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행복한 동시대, 또는 '1집'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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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시대, 또는 '1집'들.

trex 2010. 5. 5. 13:58

+ 음악취향Y 업데이트 : http://cafe.naver.com/musicy/11620


음악취향Y 내에서 헤비니스 베스트 선정 이야기가 나온게 작년 중하반기였다. 재밌을 줄 알았다. 만주 지역 공룡 화석 탐사 여행길 같은 설레임이 있었다. 하지만 파도파도 나오지 않는 화석들의 흔적과 탐사길의 염증. 막막해져 갔다. 실력없는 이는 몸빵으로 떼우는 수 밖에 없었다. 듣고듣고 뭐라고 나오길 염원했다. 귀와 중추와 삭신이 삭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황무지를 바라보며 마른 식빵을 씹으며 내가 뭐하는가 싶었다. 그 와중에 내가 듣고 싶은 음악들, 내가 들어야 할 음악들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순서상 다소 밀렸을 뿐이었다. 내내 걸렸던 목록들이다. 공교롭게도 정규 1집들의 목록이다. 물론 그 안엔 프로젝트성 첫 음반도 있긴 하다만, 난 이들이 2집이고 뭐고 계속 했으면 좋겠다. 그 바람을 안고 이제 다시 끄집어낸다. 듣다 다시 곤히 낮잠을 자도 괜찮겠다.



9와 숫자들 『9와 숫자들』

파고뮤직 / 09년 12월 발매


9와 숫자들을 들으며 남산타워 공원 앞의 문샤이너스(http://cafe.naver.com/musicy/9998)가 쉬는 날엔 이들이 무대를 가질 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아니 그게 남산타워 공원이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회전차가 게으르게 돌아가는 유원지라도 좋겠고, 유세윤의 UV가 경애하는 디스코팡팡 DJ가 있는 그곳이라도 좋겠다. 하지만 9와 숫자들은 ‘키취’가 아니라 꿈꾸듯 과거를 진심으로 소환한다. 미러볼이 돌아가는 이 심야 무대에선 「선유도의 아침」으로 열띈 청춘들을 불러모아 놀 수도 있겠고, 짜릿한 피날레는 「석별의 춤」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신스팝과 락앤롤, 포크락, 레게, 거기에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풍 상업소설들을 조각 맞춘 듯 조립한 이 앨범엔 ‘스펙높이기’와 ‘아집의 서열세우기’ 같은 작금의 풍경이 없다. 대신 자리한 것은 베베 꼬인 사랑과 무너지는 가슴의 스토리들 (「낮은 침대」,  「이것이 사랑이라면」)과 그 어디라도 좋으나 암튼 ‘새’들과 ‘달’ 아니면 ‘별’이 있다는 낭만적 지명(「선유도의 아침」, 「삼청동에서」)들이다. 요새는 끔찍한 패션 코드라는 ‘상단 청자켓/하단 청바지’를 걸쳐입은 이 청춘은 때론 ‘상식도 없는 이 세상’이라고 무심하게 뱉기도 한다만.(「연날리기」)



TV옐로우 『Strange Ears

비트볼뮤직 / 10년 02월 발매


첫곡이 중요하다. 「Alpha」를 들으며 내가 정말 좋아할 수 있는 노래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비트가 춤추고 기타가 휘청이고 보컬은 쾌락에 젖은 관객들과 시선을 맞추며 정직하나 그 자신도 흐드러지듯 가사를 뱉는다. 정신 차리고 보컬과 눈을 맞춘 이들은 「Speed Simon」의 후반부 가사를 따라 불러도 될 듯 하다. ‘날아가 네가 원하는 곳으로 / 날아가 네가 원하는 곳까지’. 좋구나. 그릉거리는 베이스라인과 촘촘한 하늘의 별을 박는 듯한 전자음이 배합되는 「Moloy」를 경유하고, 박진감 넘치는 「Faster」에 당도하면 초여름의 날씨에 내 등은 식은 땀으로 범벅이다. 그래서 다시 문득 상기한다. 사촌 누나의 방에 있던 A-ha의 테이프와 LP들, 내 방에 있던 듀란듀란 내한 녹화 VHS, 근간의 조류들... 이것들이 한데 엉켜있는 어떤 장관 중의 하나가 TV옐로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앨범 타이틀 『Strange Ears』는 오히려 ‘낯선 귀’ 보다는 ‘익숙한 기억’을 연상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익숙함에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태만함’은 거의 없다. 기타락의 기조가 좀더 강한 후반부가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것은 이 앨범의 의도가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전국비둘기연합(National Pigeon Unity) 『Empathy』

로엔엔터테인먼트 | 에스텔라 / 10년 03월 발매


아폴로18의 ‘바이올렛’ 쇼케이스에서 처음으로 이들의 무대를 봤다. 이런저런 여건 때문에 장악력은 다소 부족해 보였지만, 음악만은 색채가 특이하다 싶었다. 근간의 헤비니스 씬에서 나름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 아폴로18에도 뒤지지 않을만치 그 색채는 나름 강렬했다. 앨범을 들어보면 그 색채를 발견하기가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악다구니를 펼쳐내는 이모펑크 넘버 같다가도 애니메이션 삽입곡 같은 묘한 장난기가 스며들었고(「Carnival」), 한편으로는 연주 넘버 등에선 제법 진지하다.(「환」) 그들 자신이 밴드의 성격에 대해 ‘뮤규칙전방위’라고 규정짓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앳된 보컬과 스크리밍이 교차하는 가운데, 극적인 연출력과 클라이막스를 위해 도달하는 「차원의 벽」같은 중핵 트랙들도 좋지만, 일단 다양한 아이디어를 경계선 없이 담아낸 앨범 수록곡 면면들이 치기스럽기보다는 재미있게 비춰진다. 이모펑크와 팝펑크 사이의 영역에서 인디락과 ‘구성진 가락’까지 뒤엉킨 요소들을 재추출하는 재미도 듣는 과정에 있을 듯 하다. 그래도 보너스 트랙 13번을 듣기 위해 14분여를 기다리는데 수면욕을 참기가 힘들었음도 토로한다.



노이지(Noeasy) 『The Mirror』

로엔엔터테인먼트 | GMC / 10년 04월 발매


보다 사악해야 한다. 보다 광포해야 한다. 보다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구성력으로 듣는 이들의 피를 콸콸 고양시켜라. 어디선가 이런 슬로건이 들리는 듯 하다. 내 착각일까. GMC 진영, 또는 메틀코어 진영은 그동안 몇 년 동안 쌓인 이런 이력과 레퍼런스로 결국 이 길까지 닿았다. 노이지의 정규 앨범은 씬을 형성해놓은 이들의 경험, 이력과 레퍼런스는 물론 동시대적인 헤비니스 조류와 맞물린 적합한 성과물 같다. 시종일관 공격적이며, 빈틈을 발견하고 손을 내미는 순간 베어물듯한 이빨을 지닌 야수성을 지녔다. 다소 앞날에 의구심을 품었던 전작 EP 『The Mirror』의 성장기는 잊어도 좋을만치 예리해진 칼날을 들이민다. 스토너와 교합하며 진화하는 과정의 넉다운(Knockdown), 대사회적인 공격성을 발산하는 마제(Maze)등과 더불어 (주춤한지 꽤 된)바세린 이후의 근간의 경향과 ‘무언가’에 목말랐다면 당연 들어봐야할 목록이다. 이런 행복한 동시대는 놓쳐선 안된다. ‘부패.부패.타락.타락~’(「The Gathe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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