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마지막화.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마지막화.

trex 2012. 2. 21. 23:12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드디어 용산에서 파나소닉 CD 플레이어를 구매했다. 테이프 구매를 중단하고 이후부터는 CD만....


비트겐슈타인 라이브 본 이후엔 판테라 내한에도 갔었다. 돈 쓰는게 겁이 없어진게 아니라 이런건 경험해봐야 한다는 온라인 지인의 재촉도 있었고, 과연 경험해볼만한 일이었다. 오프닝 디아블로에서 시작할 땐 의기양양한 스탠딩 3번째 줄이었는데 엄청난 체력전에 밀려나 정작 판테라 때엔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이후 모든 스탠딩 공연엔 난간 매니아가 되었다. 해외 뮤지션 내한 중 2번을 본건 드림 씨어터가 유일했다. 앞서 말한 온라인 지인의 재촉 덕이기도 했다.(정확히 그는 드림 씨어터 매니아였다) [Metropolis Part 2: Scenes from a Memory]는 몇곡의 대표 넘버 밖에 모르던 드림 씨어터에 대한 인상을 고치기에 좋은 앨범이었다.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 아 흔하고 고리타분한 표현 - 구성과 변화무쌍한 진행에의 인도는 드림 씨어터를 나에게 기존의 이미지를 넘어서 뭔가 각별함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드림 씨어터 역시 다른 밴드들처럼 '역순으로 되짚어보며 구매하기'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는 이후 발매된 [Six Degrees of Inner Turbulence] 두번째 디스크를 통째로 2부에서 라이브로 들려준 내한 공연 당시엔 무진장 감동받기에 이른다. 존 명 보다가 페트루치 보다가 아주 눈 돌아가기에 바빴다. 그땐 난간도 안 잡고 아예 먼발치서 보는 '감상파'가 되었다.(보는 락페스트 및 마를린 맨슨 내한에도, 나인 인치 네일즈 내한 때도 그랬다) 



CD로 구매 패턴으로 바뀐 뒤부터는 CD로 기존 테이프 목록들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즉 일종의 재구매인 셈이었고, 소비는 출혈이 되지 않도록 식은 땀나는 패턴이 되었다. 팻보이 슬림, 케미컬 브라더스, 프로디지의 기존 목록들이 특히나 기억난다. 프로디지의 [The Dirtchamber Sessions, Vol. 1]은 근사했다. 프로디지의 공식 목록이라기보다는 DJ리암 하울렛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콜렉션 격 타이틀이었지만, 퍼블릭 에네미와 섹스 피스톨즈, 허비 행콕, LL 쿨 J 등이 한 앨범 안에서 엉켜있는 광경이 제법 재밌었다. 초기엔 팻보이 슬림이 케미컬 브라더스 보다 더 좋았다. 아무래도 첫 구매 케미컬 브라더스가 [Surrender]였던 탓이 컸다. [Dig Your Own Hole]가 첫 구매 앨범이었다면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2001년 겨울, 이승환의 7집 [Egg]이 발매되었다. 1 CD 선 발매, 후에 더블 앨범 발매 등 구매할 때 사람 참 혼동되던 앨범이었다.(피해자[?]이기도 하다) 아마 이때부터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승환의 음악을 등지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내 개인적으로 이때부터 이쪽의 팬덤에 관심이 생겨서 드림팩토리도 가입하고 '늦바람'이 불었던 기억이 난다. 앨범은... 분명한 단점도 있었고, 여전히 잘하는 건 잘하던 앨범이었다. 분명 한두줄로 줄여서 설명하기엔 좀 복잡한 심경을 주는 앨범인 것은 사실인 듯 하다. 이듬해부터 이승환의 공연도 관람하기 시작했었다. [무적전설]의 '말 그대로 전설'이 지나간 후였다. 언제나 이런 늦바람이 내겐 문제였다.



원래 한번 정을 주면 오래도록 가는 편이다. 음악과 뮤지션에 관해선. 그게 문제인 경우가 다소 있다. 가령 Korn 같은 팀을 오래도록 '믿기로 해보고' 지켜보는 일 같은 거 말이다. [Issue] 같은 앨범, 아니 될 수 있으면 전작부터 진작에 버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요샌 문득 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말대로 되나. 익숙하고 안전한 구매와 이력 파보기의 다짐이 내 기질이었던 모양이다. 내 순진한 바람과는 별개로 뉴 메탈씬은 이미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어쩌겠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같은 팀은 내 체질이 아니었는데! 



방향은 두가지였다. 인큐버스는 [Morning View] 앨범으로 '우리는 헤비니스 비슷한 것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눙치기 시작했고, 머드베인 같은 신성이 [The Beginning of All Things to End] 같은 앨범으로 '콘과 툴, 슬립낫의 만남' 같은 말도 안되는 평가를 받던 시기였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인큐버스가 현명했던 것이다. 물론 머드베인 같은 팀 같은 경향도 껴안았던 나였지만... 어쩌겠나. 음악 듣기란 결핍과 결핍으로 인한 발견, 지속적인 포옹, 그리고 훗날의 변절인 것을.


여기서 내 이력을 적는 것을 마무리한다. 그렇다. 황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마무리하는게 맞지 싶다. 원래는 20화 안에 마무리하려 했던 분량이고, 한편으로는 투째지님을 온라인에서 알게 되어 음악취향Y 가입한 2006년까지는 적을까도 싶었다. 좀더 길게는 음악취향Y 덕에 이 나라 대중음악에 '그나마 좀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변화까지도 담고 싶었다. 여기서 마무리하는 것은 이후의 일들이 오히려 과거사보다 더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다. 몇 개월만에 하나씩 구매하던 소중한 과거사의 감정이 보다 풍부했고,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즐거움이 이 시리즈를 통한 토로의 이유였으리라.


기본적으로 이후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진행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난 여전히 툴과 데프톤즈를 지지하고, 드림 씨어터 등을 '대체로 지지'하고 어떤 팀들에 대한 희망을 저버렸고, 할로우 잰, 나인씬 같은 발견에 뭉클했고 킬스위치 인게이지, 램 오브 갓, 인 플레임즈들의 21세기를 고맙게 여긴다. 이 시리즈를 통해 미처 말하지 못했던 브라이언 아담스, 리차드 막스, 그리고 아주 잠시나마 말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에 대해선 미안함을 느낀다. 언제 다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음악이라는 것이 있음에 감사히 여긴다. 요새는 자주 까먹는다. 그래도 아직은 말할 수 있다. 음악, 좋아합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120221]


[국내반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편집입니다]


2012/01/20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1화
2011/12/27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0화
2011/12/07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9화
2011/11/1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8화
2011/10/24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7화
2011/09/27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6화
2011/09/21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5화
2011/09/0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4화
2011/08/0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3화
2011/07/1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2화
2011/07/0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1화
2011/05/30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0화
2011/05/24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9화
2011/05/17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8화
2011/05/1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7화
2011/05/09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6화
2011/05/04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5화
2011/05/0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4화
2011/04/29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3화
2011/04/2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화
2011/04/2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