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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10년 어워드도 궁금합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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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2010년 어워드도 궁금합니다.

trex 2010. 12. 30. 15:14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http://hook.hani.co.kr/archives/19097    


    매년 연말이 되면 음악 저널(근간엔 오프라인 잡지 보다 확실히 웹진이 대세인 듯)들은 한 해의 음반 순위를 결산하고, 영화 잡지는 그 해의 영화들을 필자(또는 평론가)별로 순위를 발표하곤 합니다. 지금 제가 이 글을 작성하는 시간대엔 한참 모 방송국에서 연예대상을 진행하고 있군요. 한 해를 마감하는 의식 중에 순위놀음과 시상식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상당수의 사람들은 불만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들은 매번 이런 목록들을 체크하기도 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관심해 합니다. 그럼에도 조금의 관대함을 허락한다면, 이런 순위놀음과 어워드들은 타인의 취향 엿보기, 또는 대놓고 평가하기의 공감대적 쾌락을 선사합니다. 날선 비난의 어조와 방향성 없는 허한 어조만 없다면야 이런 한 해의 정리 의식은 작든 크든간에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HOOK 안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저는 개인적인 어워드를 마련했습니다. 타이틀은 [마음가는대로 기억할 2010년의 다섯 키워드]입니다. 여러분들이 편하게 엿봐주시길 바랍니다.


    첫번째 2010년의 기억입니다. 올해의 개인적 연예대상은 유세윤입니다. 올해도 방송 3사는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2강 구도 아래서 연예대상 결과의 각축을 보여주겠죠. KBS가 이경규에게 대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구도를 깨는 반가운 파격(?)을 감행했지만, 저에게 공중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한 눈에 강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준건 유세윤이 유일하였습니다. UV(유브이)라는 이름의 힙합 듀오 안에선 90년대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모든 트렌드를 아로새긴 존재감으로서 허풍을 떨다, 유세윤 본인으로 귀환한 몇몇  예능 프로그램 안에선 호탕한 웃음과 경계선 없는 표현력으로 시청자들에게 천상 개그맨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죠. 싱어와 개그맨이라는 양쪽 자아를 화실히 구분하면서도 균형은 기가 막히게 잡았던 본능적인 감각은 올해의 최고 재능과 구경거리였습니다.


    두번째 2010년의 기억입니다. 올해의 IT기기는 아이폰입니다.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이라는 거창한 수사를 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 능력과 캐릭터를 말할 생각도 없습니다. 사실상 아이폰에 대한 양가적인 생각은 이미 HOOK을 통해서 토로한 적이 있었습니다.(보신 분은 많이 없겠지만요) 하지만 여전히 2010년을 기억할 때 아이폰은 문제적인 위치로 제게 남을 듯 합니다. 올해 초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모셔오듯(!) 구매한 이후로 제 일상에 가장 밀착된, 그리고 아직도 완전히 답을 얻지 못한 수수께기의 기계이자 사람들과 만나면 가장 많이 대화 소재로 올린 기계. 아마도 최소 1년은 더 같이 할 이 아이폰은 내년에도 일상을 잠식하는 건방진 매력을 뽐낼 수 있을지, 저 역시 궁금하기 그지 없습니다.


    세번째 2010년의 기억입니다. 올해의 코믹 단행본은 [바쿠만]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데스노트] 콤비였던 오바 츠구미(스토리)와 오바타 타케시(그림)의 작품인 본작은, 위태롭게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던 전작과 달리 가볍게 소년들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대사량과 촘촘한 그림체가 여전히 기운을 빼기도 하지만, 훨씬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일본 소년만화계 그것도 출판사 편집부의 풍경을 다룬다는 매력지수 때문이겠죠. 다만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는 듯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경쟁'과 '파워업'(성장)이라는 소년만화의 키워드를 꽉 쥐고 있는 연출의 묘가 없었다면 이토록 몰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른 단행본에 비해 꾸준히 연재된 덕에 지나치게 게으르지 않게 발간된다는 점에서도 가산점입니다. 문득문득 제 지갑은 눈물을 흘리지만.


    네번째 2010년의 기억입니다. 올해의 '지나쳤음 큰일날 뻔'은 정재일의 노래 '주섬주섬'입니다. 사실 참여하고 있는 음악 커뮤니티 웹진에서 올해의 음악을 선정하고, 올 여름의 지산락페스티벌이라는 화려한 기억도 있지만 왠지 이 음악에 대해선 별도의 언급을 하고 싶네요. 음악인 정재일이 정작 이 곡이 수록된 앨범을 발매한 이후 곧바로 입대를 한 것이 몇 개월 전 일이건만 저는 정작 최근에서야 들었습니다. 일종의 남성판 '바람이 분다'랄까요. 사람 가슴을 내려앉게 만드는 피아노와 저며들게 하는 현악음 아래 놓여진 체념과 다짐의 보컬은 진실로 듣는 이의 발걸음을 다르게 만듭니다. 길지 않은 앨범 안에서 3가지의 버전으로 실린 본작이 앨범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작사를 맡은 박창학의 심상엔 이 곡을 만들면서 어떤 풍경을 품고 있었을까요, 궁금합니다.


    자 이제 마지막 다섯번째 기억입니다. 올해의 여행은 통영행이었습니다. 많은 곳을, 자주, 누비는 사람은 아닙니다. 지방행은 고향행마저도 큰 다짐이 필요할 정도로 소심한 행동파인대요. 왠지 통영은 가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최고는 아닌데, 이상하게 내내 마음이 가는 작품들이 있죠. 영화 속의 통영도 그랬습니다. 결심해서 떠났고, 마침내 당도한 통영은 좋았습니다. 두툼한 졸복들이 하얗게 익은 복국과 뽈락 매운탕이 준 시원함, 동피랑 벽화마을의 촘촘한 골목길은 잊기 힘들 것입니다. 결코 저렴하지 않은 미륵산 케이블카의 요금과 어느새 커피 프랜차이즈가 자리를 잡아가던 나폴리 모텔이 좀 슬프긴 했지만요. 그리고 여행객의 입장이다보니 내내 버스 노선을 물어보던 한 노인분에게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해드린게 지금도 마음에 걸리곤 합니다. 다음은 거제를 향해 볼까 합니다.




    이렇게 다섯 분야(?)에 걸쳐 올해의 기억, 올해의 어워드를 떠올려 봤습니다. 이렇게 토로한 것은 개인적 정리이면서도 타인을 향한 피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여러분의 2010년 어워드는 어떤 목록을 가지고 있는지요? 저 또한 여러분의 목록이 궁금합니다. [10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