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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 사회 입문일지

trex 2013. 5. 20. 13:01

저작권에 대한 인식에 한해서 지금도 형편이 좋다고 보기엔 힘들지만, 예전엔 PC를 구매하면 무료 아닌 무료 게임들이 설치된 상태인 적이 많았다. 변종된 테트리스류 게임들, 소위 ‘고인돌’이라고 불렀던 게임, 창고 퍼즐 게임 등 내용물이 실로 다양했다. 동네 매장에서 컴퓨터를 구매하니 ‘울펜슈타인’이니 ‘둠’이니 깔려 있어 즐거워했던 기억도 난다. 되돌아보면 존 카멕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아시아 몇몇 국가에 화를 좀 냈을지도 모르겠다. 공유와 확산은 몇몇 이상적 개발자들의 이상적 비전이기도 하지만, 상업 논리가 판치는 게임 대량 생산 시대엔 자칫 큰일날 몽상이기도 하니 말이다. 


조던 메크너, 둘도 없을 캐릭터를 낳다.


아무튼 그런 게임들 중 하나는 [페르시아의 왕자]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고등학교 PC실습실에 누군가가 잔뜩 이 게임을 설치해놓아 동기들을 즐겁게 했었다. 그게 애플II 버전이 1989년에 발표된 이후, 줄줄이 출시되었던 IBM 버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간혹 게임의 역사 중 몇몇 대목은 우리같은 소년 소비자들의 눈을 확 잡아끄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가령 스트리트 파이터2에서 8명의 격투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대목, 버추어 파이터1의 각진 폴리곤 캐릭터들이 서로 싸우는 장면 등이 특히 그랬다. 눈앞의 새로움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그랬다. 유연한 몸짓으로 성 내부를 누비는 캐릭터의 놀랍고도 사실적인 움직임은 지금봐도 놀랍다.


이 시점에선 다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이미 페르시아의 왕자는 2D 공간의 한계(?)를 벗어나 비상하고 시간의 모래로 왜곡장을 낳고 3D의 세상에서 자유롭게 시리즈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그뿐인가, ‘이보시오. 만다린 선생. 이게 무슨 소리요’의 벤 킹슬리와 제이크 질랜홀이 출연한 영화화 작업까지 이뤄진 마당이 아닌가. 말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페르시아의 왕자 1편의 개발자 조던 메크너의 첫 번째 꿈은 애초에 헐리우드 극작가였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가 극작가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에 이뤄지지 않았던 성취는 21세기에 들어서야 간접적으로 실현되었다. 세상사 중 몇몇 대목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럼에도 엄연한 사실은 조던 메크너가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의 아버지라는 점이다.


순산보다는 난산이었다.


소개할 책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 1975 - 1993](이하 개발일지)는 조던 메크너의 사회 진출기이자, 첫 기적에 대한 토로와 기록이자, 게임 개발의 비밀을 엿듣고 싶은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노트이다. 다만 이 책은 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고, 도서관에 신청해봤자 담당자들을 곤혹케 할 목록이다. 개발일지는 몇몇 뜻있는 이들에 의해 발간이 실현된 e-book 타이틀으로써 5월경 한글화되어 출간되었다. 가령 애플 iBook스토어를 통해서는 한국을 제외(!)한 국가 계정으로 유료로 구매할 수 있으며, 모바일 디바이스를 위한 도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디북스 같은 업체 앱을 통해서도 구매할 수 있다. 게다가 iBook스토어 버전에서만 개발 관련 몇몇 영상 클립을 책 속에서 볼 수 있다. 아 물론 이 출간은 조던 메크너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개발일지에 실린 다양한 이야기들을 충실히 옮길 재간보다는 인상적인 몇몇 대목에 대해 토로하는게 경제적이지 싶다. 하얀 가라데 청년의 ‘여인 구하기’ 모티브 액션 게임 데뷔작 [카라테카]가 낙양의 지가를 얻은 이후, 일순간에 게임계의 각광받는 젊은이가 된 존 메크너 자신의 이야기로 책은 서두를 연다. 여기까지 적으면 순항중인 크루즈함의 일지를 적듯이 쉬운 행보가 이어질 듯 하다. 하지만 이후부터가 문제다. 존 메크너는 게임 개발자로서의 비전보다는 극작가로 성공하고 싶은데, 에이전시가 시원찮은지 대중적인 감각의 문제인지 글의 영상화는커녕 팔리지도 않는다. 게임 쪽이 잘 풀리냐면 그것도 아니다. 소속 기업인 브로더번더의 시원찮은 협조와 원하는 조건이 관철되지 않는 계약조건, 마케팅 담당자의 안 하니만 못한 일처리 덕에 시쳇말로 빡치는 대목이 일쑤다. 심지어 페르시아의 왕자는 초기 출시 이후 판매량도 영 시원찮았다!


이 책의 재미가 여기에서 나온다. 게임 캐릭터의 모션을 따기 위해 일일이 캠으로 동생의 활동 영상을 찍는 수공업적인 정성도 허를 찌르지만, 그보다 우리를 공감하게 만드는 대목은 기업 안에서의 개인이라는 난처한 입장이다. 사내 평가도 괜찮은 프로젝트인데, 외부 평가는 별로고 계약 조건은 만족스럽지 않고, 내부 담당자는 꼴통 같고, 결정적으로 내가 하는 이 일이 일생을 걸만한 분야인가?하는 물음이 뭉게뭉게 담배 연기마냥 피어오른다. 멀고 먼 아시아 국가 어디선가 공짜로 몇 년간 이 게임을 즐긴 우리로선 예상치도 못한 고민을 안고 개발자 조던 메크너는 홀로 코드 짜고 버그 잡고 속된 말로 ‘뺑이를 쳐왔다.’ 눈물 난다. 누군가는 전설로 장식할 일이지만, 당시로선 엄숙한 현실이었다.


즉 페르시아의 왕자 개발에 얽힌 거창한 비밀의 토로나 시리즈 탄생의 거창한 서막보다는 세상 속 수많은 개발 초심자들을 향한 질문지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은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나요? 정말 하고 싶은가요? 왜 하고 싶은가요?’ 다른 의미에선 개발자 아닌 세상 숱한 취미가들과 사회 입문자들에 대한 질문으로 옮아간다. ‘당신은 당신이 좋아하는 일들에 최선을 다했나요? 고비 때마다 당신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하였나요?’ 게으른 직장인인 내 입장에선 속쓰린 질문들의 연속이다. 게임이라는 1시간 이내의 도취 행위엔 이토록 엄정한 이야기들이 담긴 것이다. 그것엔 문화가 담겨있고, 인생이라는 이름의 꿈이 녹아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니 왜 이렇게 게임에 대해 구박만 하시냐구요. [130519]





[페르시아의 왕자 : 개발일지 1985-1993]  조던 메크너 저 | 장희재 역 | 조기현 감수

미국 iBookstore 링크: https://itunes.apple.com/us/book/peleusiaui-wangja-gaebal-ilji/id642715221?l=ko&ls=1
리디북스 링크: http://ridibooks.com/pc/detail.php?id=289000016

한글판 발간 작업 준비 당시 굿펀딩 URL : http://www.goodfunding.net/src/menu.php?menu_idx=project_view&mode=project_view&prj_code=12040270


+ 웹진 다시 게재 : http://daasi.net/?p=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