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9. 8. 29. 16:16

거대한 폭우가 내리며 천둥이 하늘과 땅을 울린다. 간혹 낙뢰는 금속 재질의 장비를 쉽사리 공격하므로 잠시 풀어 둔 상태로 기후가 변하길 기다려야 한다. 축축한 바닥이 싫어 언덕으로 넘어가고 싶지만 미끄럽고 험한 길이 이동을 방해한다. 마침내 빗방울이 잦아드니 저편에 기적 같은 쌍무지개가 나를 반긴다. 험상궂는 이 여정 안에 잠시나마 나를 달래주는 변화다. 그러나 안심도 잠깐, 기다란 코를 흔들거리며 달려오는 몬스터는 양손에 큼직한 무기로 내 머리통을 내리칠 기세다.

개발 영상을 제외하고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가 총 3번의 트레일러를 통해 강조한 게임 속의 감각은 바로 야생이라고 일컫는 자연과 생태계의 것이다. 육식동물이 지나가는 이족보행 인물들을 위협하고, 자신의 거처와 생활에 위화감을 주는 이들에게 두려움과 방어행위를 표출하는 그런 환경. 그런데 그 안의 것들은 내 재산을 채울 도구가 되기도 하고, 급한 대로 내 생긱을 가능케 할 자원들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 상실한 자신의 기억력과 책무감으로 뒤집어 씌워진 오랜 옛날의 임무를 회복해 완수해야 하는 용사로서의 운명을 수락한 주인공. 그렇게 '공주 구하기'의 클리쉐가 시작된다. 

대륙을 이동하여 이번엔 혹독한 추위가 거동을 방해하는 설원이다. 던져준 미션을 염두해두면, 자비 없는 뙤약볕이 대륙을 채운 지역에도 가야 할 예정이다. 폭발하는 화산은 왕국에 드리는 암운에 대한 불만을 재울 정도로 당장의 위협이고, 만나는 인물들은 때론 배타적이고 도움의 손길만 내미는 민초들이나 다름없다. 명마는 허리를 허락하지 않고, 수수께끼를 내는 요정들은 천연덕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더더욱 생생하게 닿는다. 여행길 옆에 지나가는 잠자리의 날개질처럼 세계는 생생하게 여기저기 살아 숨 쉬고, 목숨과 죽음의 반복은 가차 없다. 강한 둔기로 용사의 생명력이 깎이고 방패로 튕겨내지 못한 가디언의 광선은 몸을 아랑곳없이 태운다. 

중세의 여관에서 간만에 전신욕을 하면 하룻밤 성관계로 이어지고, 현대 환락의 도시에서 스트립 클럽 서비스로 달러를 날리는 다른 오픈월드 게임과 다르게 [브레스 오드 더 와일드]가 택한 세계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동화 시대의 이미지를 탈피하려 노력하는 공주'가 가 기다리는 전설의 어느 시대이다. 여기선 시커 스톤이라 이름 붙여진 고대의 가젯이 있고 이는 염동력과 자력, 촬영 기술을 발휘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고 물과 불 및 전기 등의 원소와 생물학적 특성을 각기 지닌 종족 등의 설정이 세계 곳곳에 깔려있다. 여기에 더해 칼과 마법의 세계를 묘사하는 액션(즉 게임에서의 컨트롤에 대한 문제)에 더해 '사당'이라 불리는 골치 아픈 시리즈 특유의 퍼즐적인 요소가 스며있다.

잘되는 것, 익히 해왔던 것들을 잘 합치면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이 나올 수 있다...고 다들 그렇게 친다. 그런데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그것들을 합친 기가 막힌 것이 되었다. 경험과 감정적 고양, 감각과 조작의 일치 등 액션 게임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배치를 끝내주게 실현해냈다. 물론 이것은 개별마다의 취향에 따라 갈릴 수도 있고, 당장엔 지루한 부분과 장기적인 피로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플레이 시간을 어느 이상 채운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몇몇 부분의 한계 정도는 가볍게 넘기며, 이 게임이 준 인상이 더 깊었음을 말하고 싶다. 

+ 모든 대륙 지도와 4개의 신수 중 3개만 해결, 최종 보스에 애초에 닿지 못함이라는 미완의 진행인 상태로 원 주인에게 스위치는 반납 예정이다. 그렇다면 내 여정은 끝났을까? 앞날을 어찌 알겠어요. 현세가 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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