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젊은 블루스, 앞으로의 브루스 본문
요새 [블루스 더, Blues]를 발매 당시 입소문이 돌 때보다 더 자주 듣고 있다.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한 덕에 그 면면도 참으로 다양하다. 게으른 평자들이 음반 [1]을 두고 블루스 운운 상찬하기 바빴던 (안)블루스 밴드 로다운30은 정색하고 칼칼한 블루스 넘버를 선보이고 있고, 게이트 플라워즈 ‘염’기타 조이엄은 찐한 블루스 락 넘버를 선보이고 있다. 마지막 수록곡 ‘트위터 블루스’를 부른 강산에는 이젠 뭘해도 어느 정도의 경지와 여유가 보인다. 어느 수록곡 할 것 없이 균등한 깊이와 질을 보이고 있어 이게 만족스럽다. 그런데 음반에서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대목들은 역시나 다른 이름들의 몫이었다.
하헌진, 김대중 : 앞으로 더욱 자주 보게 될 이름들
하헌진과 김대중 등은 요즘 홍대 쪽 ‘이야길’ 들어본 이들에겐 제법 핫한 이름일 것이다. 아이폰으로 녹음하고 발매 후 완판되었다는 전설(!)의 EP [개]를 시작으로 2번째 EP [지난 여름], 3번째 EP [오]에 닿은 하헌진은 요샌 드러머 김간지와 함께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공연을 하고 있다. 화려한 슬라이드 보단 리듬 잘 끊는 주법으로 델타 블루스의 맛깔스러움을 전달하는 그는 어눌하면서도 어긋난 김간지와의 만담으로도 객석 안의 생경함을 친화력으로 데우는 재주도 겸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래의 맛이 좋다. “정신 없이 물고 빨고 땀에 쩔어 뒹굴고 내 방에 침대가 생겼다네-”(‘내 방에 침대가 생겼다네’) 이것은 10센티식 인스턴트 에로스와 장기하 1집식 궁상 스토리 만들기 의 만남이랄까. 한국에서의 블루스 솔로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적당한 누추함을 안고 형성되었다.
김대중 쪽은 보다 걸죽하다. 같은 가사를 주절주절 반복하는 하헌진에 비해 김대중의 가사 속 이야기는 선명하다. 하모니카 연주자 ‘박형’의 양념이 적소에 박힌 채로 ‘박형’의 보증금 300에 월 30의 방 찾기 실화가 충실히 재현된다. 비행기 바퀴가 닿을까 옥탑방과 핵폭격에도 무사할 듯한 퀘퀘한 반지하, 돈을 그냥 펑펑 날리고픈 이태원의 ‘그 누님’들을 본 각박한 하루의 여로는 이내 곡기를 일깨운다. “평양냉면 먹고 싶네-”(’300/30′)라는 곡절있는 혼잣말은 뜬금없지 않다. 제 몸 하나 겨우 누일 3평 남짓한 공간만을 허락받은 서울 빈민들에겐 실감나는 사무친 고독감이다. 기타 하나 들고 인종과 계급이 안겨준 무게감을 초극하고자 했던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 뮤지션들의 형편과 201*년의 한국의 풍경이 이렇게 조우한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그렇다.
이들의 생존(활동) 기반은 일단은 자립과 연합이다. 하헌진은 김일두와 스플릿 음반 [34:03]를 낸 바 있다. 까슬까슬한 부산 출신 음악인 김일두와 슬슬 짐짓 여유를 찾아가던 서울 하헌진의 대비가 선명한 작품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요새 하헌진은 드러머 김간지와 공연을 돌고 있다. 두 사람간의 리듬 격전은 언제나 볼때마다 즐겁다. 한편 김대중은 김일두, 김태춘과 더불어 ‘삼김시대’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요새는 깜악귀, 박형, CR태규와 함께 ‘블루스 사방신‘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기대해도 좋다”는 솔로 음반 준비와 더불어 앞으로 크게 될, 그렇게 응원하고픈 이름이기도 하다. ‘홍대에서 뭐 건질거 없나’ 두리번거리던 패션지가 사진을 찍어간 하헌진도, ‘영화판 언저리’에 있다 이제서야 뭔가 시작한거 같다는 김대중도 적어도 앞으로 자주 보게 될 이들이다.
블루스에서 브루스까지.
이쯤되면 물음표 하나가 머리 위에 두둥실 뜨게 된다. 이제 달달하면서도 내성적인 포크 또는 90년대 넘버들과 자작곡으로 흥을 돋우던 버스킹 음악인 시대와 젊은 블루스 음악인 시대가 바톤을 주고 받는 것일까? 조심스러운 관망이지만 이들의 활동이 자립, 또는 자체제작 기반이라 시장의 확장은 어느정도 한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듣는 평자들만 신나서 이야기를 캐내는 현실로 멈추지 않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들이 다소 높기도 하다. 본작에서도 곡 하나를 실은 김마스타는 [김마스타&서울블루스]라는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다. 노래 한 곡에 600원도 지급하기 싫어하는 소비자들과 노래 한 곡의 수입도 철저히 빨대로 흡수하는 통신사가 어우러진 음원시장 왜곡에 대한 항변의 의미다.
달달하면서도 내성적인 포크들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을 필두로 한 ‘중산층 자녀풍’ 축제의 주요 레퍼토리이기도 했다.(물론 그 축제 안엔 락앤롤도 있고, 슈게이징도 있고, 일렉트로니카도 있다) [블루스 더, Blues]와 [김마스타&서울블루스] 등은 2013년이 지난 후 어느 곳에 위치할 수 있을까. 오르가니스트 림지훈(펑카프릭&부슷다)의 구성진 농염한 연주(‘좋아서 우는 겁니다’)는 마치 ‘와이키키 브라더스’ 공간을 연상케하고 김마스타의 음악(‘이 긴 밤’)은 ‘재즈바가 되려다 쇠락한 카바레’가 된 공간의 정서와 닮기도 했다. 하헌진, 김대중 같은 델타 계열과는 또다른 이들의 위치는 새로운 ‘성인가요’의 지점을 확인하게 한다. 림지훈은 그의 입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블루스가 아닌 ‘브루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블루스라는 이름의 이 ‘흐물흐물’한 새삼스러운 조류는 느슨하게나마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저 즐기며 지켜봐도 되는걸까. 유희와 책무감 사이에서 듣는 이도 그렇게 맘은 편치 않다. [130316]
- 여러 아티스트 [블루스 더, Blues] 붕가붕가레코드 | 2012년 10월 발매 -
+ 웹진 다시(daasi) 게재 : http://daasi.net/?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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