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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악보 위의 체스 말들

trex 2011. 9. 22. 17:11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3453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홍상수는 뉴 밀레니엄이 들어선 2000년에 때아닌 흑백영화 [오! 수정]을 만들었다. 만취한 술자리와 남산 케이블카가 흔들거리는 서울의 풍경이 흑백 화면 안에서 유난히 더 시리게 보였다. 그럼에도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때부터 사람의 온기가 발견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데뷔작 [우물에 빠진 날]엔 ‘살인’이 있었고, 두번째 작품 [강원도의 힘]에선 허약한 체구의 여자가 온 몸을 구겨내며 발산하는 쇳소리 고함이 있었다. 적어도 [오! 수정]을 보고선 웃을 수는 있었다. 제법 귀엽기까지 한 장면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물론 홍상수는 처녀성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두 수컷의 허위를 발가벗길 때의 비수만큼은 숨기지 않았다. 그 칼끝의 감각은 흑백 화면의 온기 안에서도 조용히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기부터 홍상수가 (내겐)흥미로워졌다. [생활의 발견](2002)은 이후 나온 2000년대의 홍상수 세계의 어떤 원형질 같은 존재다. 너무 쉽게 사랑을 뱉는 남자가 있고, 너무 쉽게 사랑을 믿는 여자와 절대 정체를 밝히지 않는 오리무중의 여자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광경들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펼쳐졌다. [오! 수정]의 문제가 ‘기억’에 달렸다면, [생활의 발견]엔 ‘반복과 차이’의 문제를 중요하게 끄집어낸다. 이야기의 도화지를 정확히 반으로 접어서 다시 펼친 듯이 한 차례의 막이 내리면 변주된 막이 새롭게, 허나 익숙하게 시작된다. 언뜻 보기엔 그냥 남녀끼리 지지고 볶는 연애담인데, 홍상수의 영화 속 한국의 지명들은 달력 그림마냥 궁상맞게 자리한 풍경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지정학적인 도상을 그리고픈 욕구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나같은 무식한 대중이 그럴진대 온갖 분야들의 식자들이 탐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홍상수 영화의 관객들은 갈수록 줄어 들었는데, 호평은 갈수록 그렇게 높아져만 갔다.

[북촌방향]은 그의 2번째 흑백영화이다.(단편 [첩첩산중]은 관람한 적이 없어서 알 도리는 없지만, 그 작품이 흑백작품이 아니라면 내 말이 맞을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익히 아는 이들이라면 익숙한 구조에 안락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남자 주인공은 영화계 쪽 인물인데 요새는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설정이다. 전작 중 [생활의 발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에서 이런 남자 주인공들을 이미 만나봤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극중 여자들과 연애(또는 잠자리에 대한 추진)를 한다. 전작 중 상당수가 연애담의 외형이니 예시를 굳이 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에 속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의 영화답게 줄거리만 듣자면 싱거운 이야기다.

한때 영화감독이었던 성준(유준상 분)은 서울에 올라와 북촌에서 선배 영호(김상중 분)를 만나려 한다. 그런데 첫 날은 술 핑계를 대고 한 때 질척한 연애 관계였던 여자(김보경 분)를 만나러 그녀의 집에 간다. 다음날인지 언젠지 알 수 없는 날에 성준은 영호를 만나 영호와 동행한 후배 여교수(송선미 분)와 함께 술집 ‘소설’에 가는데…

여기서 성준은 술도 ‘당연히’ 마시고, 어떤 여자와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한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심한 자세로 보려던 영화가 심상찮게 보이는 순간이 다가왔다. 성준은 , “어떤 새끼도 안 만나. 서울을 얌전하고 조용하게 깨끗하게 통과해 가겠어. 그리고 집으로 슝슝!”이라고 초반 나래이션으로 굳세게 다짐한다. 예상대로 성준은 슝슝 통과하기는커녕 질척하다못해 끈적하게 서울 북촌 어딘가에서 관계의 망을 남기고 간다. 영화는 그에 대한 수습 같은 것은 보여줄 기미조차 없다.(유준상의 영화 마지막, 불안한 눈 연기는 정말이지 발군이랄까) 눈이 소복하게 쌓일 때 흑백으로 보면 더욱 근사하고 예쁜 북촌이지만, 영화는 곳곳에 성준의 타액이라도 바른 양 끈적하다. 그 끈끈함의 비밀은 어떤 지속적인 ‘반복’의 구성에 있었다.

영화는 미리 핑계라도 준비한 듯 후배 여교수의 입을 빌어 ‘우연’이라는 장치를 통해, 같은 구성을 반복한다. 성준은 북촌 어딘가를 누빌 때마다 아는 ‘후배 여자’를 만나고, 만나는 이들은 매번 성준에게 ‘얼마나 더 계시다 갈꺼냐’고 물어본다. 술집 ‘소설’의 주인은 매번 들어서면 부재중이고 – 그리고 몇분 뒤에, 또는 늦게 들어온다 – 성준이 포옹하는 여자와 섹스하는 여자는 같은 여배우다.(다른 여자들과의 성적 긴장감도 유발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들과는 손길도 주고받지 않는다) 홍상수에게 반복은 처음 보여주는 장치는 물론 아니다. [오! 수정]에서의 반복된 같은 사건은 각기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다른 내용물로 재생된다. [생활의 발견]에서의 춘천과 경주는 섹스가 엉킨 연애담을 반복해 주지만, 전자는 ‘붙으려는 여자’가 문제였고 후자는 ‘붙으려는 남자 자신’의 좌절로 대구를 보여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제천과 제주도는 반복이라기 보다는 후자의 비중이 좀 크긴 했지만 [생활의 발견]과 비슷한 양상이라고 생각한다.

[북촌방향]은 반복을 보여주며 그 화소들을 변주해낸다. 성준이 ‘후배 여자’를 보며 보이는 반응은 갈수록 달라지고, 아예 다른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그녀에게 반복한다. ‘얼마나 더 계시다 갈꺼냐”는 질문에 매번 같은 대답을 하던 그는 한번은 “모르겠어요”라는 답을 한다. 같은 여배우가 맡은 다른 두 배역의 여자(들)는 성준에게 순환의 고리 같을지도 모른다는 암시도 준다. 어쩌면… 어쩌면, [하하하]에서 다른 두 남자의 기억을 하나의 줄기로 레고블럭마냥 조립하던 이력도 그렇고 [옥희의 영화]에서 옴니버스로 조각난 같은 얼굴의 배역들이 동일인일까 아닐까하는 놀이를 제안받은 기억에 비춘다면, [북촌방향]의 성준은 북촌이라는 이름의 홍상수 평행 세계에서 매일 같은 아침을 열고 있는게 아니었을까?(아니면 매일 같은 밤을 맞이하거나) 가히 소박한 형식으로 재현된 북촌풍 [소스 코드]?

[북촌방향]엔 눈에 띄는 카메오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전작에 나왔던 배우 기주봉이나 고현정 같은 이름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음악인(이자 올해 가장 중요한 라이브 앨범을 발표한)백현진의 등장이 특별해 보였다. 그와 성준이 대면하는 장면을 보고 홍상수 감독이 어쩌면 영화를 빌어 음악이라는 다난한 변주의 세계에 대해 소박한 탐욕(!)을 가진게 아닐까 했다. 고백컨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고 예전보다도 많이 크게 웃고 하지만 여전히 편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전언한 비수의 정서가 그렇고, 몇몇 이들이 ‘현실의 판본’으로서의 리얼리티라는 포인트로 홍상수 영화를 대하는게 다소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홍상수 세계의 사람들이 현실 안에 있을법한 캐릭터라고 생각한 적 보다는 누군가의 책 제목처럼 ‘언젠가 세상이 영화화된’ 후의 풍경 같다는게 내 입장이다.

그 풍경 안에서 악보 위에 놓은 체스 말 같은 홍상수의 인물들이 버겁지만 못내 또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북촌방향] 이후의 또 다른 작품들에 보여줄, 부추길 상상력의 토막들도 벌써부터 기대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작곡가 또는 지휘자가 되었을까? [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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