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1. 4. 22. 17:11
20회라는 턱에서 넘어갈랑말랑하는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 음악취향Y 업데이트 http://cafe.naver.com/musicy/13644

87년, 소년은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여진 카세트테이프와 달리 투명한 카세트테이프엔 녹음이 된다는걸 알았다. 그건 사촌누나네 방(큰집의 한켠)에 흘러나오던 조이(Joy)의 '터치 바이 터치. You are my all time lover~' 의 녹음된 선율 덕이었다. 아하(A-ha)의 'Take on me'를 들으며 [리더스 다이제스트], [스크린], [여학생] 잡지를 뒤적이던 종이 벌레 소년은 막상 음악에 대해선 큰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알록달록한 스티커가 붙여진 카세트테이프도 스카치테이프나 뭉친 휴지만 있으면 라디오의 노래들을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뭘 듣고자 하는 욕구는 없었기에 이것들은 1년 뒤의 일로 미뤄진다.



TV에 얼굴 한번 안 비추던 이문세라는 가수를 오후 초대석에 불러서 자기들끼리 떠들고 웃 던 김기덕이라는 DJ는, 신문에서 인터뷰를 본 듯도 했다. 그렇다. 당시는 이택림, 이종환의 시대였다. 공개방송의 시대이자 눌린 욕망을 낭만으로 바꿔치기하며 안도하며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이 시절 방학 동안엔 MBC FM에서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는 결산 특집을 하기도 했다. 상반기 베스트 남자 가수, 베스트 여자 가수, 그리고 베스트 그룹 사운...드나 듀엣 등이 있었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이문세의 노래와 앨범이 1위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부문이었는지 흐릿하나 분명 1위였다. 그게 문제였다. 마지막곡이라고 '그녀의 웃음소리뿐'이라는 노래를 틀어줬는데 라디오를 듣던 소년을 단박에 설득시켰다. 듣는 가슴이 부글부글하며 온도가 높아졌는데 그만 합창 부분(후반부)에서 노래가 잘렸다! 다음 다른 프로그램 시간으로 넘어간 것이다. 엠 비 시 라 디 오.



그때부터 소년의 수소문이 시작된다. 훗날 6분대인걸 알았지만 8,9분대로 과장되게 기억했던 탓에, 다른 방송에서 잘 안 틀어주는구나 울상을 지으며 여러 라디오 채널 중 나오기만 기다렸다. 잘 틀어주지도 않았고 기껏해야 같은 앨범의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만 틀어주는거다. 틀어주지도 않는 노래를 만약 녹음하다가 광고가 섞이면 어쩌나, 시간대 문제로 잘리면 어쩌가 미리 걱정을 했다.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이렇게 여름이 저무는줄만 알았다.



알 고보니 밀양 사촌누나네 방에 이문세 4집이 있었다. 내가 나빴다. 이 노래들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이 카세트테이프를 훔쳐갈 것이다'라는 예고장 격으로 하고 내 주머니에 넣고 구미로 돌아갔다. 6학년 5반 별명 병아리, 소년은 2학기 동안 이 테이프를 내내 들었다.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 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 어떤 의미도- 어떤 미소도- 세월이 흩어 가는걸-." 영겁같은 이별의 무게감, 저문 기억의 무상함, 섬광같은 그녀의 뒷모습 같은 정서가 내게 다가올리 없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좋아서 미치는줄 알았다. 싫어했던(?) 다른 노래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굿바이-하며 말없이 떠나가버린-", "새벽 어둠 속에 그대의 미소- 볼 수가 없었네- 돌아가는 모습도-", "서러워- 이렇게 눈물만- 그대여 이젠 안녕-"



그 렇게 인생에서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 세워진 것이다. '한 곡도 뺄 곡이 없는 앨범'. 이게 앨범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어쩌면 이르게 형성된 것이다. 이 앨범을 듣는걸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싶었다. 이 앨범을 아는 사람을 수줍게 발견하고 싶었다. 이 앨범을 나 때문에 알게 됐으면 싶었다. 그래서 멋도 모르고 1학기 수학여행 당시 들고 갔다. 경주에서 구미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애들은 조는데 기사 아저씨에게 틀어달라고 부탁했다.(실은 내가 용기가 없어서 이문세 음악을 아는 반 친구가 부탁했다) 영문도 모르고 반 아이들과 담임은 아무튼 이 카세트테이프를 한 바퀴 들어야만 했다. 한 바퀴 재생은 끝났지만 버스 안의 반응은 조용했다. 소년은 기대를 너무 크게 잡은 것이었다.



내리는 빗줄기에 귀가하기 바빴다. 모두 버스에 내려 달음박질하거나 마중 나온 학부모들을 찾는데, 나는 정신을 차리고 늦게서야 깨달았다. 버스에 카세트테이프를 두고 내린 것이다.


[2에서 뵙겠습니다.]


이미지는 : www.maniadb.com 출처-사이즈 편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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