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한음파 [독감(獨感)] : 그러니까, 왜 이 땅엔 사이키델릭일까.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한음파 [독감(獨感)] : 그러니까, 왜 이 땅엔 사이키델릭일까.

trex 2009. 7. 16. 08:58

네이버 오늘의 뮤직 업데이트 : http://music.naver.com/today.nhn?startdate=20090716


한음파 [독감(獨感)]
열린 음악 / 09년 07월 발매


1. 초대
2. 독감 毒感 (Feat:요나)
3. 무중력
4. 매미
5. 무덤
6. 200만 광년으로 부터의 5호 계획 (Album Ver.)
7. 연인
8. Sleep in
9. 참회
10. 독설


그러니까, 왜 이 땅엔 사이키델릭일까.


앨범을 재청하며 되짚어 생각해본다. 왜 지금 이 시간, 이 땅에 왜 하필이면 '사이키델릭'일까라는 생각을. 개인적인 생각을 먼저 밝히자면, 한음파의 앨범 [독감(獨感)]을 순도 100%의 사이키델릭 앨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몽환적이며 음악으로 '환각'을 발견하고자 했던 사운드의 다난하고 산란한 실험보다는 집중력있는 하드락 사운드가 더 부각되어 있고, 잡히지 않을 문장과 단어들의 나열 같은 환상성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 종기 같이 돋아나는 감정의 편린들을 담은 가사들은 나름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음파가 흥미로운 사실은 몇 년 전부터 등장한 갤럭시 익스프레스, 그림자 궁전, 비둘기 우유, 로로스, (그리고 해체를 선언한) 머스탱스 같은 유수의 밴드가 보여준 일정 수준의 사이키델릭적인 요소가 이 밴드에서도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지금 이 땅에서 왜 이렇듯 사이키델릭의 흔적을 도처에서 발견하게 되는걸까?


그들 중 어느 팀들은 (한국의) 선배 밴드들이 보여준 성과를 일정부분 의도적으로 계승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동시대 락 음악들이 보여주는 개러지 락, 슈게이징 같은 요소들과 혼용하며 한국적으로 변용해 선보이고 있다. 한음파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는 질문엔 개인적인 유추이긴 하지만 90년대부터 등장한 얼터너티브 음악의 유산을 어느정도 계승하는 듯 하다. 메탈의 파괴력을 극적으로 활용하고는 있지만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짜여진 악곡 구조보다는 물컹이고 습한 공기의 정서, 때론 즉흥성에 기대는 구조의 곡들은 한음파의 노래들을 특정 장르에 국한하여 바라보기 보다는 폭넓은 탐구의 대상으로 보이게 한다.


이를 증명하듯 몽골의 전통악기 마두금(馬頭琴)의 선율에 실려 가사의 비의를 강조하는 3번 트랙 '무중력', 카락펜파(kharag penpa)의 허밍과 인상적인 베이스라인으로 시작해 중반부 격정으로 치닫는 5번 트랙 '무덤', 이미 08년에 공개된 싱글에서 수록되었던 6번 트랙 '200만 광년으로 부터의 5호 계획'의 선명하고 낭랑한 멜로디 등은 한음파가 각종 무대 경험으로 축적한 경험치와 센스를 부각시킨다. 런닝타임이 9분여에 치닫는 9번 트랙 '참회'에 비해 다른 곡들은 비교적 짧음에도 불구하고 응집력과 이와 대비되는 변화무쌍함이 잘 조율되어 있다. 이들의 음악을 사이키델릭이라고 할 수 있다면 개별 곡들에 내재된 드넓은 음폭과 (비교적 통제되어 있긴 하지만)정서적으로 스며든 몇몇 광기의 요소 때문이 아닐까.


 나의 애초 질문은 '그러니까, 왜 이 땅엔 (몇몇 유수의 밴드들이 택하는 길은) 사이키델릭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땅, 이 지표가 가진 불안함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떠올릴 수 있는 환상조차도 불길한 것들로 가득한 이 세태에 대한 불안한 거울이 사이키델릭이 아닐까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새까맣게 태워 모두 / 재가 돼 기억나지 않게'(독감), '맴 돌지 말고 저리 가란 말이야'(매미), '짙은 어둠 속 나를 찾지 마 / 그냥 이대로 사리질 거야'(Sleep In), '그 누구도 원치 않아 / 더 두고 볼 순 없어'(독설) 등의 가사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도피와 외면의 이미지는 인상적이다. 두 눈 뜨고 주시하고 목도하기 버거워하는 이 주체는 무엇에 상처받고 도망가려 하는 것일까. 내면적이고 개인적으로도 읽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 이 시간을 말하고 있는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럼에도 아 주체는 모든 것을 외면하지 못한 채 '참회'의 가사 속에서 '그때 그 무리.. 내가 있었네'라고 고백하고 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비밀을 품고 있는 락 앨범이다. [090712]


+ 여담 : 공공연히 덧글란 보기가 두렵다/그래서 잘 안 보게 된다는 말도 많은 곳. 그래도 이런 덧글은 힘이 되네요. 감사.


[음악이 멋지니 라이브도 멋지고, 앨범도 멋지고. 리뷰도 멋지군요. (특히 왜 이 땅엔 싸이키델릭.이냐는 박개똥 님의 리뷰, 흥미로운 관점의 글이었어요. 진지한 얼굴로 즐겁게 읽었어요)]

앞으로도 읽는 이들에게 최소한 피해는 안되는 글을 쓸 수 있음 좋겠어요.


+ 네티즌 선정위 차순위 앨범은...

럭스(Rux) [영원한 아이들]

사람들의 기억력이란 얼마나 얄팍하고 하잘것없는 것이란 말인가. 사람들은 신작이자 3집인 [영원한 아이들]을 문제의 '방송사고' 이후 절치부심의 복귀작 쯤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미 이들은 2005년 당시 2집 [The Ruckus Army]로 뚝심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세간의 지탄과 담화들은 아무래도 좋았던 것이다. 3집은 여전한 이 밴드의 뚝심을 재확인하게 해주는 땀방울의 행보다. 음악적으로는 '협소한 대한민국 펑크씬'에 새로운 기운을 수혈하였던 생생한 목울대의 앨범 1집에 비해 2집이 주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3집은 할로우 잰의 임환택, 삼청의 김주영 등의 목소리 같은 화려한 게스트 라인업에 마치 전선을 다시 가다듬은 듯한 결의가 느껴진다. 다시금 그들은 몽상 같지만, 진심서린 무정부주의적인 비전과 희망을 품으며 세상과 한판 가투를 벌이려한다. 설사 수록곡 제목처럼 '망신창이'가 될지라도. 이처럼 웅비하는 에너지로 충만한 좋은 앨범이다.


'음악듣고문장나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승환 [HUMAN]  (17) 2009.07.18
ETP 2009 기대 퍼포먼스  (16) 2009.07.15
[마이클 잭슨 특집] 『Invincible』- 지구인의 앨범.  (10) 200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