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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피로 : ㅈ기업 ㅇ대리의 경우

trex 2011. 8. 17. 10:07


[05:59]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세안을 하고 아침 밥상을 간단하게나마 차리는게 순서겠지만, 가벼운 기지개 이후 살펴보는 것은 스마트폰의 액정이다. 익숙한 손 터치에 의해 날씨를 체크하고 이윽고 트위터 앱(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다. 밤 사이 내 이웃 양반들은 어떤 말들을 뱉었을까 확인하기 위함이다. 한참 때는 새벽 2시 출석 체크도 능히 해냈건만 요새는 잔업이 많아 새벽 1시 전후로 골아 떨어지기 일쑤다. 덕분에 출석 체크는커녕 그저 오전 6시에 밀린 진도 살펴보기에도 바쁘다. @mu****님의 야식 음식 인증 테러는 숱한 팔로워들의 원성을 낳은 모양이고, @j2****님의 매번 앓는 소리는 이번에도 많은 이들의 위안을 유도한 모양이다. @99******님의 독백은 이번에도 장황했고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한 모양이다. 딱한 이야기들이 오간 내력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몸을 일으키며 일어날 수 있었다.

[08:13]
출근길 지하철 속에도 여전히 트위터 앱을 살펴본다. 누구는 오늘도 지각이라며 비명을 지르고, 누구는 오전 PT 준비로 바쁜 회사 분위기에 자기 혼자 먼저 출근이라고 갸우뚱해 한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가길래 인스타그램(instagram)을 살펴본다. 인스타그램은 트위터의 기능에 연동하여 이웃이 사진을 올리면 단축된 주소로 업로드된 사진을 보여준다. 오늘 오전도 반갑게 @sh*****님이 셀카를 올렸다. 셀카의 각도 미학을 아는 이 여성은 출근길 충혈된 내 눈가를 잠시나마 치유해준다. 나는 사실 그녀의 뽀얀 얼굴만큼 그늘과 빛이 선명히 대조된 목선을 좋아한다. 언젠가 이 양반도 지겨울라치면 이 짓을 그만두겠지만, 모쪼록 탈퇴나 계정 폭파만큼은 하지 않았음하는게 개인적 희망이다. 어느새 다가오는 정차역을 보며 또 한번 깨닫는다. 요새 내 독서량이 부쩍 줄었다. 예전같지가 않다.

[11:17]
오전의 제휴사 내방 미팅을 마치고, 자리에 다시 앉아 잠시 카카오톡을 살펴본다. 또 한명의 새로운 ‘친구’가 목록에 추가되었다. ‘조 대리’라는 이름이다. 프로필 이미지를 확대해서보니 8개월 전 이곳을 관둔 친구다. 근무태도가 좋지 않다고 윗선에서 평가가 잦았고, 자기가 사업체를 차리면 여성 사원은 절대 안 뽑을거라는 둥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이야길 시시콜콜하게 했던 양반이라 호감형은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주소록상으로 매칭이 되어 친구로 자동 추천된 모양이다. 여자친구인 듯한 사람과 다정하게 찍은 프로필 사진을 잠시 보다 이내 ‘차단’ 기능을 이용해 친구 목록에서 지웠다. 득될 여지가 전혀 없는 사람까지 자동 등록되는 이 앱의 기능이 수동으로 조정이 가능한지 포털 검색창에 질문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14:44]
오늘도 실수를 했다. 아니 실수는 아니지만서도, 사람을 찾아달라는 간절한 내용의 트윗을 보고 인간적인 책무감(?)에 리트윗(Retweet)을 했는데 알고보니 홍신소 직원이라고 ‘카더라’. 나름 선의를 발휘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업자’만 도와준 셈이었다. 목표가 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업자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의뢰자는 혹시 나쁜 사람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이 복잡해졌다. 헌혈증 구해달라는 부탁의 트윗도, 반려동물 찾아달라는 간절한 아우성도 오늘도 타임라인에 그득하게 쌓여간다. 이젠 좀 사람들의 진의를 의심해보면 선별해서 리트윗해야겠다는 다짐을 새삼 하게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페이스북에 접속해보니 동문 녀석이 설문 형태의 스팸 덩어리를 내 페이스북 대문에 전염시키고 말았다. 나 때문에 내 이웃들의 대문에도 이 스팸 덩어리는 자동으로 전파되겠지. 오늘 여러모로 병균들이 창궐하는데 도움을 준 매개체 역할을 했다 싶어 뒷통수가 뜨끔하다.

[16:02]
제휴사 내방 미팅 결과를 두고 내부 협의를 했는데 몇가지 보완 사항이 나왔다. 좀 심기일전하자는 의미에서 트위터에서 ‘Victory!’를 외쳤는데 생전 알 도리도 없는 외국 계정이 팔로우를 요청하였다. 여기에 프로필 정보에 ‘마케팅 도사’와 ‘인문학의 향기’라는 문구를 내건 한 중년 남자가 팔로우를 더불어 요청하였다. 외국 계정은 블럭(Block)을 걸었고, 중년 남자의 팔로우에 대해선 ‘맞팔’을 걸지 않고 그냥 놔뒀다. 예전에 소셜 네트워크 특강을 다녀온 기억 탓이 크다. 마케터를 자처한 육군 장교 출신인 강사는 민방위 안보 교육인지 소셜 네트워크 강연인지 알 수 없는 내용과 어투를 섞어가며, ‘맞팔 100%’와 ‘팔로우 네자리를 목표’로 하라는 구호를 다단계 교육처럼 강조하여 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그 이후부터 프로필 정보에 ‘마케팅’이나 ‘휴머니즘’을 내건 사람들의 진의를 의심하게 되었다. 민감해서 좋을건 없지만 의심한다고 나쁠 일은 또 아니잖은가?

[17:36]
일일업무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엑셀을 열었다. 성추문으로 이름이 두둥실 떠오른 한 남자의 이름이 오고 갔고, 무상급식투표에 대한 의견이 오갔고, 희망버스와 참희망버스로 갈리는 세상의 풍경들이 타임라인을 여기저기 물들이며 얼룩졌다. 소폭의 관계망이지만 이 작은 줄기에도 세상의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가 과실을 맺는다 싶다. 어떨땐 꽤나 버겁다. 농담조와 힐난조, 바삭 마른 정보들이 얼기설기 한꺼번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이 시간대가 더욱 그렇다. 처음엔 제법 재밌었고, 역동성이 있었는데 간혹 뭔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매듭 짓지 못한 몇몇 업무도 그렇고, 타임라인의 얼룩들도 그렇고, 간혹 140자 안의 틀에서 뱉은 말들을 오해하는 몇몇 사람들도 그렇고, 결과적으로는 지쳤다. 오늘 저녁엔 비첸향 육포와 캔맥주를 함께 할까 싶다. 책상 위에 놓인 사내 과제인 독후감 대상 도서 [인간관계 경영법 - SNS에서 뛰어 놀자]는 오늘 몇줄 진도가 안 나갈 듯 하다.

[18:51]
오늘도 퇴근길에 살펴보니 한명의 팔로워가 트위터에서 탈퇴를 하였다. 며칠전부터 이런 소리 저런 소리 너무 뱉는다 싶더니 결국 나갔구나 싶다. 어린 친구가 저렇게 뱉을 시간에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시간 관리, 돈 관리 하면 좋잖은가 했지만 이내 “내 자신이 그렇게 꼰대가 되었나?”하며 스스로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디 가서라도 고민과 푸념은 줄이고 실천하길 기원이라도 해줘야겠다. 나는 언제까지 트위터를 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페이스북이야 동문들 원성에 대문만 열어둔 상태지만 트위터는 좀 달랐다. 윗선에서 회사 계정으로 개설하여 운영하라고 하던 것을 별도의 개인 계정까지 만들어 즐기던 유희였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 유희에 지친 듯 하다. 나도 닫을 때가 된건가? 잠시 쉬면 거리를 두고 바라본 상태로 다시 유희에 몰두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잠시 앱을 끄고 지하철 차창 밖의 뚝섬유원지와 한강을 바라본다. 넓게 펼쳐져 있다. 저 바깥을 모른 채 한동안 고개를 숙이며 몰두했구나.

4일 후 [06:08]
@ke****님의 자살 암시 트윗을 봤냐는 @du***님의 쪽지를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독 날선 정신과 번뜩이는 안구를 안고 하루를 열게 생겼다. 오늘은 여러 이유로 트윗 창 열기를 자제할 것을 다짐했다. 그런데 구글 플러스는 또 뭐지? [110817]


+ 한겨레 웹진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