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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쾌락 : GTA 시리즈의 경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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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과 쾌락 : GTA 시리즈의 경우.

trex 2013. 10. 3. 21:28

핸드폰으로 연락이 온다. 새로운 명령이다. 택시를 잡으려다가 햇빛에 잘 반사된 바디를 뽐내는 자동차가 저편에서 오는 걸 발견한다. 세운 후 차 주인을 바깥으로 내팽개친다. 차에 탑승하려는 찰나, 내동이쳐진 차 주인이 벌떡 일어나 나의 뒤통수를 가격한다. 나도 따라 반격한다. 부근에서 런닝을 하다 이 광경을 빤히 보던 한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간다. 싸움이 길어진다. 내가 차지하려던 차 뒷편에 다른 자가용이 그만 접촉 사로를 일으킨다. 난 이윽고 바지춤에 있는 권총을 꺼내서 차 주인을 쏜다. 이젠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저편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난다. 응급차도 어느샌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온다. 추돌 사고가 이편저편에서 발생한다. 혼란이다. 급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경찰차의 추적과 경찰관의 사격이 이어진다. 이런 아비규환이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근심


한 파괴충동 범죄자가 토로하는 고백이 아니다. GTA 시리즈, 구체적으로 4편에서부터 세밀하게 묘사돼 온 게임 속 정황 중 하나이다. 그렇다. 게임업계 사람들은 시리즈가 추가될수록 또 하나의 걸작이라고 추켜세우고, 게임업계 바깥 사람들은 근심의 목소리로 사탄 취급을 하는 그 게임 말이다. 근심하는 어르신들 걱정에도 아랑고없이, PC 패키지도 아닌 콘솔용으로 발매된 이 게임을 구매하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은 줄을 섰었다. 대작 게임 관련 이슈라고 해봐야 작년 왕십리역 광장의 디아블로3 발매 행사 외엔 드문했던 한국의 상황에서 말이다. 도심 속 도로에서 총성과 자동차 사고가 남발하고, 차량에는 불길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이 난장판 조성 게임이 말이다. 혹시 당신도 이 사실이 근심스럽지는 않은가?


GTA는 근사하다. 특히 4편에서부터 말이다. 지나가는 행인 아무에게나 시비를 걸다 주먹다짐을 하고, 해안 부근이라면 행인을 밀어서 바닷물에 빠트릴 수도 있고, 아예 통 크게 남의 헬기까지 훔쳐타는 이 불순한 게임이 근사하다고? 그렇다 사실이다. 이것들을 모두 가능케 만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도시의 세계관이 있고, 언제든 플레이어의 반응에 사실적인 대응을 준비하는 인공지능 NPC들이 시민의 모습을 하고 여기저기 걷고 있다. 그뿐인가 도로에는 언제든 훔쳐탈 수 있는 자가용들이 주행을 하고 있다. 자가용과 탈 것들은 플레이어가 훔쳐 타면, 게임의 장르까지 변모시킬 정도로 박력이 넘치게 도심을 빠른 속도로 누비게 만든다. 운전에 다소 미숙하다면 가로수길의 전등이 쓰러지고 차량은 파손되고, 플레이어 컨트롤에 미숙하다면 추락하는 헬기의 프로펠러에 닿아 ‘물리법칙’에 의해 혈흔을 남기고 저편으로 튕겨나가 사망할 것이다. 이 즐거운 아비규환은 사실상 게임이라는 매체의 쾌락이라는 본질에 가까워진다. 그래도 여전히 근심스러울지 모르겠다.


 



쾌락


GTA는 이런 위험한 도덕적 일탈을 일정 수준 방지하게 위해 경찰이라는 존재를 박아놓았다. 게임 화면 우측 상단의 별점이 차곡차곡 쌓일수록 플레이어의 위험한 행위를 방관하지 않는 경찰력의 투입이 강화되고, 별점이 3개 4개 쌓일수록 장갑차와 헬기가 등장해 플레이어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한다. 정작 여기서 혀를 내두르게 되는 것은 이런 압박스러운 경찰력의 틈새를 벗어나 화려한 운전 실력으로 사고 현장 바깥으로 도주하는 게이머들의 실력이다. GTA는 현지에서 1,2,3편과 외전까지 충실하게 시리즈를 이어왔지만 한국의 웹에서 본격적인 화제가 된 것은 4편에서부터였다. 여기엔 아프리카TV를 위시한 개인 동영상 방송국이라는 채널 서비스의 공헌이 있었다. 어둑한 곳에서는 소위 ‘별창’이라는 속어를 통해 여성 BJ들의 존재를 비하하게 된 비모범 선례들이 있었지만, 다른 한 곳에서는 사용자들의 별 포인트 선물도 마다하고 자신의 재능을 게임실력 과시나 유희 전시로 보여주던 BJ들이 있었다.


GTA4의 경우 그런 경향이 강했는데, 이중 BJ 우왁굳이라는 유저는 걸출한 플레이 스타일 보다는 호감형 목소리와 게임상의 시츄에이션을 타이밍 늦지 않게 포착하여 개그로 전환하여 상황극을 연출하는데 특기가 있었다. 사실 이것은 제대로 된 한글화의 수혜를 받지 못한 당시 4편의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이러다보니 싱글 플레이 모드에서는 BJ의 아마추어 성우를 연상케하는 목소리 연출과 상황극이 인터넷 방송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의 호응을 얻었고, 온라인 플레이 모드에서는 마이크 연결을 통한 플레이어간 대화와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들이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즉 게임의 정확한 내러티브는 공략 정보를 통해 정보를 얻었지만, 그 빈틈엔 BJ들이 만들어낸 유행어와 에피소드들이 채워져 한국 네티즌들에게 GTA4의 이미지를 형성하였다. 미국 쪽이 유튜브를 통해 게임 속에서 발생한 버그와 인위적인 물리엔진 장난을 통해 개그를 전시했다면, 한국은 아프리카TV 방송 중 발생한 영상 중 소위 ‘드립’들을 편집한 영상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최신작 GTA5에 와서 이런 상황은 좀더 달라졌다.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은 몰락하기 위해 고안된 단어 같지 않은가!)의 기운을 담아 뉴욕의 모습을 모사한 4편 게임 배경의 Liberty City는 우중충한 배색톤이었지만, GTA5는 가상 도시 배경 산안드레아스는 로스엔젤레스가 모델이 되어서 그런지 배색도 밝아졌고 NPC들의 인공지능은 좀더 다양한 패턴으로 발달이 되었다. 밝아진 배색만큼 게임의 기본 바탕이 되는 스토리라인은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보다는 비교적 밝아지고 불편하면서도 유쾌한 막장성이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욕설까지 완벽하게 번역해낸 현지화 덕에 이제 BJ들이 내러티브의 빈 곳을 굳이 채워주지 않아도 된다. 국내에서 GTA 시리즈의 명성은 4편으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해외 웹진들의 호평과 더불어 5편의 입지는 완전히 굳혀졌다. 재밌고도 위험한 게임, GTA5의 현재 위치라고 하겠다.


 



그래서


GTA 시리즈가 보여주는 기본적인 쾌감의 근원은 일탈 정도를 넘어선 가상화된 범법의 체험이다. 하지만 그 체험은 실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다소 과장된 게임 내의 물리 법칙과 무장된 오락성으로 뭉쳐진 게임 자체의 본질에 가까운 것이다. 진단가들은 어제도 오늘도 젊은이들이 GTA류의 게임들로 인해 차량을 절도하고 무고한 시민을 갖다 들이박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고, 게임팬들은 사회적인 현상을 두고 무고한 게임에 비난의 화살촉을 돌린다고 진단가들을 비웃는다. 이런 대립구도 속에 화해는 가능할까? 힘들거 같다.


오히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이 게임의 쾌락 중 하나인 현실 비꼬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5에선 페이스북 스타일의 IT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스티브 잡스풍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젊은 실업가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살해 당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었다) 제작사의 이런 ‘사우스파크’적인 농담 기조는 게임의 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애초부터 도덕이라는 선의 아슬아슬함 정도는 가볍게 가위질로 싹둑 자른 듯 하다. 이쯤되면 현실의 규제가 게임의 재미를 조금이라도 저해하는 것을 근심해야 할 지경일지도 모른다. 게임팬의 입장 쪽에서 나오는 지나치고 철없는 우려일지는 모르겠지만. [131001]



+ 웹진 다:시 게재 : http://daasi.net/?p=2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