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잡지에 짧은 글이 실렸어요. 본문

책줄읽고로그남김

잡지에 짧은 글이 실렸어요.

trex 2019. 1. 9. 14:48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이 짧은 글 [원문]을 좀 더 보강해 잡지에 실었음 한다는 요청이 있어 응했습니다.

잡지 [Chaeg] 1.2월호에 하단의 내용과 같이 황정은의 작품 [아무도 아닌]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다른 독자분 3분과 함께 실렸는데, 세월호 이야길 한 제 입장에선 좀 너무 니같이/나같이 잡았다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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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음악 글쓰는 사람)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 2014년 4월 16일. 이날은 적지 않은 이들은 알고 있겠지만 예술가들에게 망연자실한 침묵과 더불어 여러 발언의 통로가 막히는 협심증 등의 증후를 주었다. 어디 예술가들뿐이겠는가. 이는 여러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발언해야 할 책무감을 씌우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음악인들은 음악을 만들고… 문장가들은? 고통스러워도 글을 뱉어야 한다. 이런 고통의 시간은 황정은 작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도 아닌]은 물론 세월호에 대한 단편집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월호 이후의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나는 그런 징후를 발견하고자 하는 충동을 이 책을 보며 삼키기 힘들었다. 황정은 작가는 세월호 이전에도 탐미적이고 환상적인 서술 속에서도 불구하고 황량한 세상의 비통함을 잘 깨우치게 한 사람이었고, 황무지 같은 세상 위에서도 한 떨기 꽃잎이 필 줄 아는 생의 의지가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이중의 면모를 모두 갖춘 문장가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닌]의 8개의 단편 중 사실 세월호 이후의 시점에 저술한 작품은 후반부의 세 작품이다. 그런데도 작품 하나하나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세상의 이해관계 속에서 진통과 상실을 겪는 여러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청소년이 실종하고, 남겨진 사람은 실종의 사연을 짚을 수밖에 없으며 이런 이들 근접하여 목격한 이는 침묵할 수밖에 없고(<양의 미래>), 홀로 거주하는 공간에 누군가는 틈입하고 구체적인 위협을 가하고(<누가>), 누군가는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복경>) 직접적인 죽음에 대한 언급과 파국이 기다리고(<누구도 가본 적 없는>), 죄책감이 박힌 일상(<상류엔 맹금류>) 속에서 자본주의적인 단어를 쓰게 되는 마른 현실은 단단할 뿐이다. (<上行>)

하나의 이름으로 호명되고, 아름다운 꽃잎처럼 싹 트는 생명의 순리에도 세상의 논리는 거대한 굴착기의 삽처럼 이들을 ‘아무도 아닌’ 존재처럼 무섭도록 캐낸다. 황정은의 영토는 이토록 잔혹하고 특별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