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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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 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trex 2012. 2. 26. 17:14
정태춘, 박은옥 11집 -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음반>가요
아티스트 : 정태춘/박은옥
출시 : 20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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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만인가. 허나 그 공백이 쉬이 체감되지 않는 것은 누구 말마따나 그들의 목소리는 언젠가 있어왔던 듯 싶고, 어떤 식으로든 소환될 것이라는 짐작이 있어서일 것이다. 서울역 지하도에 차디차게 식은 육신을 지상에 놔두고 '소문도 없이 사라져 주듯이' 객이 되어 떠난 노숙자를 위한 헌가 「서울역 이 씨」에 담긴 정태춘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나즈막하고 울컥함을 누른 체 삶과 세상을 위로한다. 속절없이 떠난 객들을 애써 외면하지 못해 자본주의 음반 시장에 다시 돌아온 양.


이어지는 「저녁 숲, 고래여」에선 박은옥의 뒷편 보컬이 겹친다. 정태춘이 하나의 상징이자 걸출한 작곡가로 위치매김 한 것에 반해, 박은옥의 위치는 다소 평가절하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은옥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난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종교적 엄숙함과 사르르 떨리는 여린 숨결을 동시에 담고 있다. 보다 더 절박하고 바닥에 수없이 부딪히며 낙수하는 빗물 같다. 3번째 트랙 「강이 그리워」까지 들으면 그제서야 실감이 난다. 정태춘과 박은옥, 두 사람이 오롯이 돌아왔음을.


앨범 안은 노골적으로 '물'의 이미지가 자주 호명된다. 제명에 표기된 '고래', '강', '바다', '오리배' 등은 크기와 폭을 떠나서 흐르는 물과 그 물을 건너는 방법론에 관한 거론이다. 가사는 보다 더 수북하다. '배', '망망대해', '심해', '은어','물길', '바닷새', '은빛 강물', '호수' 등 지속적으로 호명되는 물의 심상은 인상적이다. 물론 전작들에서도 드러나던 정서이기는 하나, 보다 더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픈 장치이기도 하다. 물은 시원(始原)의 장소이자 태초의 이미지, 생명체가 태동하고 자라나는 공간으로써 흔히들 해석된다. 정태춘의 가사에서의 물은 언제나 우리가 흘러가야 할 공간, 도달해야 할 이상적 - 허나 아련한 - 태고의 장소인 듯 하다. 


일단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앨범이다. 「섬진강 박 시인」에서의 리코더와 어쿠스틱 연주의 배합은 이 곡의 구성진 분위기의 편곡을 돋보이게 한다. 앨범 곳곳을 채운 스트링의 물결은 느끼함이 아니라 일랑이는 세태 속의 사람들 속내처럼 파르르 떨린 채로 박혀있다. 무엇보다 로직 프로그램을 통해 편곡 작업을 한 '젊은' 정태춘 자신이 인상적이다. 앞으로도 그가 많이 만들어낼, 그간 만들어온 숱한 넘버들이 세상 바깥에 튼튼한 육신을 드러내길 바랄 뿐이다. 


앨범은 이내 가장 핵심이자 절정인 「날자, 오리배...」로 이어진다. 남쪽 한국에 와서 수없이 프레스기에 손등이 찍히고, 톱니에 손가락이 날아간 이주 노동자를 위한 눈물나는 헌사이다. 이 곡에서 그는 굳건한 다짐을 하는 듯한 또박또박한 나래이션과 노래를 섞으며 곡절 많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이칼 호수', '에게 해 진흙 바다', '아프리카 호숫가', '티티카카 호수'라는 구체적 지명과 '일군의 오리배들' 같은 환상성 섞인 귀환의 의지가 뒤엉켜, 이 땅의 인간됨을 다시 묻고 있다. 인간됨, 인간 같이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질문은 정태춘의 끈질긴 질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갸우뚱해진다. 이것은 듣는 청자인 내 탓인가,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연출의 탓일까. 앞에 배치된 8곡의 발표곡보다 마지막 트랙이자, 다시 헌정의 형식으로 불린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가장 벅차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곡이 정태춘 박은옥 듀오의 최고의 성취 중 하나인 탓일까, 아니면 2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이 곡이 던지는 질문과 절망의 풍경이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한 탓일까. 아직 오지 않은 '바다행' 시내버스가 당도할 때까지 이 찜찜한 질문은 풀리지 않을 성 싶다. [12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