생활 패턴 안에서 이상적인 푸쉬를 해준다는 것에 있지 않겠는가. 거기에 소위 '증강현실'까지 가세하면, '날아다니는 자동차'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헐리우드 영화가 그려내는 미래에 가까운 가능성까지 보여주니 말이다. 이걸 굉장한 '신천지'라고 표현하는 대목들에서 난 가벼운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 여기에 경제 뉴스란에서 그려내는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김대리의 하루'풍의 기사들도 매한가지다.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들은 김대리의 수면 사이클을 체크하고, 효과적인 식단을 매일 제안하고, 김대리가 내려야 할 노선을 미리 알려주고, 최부장님이 지시한 회식 자리 예약을 해내어 김대리의 앞날에 평탄대로를 깔아준다. 그런데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정말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누구나 꼭 그러해야 할까. 지금 당장엔 내 주변 사람들은 지하철 내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이어폰 없이 DMB를 보는 몰상식한 사람들'과 더불어 화면만을 보고 있거늘. 그이들과 나는 과연 현재 시점에서 스마트해졌을까. 질문의 말머리가 둥둥 떠다닌다.



   아이폰 구매 이후 초반에 담았다가 지운 App 중 하나가 'Whoshere'라는 물건이었다. 내 행동반경 설정 안에 있는 숱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볼 수 있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이 App을 지운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여성 유저가 프로필 인사로 노출한 [제발 쪽지 좀 그만]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이거나 그냥 미녀 연예인의 얼굴에 지나지 않을 프로필 이미지를 보고 숱한 남자 유저들이 시시때때로 쪽지를 보낸 탓이리라. 영화 [소셜 네크워크] 안의 마크 주커버그와 숀 파커를 IT 유명인사로 만든 동인은 '짝짓기의 습속' 때문이었지만, 이건 아무래도 너무 하다 싶었다. 단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지만, 트위터와 더불어 'Whoshere'들의 서비스는 내게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확장의 창이 아니라, 그냥 세상 속 익숙한 풍경을 또 하나 옮겨놓은 축소/재현의 창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여기서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라 아이폰을 보는 시각을 조정하고자 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아이폰을 통해서 자신의 정서에 맞는 틀을 형성하고 그에 맞게 App을 받고, 그 자체로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커스터마징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Whoshere'를 하고 아니면 더 좋은 App을 받고, 누구는 사내 그룹웨어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아직도 사용이 서툰 김차장님은 부하직원에게 주말에 전화를 걸어서 "아 이거 벨소리 설정 어떻게 하는가? 응? 자넨 아는가?" 전화를 하고... 다 그런게 아니겠는가?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오늘도 예의 들쑥날쑥한 수면 사이클을 확인하고, 밤새 채워진 트위터 타임라인을 확인하고, 출근길엔 웹툰을 보고 밀린 가계부와 어제 일의 메모를 한다. 퇴근길엔 연평도 소식이 안겨주는 불안함을 상기하면서도 또 한번 게임 속 미군이 되어 테러 진압 작전을 한다. 터치로 총구의 방향을 조정하고 다른 손의 터치로 방아쇠를 당긴다. 썩 개운한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다음 체크포인트를 위해 플레이어는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리고 재밌는 행위를 넘어서 뭔가를 더 얻을 수는 없을까 되묻는다. 이게 종속일까 그냥 스며든 일상일까. 어느 쪽이든 이걸 스마트하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텐데 말이다. 소유 이상의 만족감은 언제쯤 닿을까. 소비 사회의 고민 중 하나이다. [1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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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놀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