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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 아이패드가 안겨준 생각들

trex 2011. 1. 13. 10:23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19932

아이폰 사용 1년차에 기스도 안 내고 잘 사용하고 있어, 신(스티브 잡스?)이 어여삐 여기셔 선물을 내리신걸까. 새해에 아이패드가 턱하니 하나 생겼다. 혹시나 이 기기를 눈 여겨보신 분들은 나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약 올려주셔도 되겠다. 아마도 앞으로 상당간은 이런저런 경품 행사에 이 기기는 상품으로 오르내릴 것이고,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이 기기의 후속 기종이 멀지 않은 순간에 등장할 것이라는 예고편이다. 심지어 국내 발매 이후의 반응도 아이폰4와 달리 그다지 열풍이라고 하기엔 미적지근하다. 그만큼 이 기기가 가진 포지션이 국내 환경에서는 다소간 애매하고, ‘구경하기엔 그럴싸한데, 나에겐 왠지?’ 쪽인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긴 하다. 궁금했던 물건이었고, 어렵지 않게 ‘지갑 무게에도 거의 변함 없이’ 손에 들어왔다. 남은 것은 활용이었다.


아이폰을 위시한 상당수의 스마트폰 발매 주자들이 ‘이 폰의 주인 자격에 부합하는 스마트함’을 강요(?)했다면, 아이패드를 위사한 태플릿 발매 주자들은 일종의 ‘강화 아이템’이다. 온라인게임, 특히 MMORPG 타이틀 화면 속의 수려한 갑옷을 장착한 캐릭터들은 ‘초짜’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산다. 태블릿 라인업은 소유와 노출 자체가 이목의 대상이 되는 효과가 있다.(물론 시효가 지나면 이마저도 희석될 것이다) 나를 비롯한 당신의 출퇴근길에 수없이 마주치는 웬만한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폰에 달린 조그만 액정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반면 아이패드 등의 태블릿은 고개 숙인 나 자신을 보다 ‘덜 궁상맞게’ 만들어준다. 슬라이드로 전자책의 페이지를 넘기거나, 눈에 띄는 해상도로 영상물을 감상하고 있을 때 옆자리 아저씨가 나를 흘깃하는게 느껴진다면 나름 성공이라고 하겠다.



며칠간 여러 App(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아이폰 액정으로 구독해온 한맺힌(?) PDF 파일들을 시원하게 읽어냈으며 어느 탁월한 저자가 전자책으로 무료로 공개한 저서를 저장해 야금야금 읽었다. 또한 TED.com의 명료하고 짧지만, 명민하고 감흥을 주는 강연회를 한국어 자막과 곁들여 볼 수 있었고, GQ코리아가 시범적으로 발간한 잡지 App으로 ‘2010년의 남자’ 중 한명인 송해 아저씨의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부쩍 넓어진 화면으로 경험하는 Google Earth는 여전히 신기했고, 모모노트 App은 정말 활짝 펼쳐진 다이어리를 가진 기분이 들었다. 야금야금 사모은 게임 App들 일부는 아이패드 화면에도 적절히 대응하는데, 이들 타이틀을 몇분 하다가 아이폰으로 다시 돌아오면 부쩍 좁아진 세상이 느껴져 이질감이 생길 정도였다. 경험치가 올라갔다기보다는 (애플 제품에 대한)종속치가 올라갔다고 하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는 진실일 것이다.

물론 이 세계는 명백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아이패드를 통한 유아교육(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한 업체들은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데, 여전히 전자책 시장에 대해서는 상당수의 업체들은 눈치를 보는 듯 하다. 아마존의 킨들 App까지 손쉽게 품고 있는 아이패드지만, 모국어 저서들도 품고픈 소비자의 희망과 달리 아직은 조용한 국내 장터다. 하나 더, 아이패드의 매력을 맛보는 것은 무료 App으로 충분하지만, 아이패드의 활용을 확장하는 것은 확실히 유료 App에 달려있는 듯 하다. 가령 나는 이 기기로 소위 말하는 ‘생산성’의 확장을 경험해 보고 싶다. 하지만 상당수의 오피스 기능의 App들은 유료고, 그렇게 가벼운 가격은 아니다. 탈옥(Jailbreak : 해킹과 다소 유사한 개념)을 통한 무료 이용 같은 쪽엔 관심 없는 내가 언젠가는 ‘지불’을 통해 그것들을 구매는 하겠지만, 그 결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 결국 이렇게 애플이 조성한 ‘장터’ 안에 언젠가는 내 지갑이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통해 노트북과 퍼스널컴퓨터 사이 어느 지점의 시장을 확보하고 싶었단(말을 들었)다. 그가 생각하기엔 노트북(넷북 따윈 안중에도 없고!)은 거실에서 편하게 다루기엔 좀 무겁고, 외출시엔 아이폰이 세상 곳곳의 애플 홍보대사 노릇을 한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이패드는 ‘중산층’ 기기 같다. 확장성을 위하여 일정 수준의 지불이 있어야 제 노릇을 하고, 업무나 과업으로 대변되는 생산성 보다는 다소간의 엔터테인먼트 기기의 포지션이 강한 유희 기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4년 대학 정규 과정의 모든 교재를 아이패드 안에 집어넣고, 영상 강의까지 지원되는 꿈같은 희망과 달리 당장에 장문의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고 ’학점 정정 메일’을 발송해야 하는 지방도시의 희망 C군에게 이 기기가 어울릴까. 그러기 위해선 아직은 보다 더 가벼운 무게와 더 좋은 가독성과 더 편리한 키패드가 필요하다. 올 봄에 2번째 버전의 기기가 공개되면 그 꿈의 거리감이 좁혀질지는 모르겠지만, 아이패드의 본연의 존재 의의가 내가 짐작하는 ‘그쪽’이 맞다면 여전히 거리가 있을 듯 하다. 

얼마전 얼리어답터들의 시선이 한군데로 집중되는 CES 2011이 개최되었다. 포커스는 작년의 붐 조성에 이은 3D 기술 ‘다소’와 스마트 TV ‘본격화’와 태블릿 PC 시장 ‘개막전 예고’였다. 태블릿 운영체제엔 안 맞는다는 울적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발톱을 다듬고 있고, 보다 훤한 비전의 안드로이드 진영이 제대로 이빨을 드러낸 이 전장의 미션 과제는 다분히 ‘아이패드 타도’다. 이 시장에 우리나라 통신사들이 관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면, 올해도 ‘대항마’, ‘비교해보니…’, ‘따라와…’, ‘VS’ 등의 구절이 들어간 뉴스 제목들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경품 받았다고 아이패드가 우월해, 그것들은 못 따라와 운운하는 소릴 하자는게 아니다. 여전히 여러 진영이 추구하는 방향은 ‘속도’와 퍼포먼스, 그를 뒷받침해 줄 하드웨어의 완비인 듯 하다. 그런데 아이튠즈 10주년에 이어 App스토어의 견고화를 꾀하는 스티브 잡스 진영은 물샐 틈 없는 그들 세상의 장터로 세상 모든 것을 거래하고 싶은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드웨어로 표현되는 이상의 세상을 설계하는데 있는 듯 하다.

TV-휴대폰-태블릿-노트북-개인 컴퓨터 간의 완강한 망 안에 아이튠즈와 App스토어의 익숙함으로 세상 모든 것을 거래하고, 모든 이슈를 교류하고, 유희거리를 다운 받고 재생하고, 간혹은 생산도 하는… 이제 아이튠즈는 음악 장터를 넘어서 영상 장터, 개인방송국의 모임터, 자체 플레이어, 애플식 SNS , 서점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상당수를 껴안은 곳이 되었다. 그걸 누군가는 ‘생태계’라고 하더라. 당연히 이 생태계의 비전에 대해 진작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다른 진영으로 질주하는 이들도 있고, 이 생태계가 ‘안테나 게이트’ 등의 사건으로 인해 삐걱거림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폰에 이어 이용한 아이패드가 그 생태계의 단초에 대한 작은 실감을 줬다는 것이 제법 인상적이었다. 날아다니는 자동차도 없고, 홀로그램 마이클 잭슨이 펩시를 팔지도 않지만, 로버트 저멕키스가 그려낸 [백 투더 퓨처2]의 미래보다는 이게 더 미래 같은게 사실이다. 그래도 정신을 팔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 ‘그 생태계’ 말고 ‘내 주변의 생태계’가 각인을 준다. 그 미래가 아직은 요원하거나, 여전히 거리가 있다는 서글픈 자각을. 지금으로선 주변 생태계에 대한 탈주 욕망으로서의 ‘오락기’로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돌아가고 있다는게 솔직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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