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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잡스 시대의 애플은?

trex 2011. 9. 29. 10:31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3656


기대하는 이들에게나 힐난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나 주목할만한 소식. 예상대로 애플의 아이폰 신 모델에 대한 발표가 10월 4일,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에서 있을 예정이다. 애플은 언론을 상대로 Let’s Talk iPhone(아이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라는 짧은 문구와 아이콘이 실린 초대장을 배포하였다. 10월 4일 본 모양을 드러낼 아이폰 신 모델이 기존의 4 모델에 대한 개선형인 4Gs일지, 아니면 아예 신 모델인 5일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최근 5에 대한 기술적 결함 발견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그 어느 쪽이든 손에 쥐는 전화기 모델 하나로 IT는 물론 경제 지면의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애플의 위력이 돋보인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이 질문엔 현재 애플 안에서의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의 부재라는 문제가 걸려있다.

- 1976년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과 애플을 공동 창업한 이례로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의 행보였다. 제프리 영과 윌리엄 사이먼의 책 [iCon]에서도 드러났듯 그는 동업자 워즈니악을 배신하였고, 자신 역시 이사진들에 의해 하루 아침만에 애플에서 쫓겨났다. 새롭게 설립한 NeXT는 IT 역사 속에서 ‘아이폰’만한 회심작을 내진 못했지만, 그의 2000년 애플 복귀를 위한 좋은 추진력이 되었다. 이후의 행보는 괄목할만 하다. 세상의 첫 MP3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MP3 플레이어가 된 아이팟 시리즈, 제조업체들과 통신사들을 휘저은 아이폰의 성장과 진화,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이용자조차도 100% 이해를 못한다는 아이패드까지, 잡스의 자신감은 충만할만 했다. 잡스의 장난감들은 활용성을 떠나 뭔가 가지고 싶다는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절대 반지’들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상은 잡스의 승승장구를 저지시켰다. 2004년 췌장암으로 인한 병가 이후 주주들과 애플팬들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2009년의 6개월 휴가(그리고 간 이식 수술)와 최근의 은퇴 선언은 잡스 개인의 안위뿐만 아니라 애플의 향방을 근심시키는 요인이 됐다. 합성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초췌한 모습의 잡스를 담은 파파라치 보도 사진이 떠돌고, 다시는 아이패드 같은 근사한 장난감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세상의 얼리어답터들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그가 부재한 상태에서 새로운 아이폰을 위한 발표회가 열리는 셈이다. 잡스의 스타성을 재현할 수 있을 ‘신인 아티스트’가 과연 세상에 존재란 하는걸까?

- 알려졌다시피 현재 애플의 새로운 수장은 팀 쿡(Timothy Cook)이다. 그는 올 여름까지 최고운영책임자(COO)의 자리였다가 올 가을을 맞이해 최고경영자(CEO)로 발돋음한 것이다. 그가 새로운 아이폰을 위한 발표회의 프리젠테이션을 할 것임은 확실하다. 세상 누구든 잡스처럼 연설하진 못한다.(아니 그럴 필요가 굳이 없다) 하지만 팀 쿡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표회의 군중은 물론 세상 전체를 주목시킬 수 있을까. 팀 쿡의 성실함은 잡스의 그늘에 있을 당시에도 정평이 났었다. 전형적인 워커홀릭이자 살림꾼 체질은 경영자로서의 자격에 크게 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논리주의자가 보여줄 이 발표회는 단순히 아이폰 신 모델이 아니라, 앞으로의 애플의 방향을 점치게되는 근거가 될지도 모른다.

팔딱대는 창의성과 상상력 대신에 시장 견제에 바쁜 차분하고 이성적인 애플? 그것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애플을 뜻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속단일 것이다. 아직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다만 팀 쿡이 잡스 복귀 이전까지 ‘지속’시킬 애플이 궁금하지만, 한편으로는 근심스러운 것이 상당수 사람들의 속내임은 분명해 보인다.

- 10월 4일은 큰 일이 없다면 잔치 분위기일 듯 하다. 하지만 애플에게 바깥으로는 맘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대표되는 구글, (모바일)윈도우7을 앞세우며 묵힌 칼날을 다시 갈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 아이폰의 존재감과 운영체제 iOS의 지속적인 버전업으로 자신감이 탄탄한 애플. 이 3자들이 서로간의 특허권 분쟁으로 그동안 IT 중원을 활활 태운 덕이다. 오픈 소스(Open Source)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의 보급력을 앞세워 광고 수익으로 영향력을 자신하던 구글을 동시에 견제한 것은 MS와 애플이었다. 구글이 125억 달러를 들여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공들여 인수를 한 것은 이에 대한 방어전인 셈이다. 구글은 모토로라에게 사들인 2만 4,500건의 특허와 지적 재산권으로 각종 소송에 대한 방어막을 형성할 것이다.(투자 대비 효용성에서 효과가 의심된다는 여론이 많다)

모토로라 같은 제조사들이 애플/MS/구글 같은 플랫폼 3강 구도 안의 특허 분쟁에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기존의 특허들은 제조사들의 연구 개발 활동 안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구글이 모토로라 모빌리티에 125억 달러를 썼듯이, 애플은 캐나다 통신회사 노텔을 향해 45억 달러를 들여 특허를 사들였다. 애플 역시 소송을 거는 공격자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 IT 중원의 불타는 특허 분쟁 안에서는 방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운명이다. 퍼스널 컴퓨터 시장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은 요즘, 모바일 생태계의 먹거리가 경쟁을 유발할 수 밖에 없는 견제와 첩보의 장이 된지 오래다. 이런 와중에 삼성은 제조사로서 최근년도 동안 획득한 미국내 특허가 1만 6천여개에 달한다. 반면 애플은 통신 특허가 특히 취약하다, 삼성은 자체 운영체제인 바다(BADA)를 운영중이기도 하지만, 애플에게 민감한 경쟁 상대인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유수의 기기를 발매하였고 이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것이 갈등의 씨앗이 된 셈이다.

처음엔 애플이 다소 웃을 수 있었다. 통신 특허가 취약한 애플이 그쪽으로 특허 소송을 낼리는 만무하고, UI(유저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기술 특허와 포장 디자인 표절 등을 내세워 유럽 시장에서의 소송을 주도하였다. 이것이 먹혔고 삼성의 갤럭시탭 모델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명령이 삼성 독일 법인을 향해 내려졌다. 그 와중의 치명적 부작용도 있었는데, 애플이 소송을 주도할 당시 제출한 증거사진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작됨이 밝혀졌다. 여론쯤이야 애플에겐 상관없었을까.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삼성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3G 통신 특허를 든든히 봉한 삼성의 역공이 시작된 것이다. 딱하게도 애플의 입장은 유리하지 않은 듯 하다. 반격할 특허가 없고, 삼성이 매복해놓은 특허로 공격중이라고 볼멘 소리를 뱉는 이미지로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판결은 10월 14일로 예정되어 있다. 삼성은 애플의 야심작 아이폰 신 모델 발매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한국 시장엔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지만) 지금 분위기로선 애플이 삼성에게 라이센스비를 꼬박꼬박 지급하는 모양새나 그 이상이 될 듯 하다. 어쩌면 애플을 고깝게 보는 이들을 통쾌하게 만들 풍경 – 애플의 비굴함이 바닥을 칠 장관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 한 명의 거대한 카리스마 수장이 존재하나 부재하나 거대 기업은 대내외적인 우환을 겪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Post-잡스 시대의 초입은 다소간 불안하다. 이 와중에 올 11월에 발간 예정인 [잡스 : 자서전]에 대한 소식이 심상치 않게 들린다. 몇년간 틈틈히 이뤄진 자료 조사와 집필 작업을 이끈 저자 월트 아이작슨은 이 책의 존재가 잡스의 건강과는 별개라고 못박았지만, 아무래도 시기상 예사롭게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이 책이 애플이 세상을 가장 집중시켰던 근간의 기록을 담은 대표작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애플을 이 시대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10월 4일 팀 쿡의 아이폰 신 모델 발표회에 잡스가 깜짝 등장하여 몇명의 눈시울을 시큰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11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