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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줄읽고로그남김

'물건'으로써의 책에 관한 문답

trex 2009. 3. 9. 11:05
사은님의 블로그에서 업어 온 문답입니다 : (http://saeun.egloos.com/4218027) 문답의 의도와 기획에 관해선 여기서 상세히 : (http://saeun.egloos.com/4219052)


1. 책이라는 물건/사물에서 가장 좋아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네모난 모양새라 넘겨보기 쉽고, 안에 들춰보면 자잘한 글씨체로 제가 읽어야 할 것들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사놓은 책은 바로 읽어야 합니다. 읽지 않고 쌓아두는 책은 뜯지 않는 음반들과 비슷한 것이죠. 그런  수집벽은 제게 안 맞습니다.


2. 새로운 (혹은 헌) 책을 구입했을 때 치르는 의식이나 절차가 있습니까? (어떤 작가들은 책을 깨물거나 책의 향을 맡아보기도 합니다.)

책을 감싸고 있는 띠지 있잖습니까. 광고 문안이나 추천사 같은 것들이 적혀있는 별도의 종이. 그걸 가차없이 갖다 버립니다. 갖다 버리는 이유는 1) 책 보기 불편하고 2) 문구와 추천사의 문장이 겁나게 후져서 다시 볼 생각이 없어서.

예전에는 책 첫 페이지에 제 사인을 하고(...) 어떤 생각나는 단어나 구절을 적기도 했는데 요즘엔 안 그럽니다. 새 책, 헌 책은 제 방에 들어오면 별 구분 없이 다 한 가족이 됩니다.

      
3. 갈수록 전자화되는 사회에서 책이 반드시 물건으로 존재해야 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그리 생각하십니까?

전 당위보다 그랬음한다라는 소망을 말하고 싶군요. 일단 액정으로 보는 텍스트는 잘 안 읽히고(체질상), 신용이 안 갑니다.(심정상) 액정으로 보는 문장들은 인터넷에 숱하게 봐오는 카피글/카피성 유사 문구들/소문과 낭설들/감정에 치우친 문장들/온갖 열등감 폭발(또는 해소) 등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값을 하는 문장들은 종이질의 책에 담겨있어야 제맛인 듯. 물론 좋은 책을 고르는 노력은 서점에서의 다리품으로 즐겁게 고통을 느끼며...


4. 최근의 책들 중 당신에게 잘 디자인되고 잘 만들어진 책의 표본이라고 생각되는 책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 책입니다.


내용과 기획성에 관한 방향성은 제 생각과 조금 달랐지만 표지의 디자인과 타이틀 폰트, 뮤지션의 사진을 별도로 작가에게 의뢰해 찍은 컷들, 각 챕터 항목에 맞는 사진에 덮씌운 일러스트들. 문단 간격과 크기 등이 가독성과 때깔을 제법 있게 했더군요. 하드커버가 아닌 것도 가산점의 이유입니다.(웃음)


5. 책에 관한 나누고 싶은 기억이 혹시 있으십니까?

책에 관해 단골로 꺼내드는 인상적 기억 하나.

중1 때였습니다. 유난히 소악마들로 구성된 9반 녀석들을 통솔하는데 일일 단위로 힘겨움을 느낀 키 140대의 담임 선생님. 도움은 안되니 그냥 조용히 지내던 저에게 선생님이 한번은 교무실로 호출은 하더군요. 간단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선생님이 서랍에서 책 하나를 꺼내주시더군요.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과제도 아니고 큰 부담이나 기한은 안 줄테니 읽고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시더군요. 어린 나이에도 선생님이 준 이 묘한 기대감에 부흥해야겠다는 욕심이 나더군요. 어떻게 읽었고 어떻게 독후감을 제출했습니다. 선생님의 의중을 알 수도 없었고 크게 칭찬을 해준 기억은 없으니 이후는 그냥 무던하게 흘러 갔고 이렇게 기억만 남았네요.

특별히 이 책이 소위 '제 인생의 책' 되고 그런건 아닌데, 한 사람에게 신뢰를 얻었고, 그 신뢰에 글로 답했던 기억이라 아직도 제겐 나름 크게 남았네요.

+ 자 좋은 말 할 때 바톤 받으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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