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대선 레이스 이후 : 잡상의 정리 본문

생각하고뭐라칸다/시사/매체/게임등등

대선 레이스 이후 : 잡상의 정리

trex 2017. 5. 11. 22:21

가을부터 시작해 종내에 시린 겨울을 채운 촛불과 탄핵 정국은 결국 탄핵 가결을 성사시켰고, 이어서 짧고 굵은 대선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9년여간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이 된 시스템을 복원할 자 과연 누구인가. 이건 전설의 정도령이라도 불가능할 것이고. 기본적인 기능이라도 수행할 수 있는 복원 작업만이라도 시급한 때였다. 당시 권한 대행자도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거니와... 그리고 우리는 급한대로, 하지만 신중하게 새로운 대통령을 얻게 되었다. 5월 10일이었다.



문재인은 처음부터 유력한 사람이었고, 취임 첫날부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수행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을 희망으로 물들이고 있는 듯 하다. 물론 현재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두개가 아니다. 구체적인 외교적 압박(이미 타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에 대한 불편한 기미를 드려내는 듯하다), 내수 경기 진작, 경쟁 후보였던 안철수 덕분에 덩달아 그 의제를 일부 따와버린 4차 산업혁명인지 뭔지 하는 정체불명의 조어도 말이다. 복지. 안보, 사회적 통합 등 산적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잘해낼까?라는 질문보다 그가 온건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과 주변의 상황들이 도와줄지가 구체적으로 걱정이 된다. 그는 모든 것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고, 결과적으로 가족 구성원 누구 하나도 큰 상처입히지 않고 임기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을까. 힘들 것이다.



노무현을 잃은 그에게는 딱딱하게 굳어있는 어떤 심지가 있고, 그 덕에 몇몇 토론에서 불통을 감지하게 하는 신호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이 비타협을 견지하는 지도자로서의 덕성이 될지, 또 하나의 암울한 예고가 될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아직 신호는 미약하지만.



심상정은 완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였다. 하지만 그가 좋은 지도자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의 답변으로 남았다. 그의 이력 안엔 진보-노동계 사람들을 상처입힌 기억이 남아있고, 그의 당은 약하고 미덥지는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는 토론 과정에서 상대방의 공약을 잘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학습 능력 면에서 빛났었고 이는 나를 포함한 여러 이들에게 적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여기에 더해 단 1분 만으로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혁파할 수 있는 어떤 진보적 비전이 - 설사 그게 제스츄어라도 -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은 어쨌거나 참담한 실패의 증명이다.



유승민을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는 그에게 그럼에도 기억될, 조금은 반성하는 보수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는 여전히 기회주의자의 본성을 잘 은닉할 수 잇는 마스크와 발성이 타고난 것으로만 비친다. 물론 취임식에 참여한 그의 모습이 주는 기분좋은 연출, 그래 그 기분좋음만큼은 좀 고마운 것이긴 하다. 하지만 섣부른 그에 대한 동정은 경계하고픈 것이 세태에 대한 나의 주문이다.



안철수는 여전히 그가 무엇을 보유한 인물인지를 보여주기는커녕 어떤 믿음도 심어주지 못했다. 출발선부터 지금까지 그는 실패한 사람이었고, 의욕적으로 들고온 정체불명의 4차 산업혁명 의제는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했다.(교보문고 북마케터만 설득시킨건가?) 도드라지게 하락한 지지율과 여러 잡음에 대한 미혹함, 그리고 잔여 잉여물 같은 미진함들... 그는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홍준표 다음으로 불편한 사람이었다. 시민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는 손학규가 선보였던 실패한 실험을 왜 다시 쓰는지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홍준표는 전략적으로 보이지 않는 난삽한 문장과 용어들, 오히려 이것으로 인해 한국 수구우익 세계관 속의 사람들이 바라는 머릿 속 언어관과 의표를 찌르며 후반부 승승장구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분명 적지 않은 성취를 거뒀고, 이 팽팽하고 숨막히는 갑갑한 세계관으로 문재인 체제의 대한민국이 앞으로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였다. 문재인은 앞으로 이런 언어와 세계를 형성한 이들과 수많은 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가시 돋힌 허들들 투성이다.



장탄식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어쨌거나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