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아오노 슌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본문
나이 42세. 병으로 부인을 보낸 홀아버지, 아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간 아내, 조용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호명해주지 않는 딸, 그리고 나이 42세의 자신. 난데없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만화가 전업을 선언한다. 모두가 환영할리가 만무하다. 재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고 무엇보다 당장에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다. 가능할까?
캐릭터의 매력도로 보자면 1권으로 판단내리기 힘들다. 권수가 쌓일수록 캐릭터들의 사연이 쌓이고 교차하며, 이야기들이 하나로 수렴한다. 그 큰 줄기는 다름아닌 '아버지'이다. 아버지들은 무책임하게 사표를 내고, 장사를 시작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자살을 성공(?)하기도 한다. 미안하다고 입을 열기도 전에 황망하게 죽어버린 아버지 이야기도 있다.
작품은 다소 집요(?)하게도 등장인물 머리 위에 나이를 뜻하는 숫자 정보를 보여주는데, 이는 인생의 대목마다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반영하는 듯 하다. 주인공은 그 나잇값에서 단연 벗어나 있고, 덕분에 주변 인물들과의 극적인 드라마를 형성한다. 그가 그린 만화 중 거의 유일하게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이런 이야기의 주요 줄기를 하나로 수렴하는 스토리인 것은 당연한 것이겠다.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최선의 결과치도 나지 않은 인생이지만, 간혹 인생은 굴곡을 거쳐 어떤 완만한 순간을 선물한다. 일단은 그 정도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위로가 주어진다. 성장기엔 주먹다짐에 얼굴에 상처가 나고 중년이 되니 머리는 벗겨지지만 헛살지는 않았다. 주변엔 여전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고 인생은 지속된다.
번역자 송치민씨에게 출판사가 읍소하며 추천했다는 작품이라는데, [자학의 시] 번역자 다운 작품이다. 확실히 두 작품 사이에 공명하는 어떤 정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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