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trex 2011. 4. 23. 15:40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Insatiable Curiousity

미러볼뮤직 / 11년 02월 발매

01. The Giant (The Giant Part 1. – Hexameron)
02. The Giant (The Giant Part 2. – Gigantes)
03. The Giant (Interlude #1.)
04. The Giant (The Giant Part 3. – Burial of William Blake)
05. The Giant (Interlude #2.)
06. The Giant (The Giant Part 4. – Holiest Grail)
07. Oblivion
08. The Divine Comedy [paraphrase of ‘dante symphony’ & chant Gregorian ‘dies irae’]

09. -


신인 작가 이사야마 하지메의 만화 [진격의 거인]엔 잠잠할라치면 공습하는 거인들을 피해 성벽을 쌓고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수십년, 백년 가까이 지속해온 평화는 거대한 거인의 발걸음에 한순간에 무너지고, 가족과 동료는 거인의 아가리에 과실마냥 터지는 뇌수를 뿜으며 죽어간다. 도무지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벅찬 힘과 음습한 죽음의 그림자. 이걸 절망이라고 부른다. 서두에 음악 이야기 대신 최근 읽은 만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런 절망의 기운과 최근 데뷔반을 세상에 턱하니 내놓은 히치하이커의 색채가 제법 닮아있는 덕이다. 앨범 몸통의 상당분을 차지하는 1부의 거인담(The Giant)을 듣고 자연스럽게 만화에 담긴 거대한 거인의 몸통을 떠올렸다.

밴드명만 듣자면 히치하이커란 이름은 2인조 구성의 라운지 계열 일렉트로니카팀으로 보일 지경이다. 하지만 히치하이커가 보여주는 색채감은 마른 사막 도로에서 골반을 내세우는 청바지 광고풍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심야의 도로 위, 불길하게 서있는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들려주는 죽음의 안부 인사에 가깝다. 앨범 커버와 부클릿은 음악과 가장 차림이 잘맞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주석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축축함마저도 통째로 얼려버리는 냉혹함과 말랑한 육신들을 잘라버릴 바람이 불어올 협곡, 간신히 버티는 있는 자신만을 생명체라고 겨우 부를 수 있는 아득함. 이런 세계관들이 부클릿을 펼치면 제시된다. 공교롭게도 난 이 앨범을 새봄에 듣게 되었다.

앨범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일단 듣는 것이다. 친절하게도 유튜브에 등록된 The Giant 4부작의 영상은(하단에 링크되어 있다) 회색과 검은색만으로만 답변할 수 있는 밴드의 색채감을 보여주고 있다. 무질서하지만 교묘하게 청자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소란스러움, 그리고 성스러움보다는 공포감으로 설득시키는 교란적 장치들은 언뜻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짧지 않는 각 단락들(7분에서 10분 내외)이 가진 흡입력과 근간의 씬에서 보기드문 상상력이 히치하이커를 주목하게 한다. 매끈하게 잘 뽑혔다기보다는 거칠고 투박한 지형도에 가까운데, 그곳에서 무릎이 긁히는 고통은 있을지언정 벗어날 수 없음은 알기에 저벅거리는 걸음은 계속된다. 우리가 사는 동시간대를 태초 시간대의 암흑으로 물들이는 The Giant Part 1. – Hexameron를 들어보라.

검은숲에서 불쑥 삐져나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거인떼를 닮은 「The Giant Part 2. – Gigantes」의 잔혹한 행진. 그리고 외계인의 수신호 같은 Interlude #1., 이윽고 윌리엄 블레이크를 위한 엄숙한 장송 트랙The Giant Part 3. – Burial of William Blake로 이어진다. Tool의 브릿지 트랙들을 연상케하는 음산하고 굵은 보컬, 혼란스러운 혼 세션이 가세했다면 제법 Mars Volta를 닮았겠다 싶은 구성들은 히치하이커의 위치를 보다 익스페리멘탈 씬에 가깝게 만든다. The Giant Part 4. – Holiest Grail은 앞선 곡들을 마무리하면서도, 닿을 수 없는 영역과 힘에 대한 공포보다는 그 결과 이후의 생존자들의 카니발 같다. 보다 인간의 영역을 표현하고 있고, 밴드 음악에 근접했고 쾌락적인 흐드러짐이 있다.

그래서인지 뒤따르는 「Oblivion」가 보여주는 서정적 도입부는 인상적이다. 잠시나마라도 비통함의 격랑이 지나간 후를 덮는 온기가 있고, 생명 본연의 한계를 체감케하는 절망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아마도 히치하이커라는 밴드가 가지고 있는 미덕을 묻는다면 파괴력 자체보다 파괴력과 인간적 나락을 체감케하는 화법, 그 클래시컬한 화법의 능숙함을 들겠다. 몇몇 의미있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끈을 보여준 프로그레시브 씬의 계보에도 포섭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올해 나올지도 모를 이들의 '더블 앨범'을 더욱 기대하게끔 한다.

단테의 [신곡]과 그레고리안 성가 [진노의 날]의 모티브를 따온 마지막 트랙과 9번 트랙에 해당하는 히든 트랙 역시나 향후를 주목하게 만드는 시도들이다. 클래시컬함의 전통 취향과 해석불가의 교란을 동시에 전제할 수 있는 밴드의 등장이 새삼 반갑다. 어디로 뻗을지 알 수 없을 관심사에 어떤 계절에 나와도 확인할 히치하이커 특유의 색채감은 어떤 의미에서는 두렵지만, 이번 앨범만큼의 '기분좋은 절망'이 라면 그것으로도 환영이다. [110423]



=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are :
- 김환욱 : 보컬 & 건반
- 이상우 : 베이스
- 우영진 : 기타
- 권민수 : 드럼

= 히치하이커의 뮤직비디오 4부작 :
- http://youtu.be/Uq_pZj98Q9A
- http://youtu.be/U9OvIBFi3gE
- http://youtu.be/5Pp_JdccUNo
- http://youtu.be/_GrUk0ZchGo


+ 음악취향Y 게재 : http://cafe.naver.com/musicy/13656


더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1집 - Insatiable Curiousity
음반>가요
아티스트 : 더 히치하이커(The Hitchhiker)
출시 : 2011.02.24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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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un 192km 2011.04.24 09:22 신고  Addr  Edit/Del  Reply

    왜.. 왜 전 이렇게 남길 수 없는걸까요..;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