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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뭐라칸다/창의극장

마른 등

trex 2012. 12. 3. 12:43

경애가 춤추는 아이를 만난다고 말을 털어놓은 것은 카페에서 자리를 정한지 13분여 후 남짓이었다. 이번에는 13살 차이라고 했다. 경애 자신이든 우리든 하얗다 못해 투명에 가까운 피부를 가진 경애의 유리한 조건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바텐더, ROTC 장교 아이, 음악하는 애, 그냥 잠자리만 잘하는 노는 아이 등 경애의 연애사에서 +1 하나 더 붙는다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문제는 경애의 등이었다. 경애가 엉겁결과 의도된 시나리오 사이의 잠자리를 마친 후, 남자의 데워진 손길이 등을 타는 순간을 즐기는 것도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경애가 젊음이라는 가치에 천착하게 된 것은 얼마전부터의 일이었다. 지도 교수의 바삭 마른 고목 결 같은 손길이 위안보다는 측은을 낳게 하고, 서로간의 사려가 아닌 착취와 탐식이라는 당연한 수순으로 향했을 때 경애는 학부생 아이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정윤이 둘째가 다니던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어린이집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중에 경애는 3명의 아이들을 오갔고, 성희가 전세살이를 2년 동안 3번 이사한 동안에 경애는 6명의 아이들과의 짧은 관계를 청산하였다. 내가 혼전임신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을 4년여 만에 차분히 박살냈을 때, 경애의 그동안의 연애사가 얼마나 불꽃놀이 같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경애의 말로는 춤추는 아이는 이전에 만났던 아이 - 소년이라 해도 될 듯 하고, 청년이라 될 듯한 경애를 거쳐간 군집체들 - 들과 달리 좀더 상식이 부족하며, 입이 좀 더 험하다고 했다. 거기에 덧붙이지 않아도 될 사실은, 경애가 그 아이를 선택한 이유는 그럼에도 여전히 등을 따스하게 쓸어줄 '젊은 손바닥'을 '춤'은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경애가 말한 그 아이가 거리에서 춤을 추는 광경을 상상하였다.

 

차디찬 세상이 인공적으로 조성해놓은 땅바닥에 경애의 마른 등을 쓸어주는 용도 대신 물구나무가 된 온 몸을 지탱한 순간, 손바닥의 살갗과 근육이 조성하는 절박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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