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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잡스에서 잡스리스('JOBS'less)로.

trex 2011. 10. 11. 10:30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4067


 


미리 말하는 것이지만 이제 이 지면을 빌어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그가 세상에 내놓은 기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공교롭게 이 글은 일전에 적은 [포스트 잡스 시대의 애플은?]에 대한 덧붙임 또는 슬픈 속편이라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잡스가 집무실에 없는 ‘포스트 잡스’ 시대에 대한 근심은, 잡스가 세상에 없는 ‘잡스리스’ 시대에 대한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그것도 예상보다 다소 빨리, 그리고 여전히 극적으로, 또한 무엇보다 원통하고 서운하게 말이다.

잡스가 부재한 애플의 모습은 아이폰4S 발표일에서 어느정도 예상치를 보여주었다. 과감한 해적의 모습보다는 안전하고 예의있는 – 왠지 일전과 달리 경쟁 회사에 대한 네거티브한 발언도 최대한 자제한 듯 했다 – 애플, 재미있고 무리수가 섞인 과장법 보다는 팬들이 진정 바라는 기기에 대한 언급을 흐리는 애플. 애플 팬덤과 언론이 이런 잡스 없는 애플의 풀죽은 모습에 대해 놀라움과 근심을 표시하였다. 아이폰4S는 애플의 기기들이 그렇듯 예의 선두급의 스펙 보다는 매끈한 기기의 마감과 손에 쥘 사람들의 즐거움과 쾌적함에 초점을 맞춘 기기였다. 요약하자면 나쁜 기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대로였고, 높아진 사람들의 기대치를 모두 만족시키기엔 다소 무리였다. 무엇보다 사람들은 막상 잡스의 당당한 화술이 없는 발표회에 대해 재미가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의 부음이 들렸다. 지나치게 극적이었다. 그의 퇴임과 자서전 발간 예고가 근간에 부쩍 나빠진 그의 건강 때문이라는 공공연한 추측은 있어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쯤 황망히 그가 떠나도 어색하지 않을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성급하게 다가온 비보였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슬픔을 미리 준비하지 못하였다. 전날 웹상에서 신나게 깨졌던(!) 아이폰4S는 난데없이 그의 유작 대접을 받았고, 사람들이 애플에 보내는 근심은 확연한 진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몇가지 기기와 애플이라는 회사를 떠나서 스티브 잡스가 우리 시대의 뉴스메이커에서 ‘기억’의 범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가 그랬고, 마이클 잭슨이 그랬듯이 ‘쇼’가 멈췄다. 이 암전에 보낼 수 있는 말은 추모사 몇마디와 침묵, 황망함이다.

얄궂게도 서울 시장직을 노리는 여당 의원의 홈페이지는 잡스의 부음을 비는 것인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는 의문투성이의 이미지를 내걸려다 비난만 된통 먹었다. 다른 한편의 유력 무소속 의원은 자신과 잡스가 ‘동지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낯간지러운 언사를 뱉었다. 이 모든 것들은 앙상하고 파리하게 지상에 육신을 남긴 잡스에게 민망한 일이었지만, 실상 그가 생전에 남긴 에피소드와 극적인 삶의 단편들의 행보가 정서적으로 뭔가를 건드리는 것은 사실이다. 압도적인 지휘력과 (이 역시 낯간지러운 수사법이라 쓰고 싶진 않지만)’카리스마’, 사무실과 거실 등 생활의 근간 모두를 장악하려 했던 상상력 너머의 비지니스 모델 등은 그가 걸출한 인물임은 설명하는 분명한 사실들이다. 찬사를 준비하든 힐난을 준비하든 사실상 대중들은 그가 그런 면모를 살아있는 동안은 더욱 보여주길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한켠의 그늘엔 한 인간의 결점들이 즐비하다. 불안하게 시작한 유년기와 안정된 결합을 보기까지 시간이 걸렸던 가족 모델,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 때는 울음보마저 보였던 허약했던 패기, 오랜 친우의 아이디어까지 착취했던 뻔뻔함, 피아 구별이 너무나도 선명했던 인격까지 한 천재의 이면엔 아슬아슬함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10월말 출간될 자서전에서조차도 이런 면모가 미화와 은닉으로 채색되진 않을 듯 하다. 다른 의미로 잡스라는 한 인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할 참고 텍스트가 하나 더 든든하게 추가될 공산이 크다. 오죽하면 그의 인생을 영화화하겠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겠는가. 어쩌면 수년 후엔 페이스북의 수장 마크 주커버그를 스케치한 [소셜 네트워크]에 이은, 실화와 상상력이 엉킨 또 하나의 ‘영상 평전’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추모의 시간이 지나면 삼성을 위시한 제조업체와 구글과 MS로 대표되는 생태계 ‘삼국지’의 수장들이 칼날을 다시 애플에 겨눌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미래를 위해 미리 그려둔 ‘밥벌이의 줄기’는 어디까지일까? 아이패드3? 아이폰5?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팀 쿡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애플이 잡스 시대의 애플과는 다를 것임은 지난 발표회에서 어느정도 드러났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절충적이든 결코 앞날들과는 다를 것이며, 무엇보다 고집스럽고 완강했던 한 사내의 무대를 재현할 이는 부재하다. 이 쇼의 잔혹함은 앵콜이 없다는 점이다.

[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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