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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Destroy Angels 『Welcome Oblivion』: 또 하나의 심장

trex 2013. 4. 3. 21:22



+ 음악취향Y 게재 : http://cafe.naver.com/musicy/17012



How To Destroy Angels 『Welcome Oblivion

Columbia / 2013. 3월 현지 발매



01.The Wake-Up 

02.Keep It Together 

03.And the Sky Began To Scream 

04.Welcome Oblivion 

05.Ice Age 

06.On the Wing 

07.Too Late, All Gone 

08.How Long? 

09.Strings and Attractors 

10.We Fade Away 

11.Recursive Self-Improvement 

12.The Loop Closes 

13.Hallowed Ground 



트렌트 레즈너의 행보가 『Year Zero』이후, 한껏 전환했음은 사실이다. 프리 다운로드라는 당시로선 새로운 방식으로 음악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드높인 전략도 인상적이었다.(공유는 자유롭게, 오프라인 구매 패키지는 다양한 옵션으로 수집벽을 자극하게!) 황량한 앰비언트 입자 모래알들이 모인 사막화 진행 앨범  『Ghosts I-IV』를 필두로, 『Year Zero』와 『Ghosts I-IV』사이에 나온 사생아 같은 음반 『The Slip』은 인더스트리얼이라는 일관된 행보를 걸어온 한 뮤지션의 모색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모색이 아니었음은 이내 드러났다.

 

 

아티쿠스 로스(Atticus Ross)와의 지속적인 협업의 결과였던 [소셜 네크워크],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사운드트랙들은 '영상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음악'에서 멈추지 않고 '영상에 헌신하며 공기를 형성하는 음악'으로써의 트렌트 레즈너 뮤직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 디스코그래피 사이에는 동료 아티쿠스 로스와 더불어, 반려자이자  밴드 '웨스트 인디언 걸’(West Indian Girl) 출신의‘마리퀸 만디그’(Mariqueen Maandig)까지 함께 한 밴드 프로젝트 How To Destroy Angels(이하 HTDA)가 있었다. 레즈너식 바삭 말린 발라드를 여성의 목소리에 실어나른 첫번째 EP에 이어, 이 행보가 일발성이 아니었음을 보여준 『An Omen』까지 닿으니 확실히 깨달음이 왔다. 트렌트 레즈너는 휴지기를 가질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3CD의 장관을 보여준 [밀레니엄] 사운드트랙의 마지막 곡 「Is Your Love Strong Enough?」는 HTDA의 이름으로 실린 작품이다. 이 곡에서 레즈너와 로스는 여전히 음산한 연출자이지만, 한편으로는 멜로딕한 팝의 감각을 동시에 겸비함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레즈너에겐 『The Fragile』 당시부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 나름의 과제가 된 듯 하다. HTDA 는 그런 면에서 유효한 숨통인 모양이다. 물론 신작이자 정규반인 『Welcome Oblivion』를 채우는 주요 요소들은 백터 이미지를 비트맵 단위로 쪼갠듯한 예의 조각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암수 서로 정답게, 아니 허무의 감각으로 부르는 레즈너와 만디그의 보컬이 있다. 

 

 

「Keep It Together」쪽이 HTDA의 데뷔 당시와 닮았다면, 이어지는 곡 「Ice Age」은 일종의 인더스트리얼 포크랄까. 현악 샘플로 조립한 간단명료함으로 중반부까지 이끌다 후반부에 노이즈를 잠시 덧씌운다. 이렇게 익숙함과 다소의 새로움이 공존하는 셈인데, 이 두 곡은 이미 앞선 EP에 공개된 작품이었다. 만디그의 목소리 대신 레즈너의 목소리가 앞선 「On the Wing」도 그렇고, 음반의 전반부는 『An Omen』속의 괜찮은 작품들의 재생과 나열에 치중한다. 인간됨의 따스함을 표백 처리한 서늘한 공기로 겨누는 저릿저릿한 순간들이다. 다행히도 그 정도에서 끝나지 않아서 본작은 정규반 노릇을 한다. 비트 덩어리를 가지고 깍둑썰기를 거듭한 듯한 「Too Late, All Gone」은 비정하게도 들리지만, 한편으론 절절함이 넘친다. 설계자들의 정성이 엿보이고 듣는 귀로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곡이다.



"얼마나 더 우리가 이 짓거릴 계속 할 수 있을까? How long can we keep holding on?"라는 가사로 질문을 쌓는 8번곡「How long?」은 흔한 말로 더 대중적이고,  「Ice Age」보다 데뷔작에서 더 떨어져 있는 곡이다. 그럼에도 HTDA의 곡임에 틀림없다. 그 공이 중반부부터 엉킨 사운드를 익숙하게 감독해내는 레즈너 또는 로스에게 있거나 건반 또는 비쥬얼 컨셉을 맡는 롭에게 있든 말이다. 「Strings and Attractors?」에까지 이르면 몽환성과 서슬퍼런 연구실의 풍경 양쪽 모두에 어울리는 이들의 위치를 실감하게 한다. 여기까지가 HTDA에 반할 수 있는 진도고, 남은 4곡은 보다 심화 학습 코너라고 할 수 있다. 분절하는 음의 단위와 노이즈, 노래부르기 보다 분위기에 치중하는 만디그의 목소리, 짧지 않은 런닝 타임까지, 이 모든 것이 기계 인간들을 위해 마련된 명상의 시간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름다움이라는 요소가 보다 더 부각된 것 외에 HTDA의 성과물이 나인 인치 네일즈의 근작들과 큰 차이를 두고 있는지는 아직 확 와닿지는 않는다. 레즈너와 로스의 협업 영화 음반 작업들까지 생각하자면, 오히려 레즈너 자신이 확장하는만큼 각 영역들의 변별 지점이 흐릿해지는 것도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복귀'한다는 나인 인치 네일즈의 새 작업에 이 변별 지점이 하나의 핵으로 수렴되어 나타날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도 든다. 그렇지만 HTDA가 그 과정 속의 싱거운 원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가진다. 『Welcome Oblivion』만 놓고 보자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혹적인 작품이다. 아마도 HTDA는 나인 인치 네일즈의 행보와 같이 걸어갈 레즈너의 두 개의 심장 중 하나이리라. [130403] 

 


 

* 크레디트

 

 

How To Destroy Angels are :

 

- Trent Reznor

- Mariqueen Maandig

- Atticus Ross

- Rob Sheridan

 

 

Mixed by Alan Moulder

Mastered by Tom Baker @ Precision mastering, Hollywood, ca

Recorded by Blumpy with additional engineering by Dustin Mosley & Jun Murakawa

 

Produced by How To Destroy Ange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