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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 힙합 30년, 명반 50]

trex 2009. 2. 5. 09:43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김영대 외 7인 | 한울 | 08년)를 저작했던 필진 2명이 후속 작업을 또 한번 소리소문 없이(?) 마쳤다.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 힙합 30년, 명반 50]은 국내 힙합씬의 풍경을 넘어 본토씬의 역사를 50장의 대표작으로 흩어본 저작이다.

사실상 국내 출판계에 힙합(문화를 비롯한 관련)도서가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선례 중 [힙합 커넥션  : 비트, 라임 그리고 문화] (양재영 | 한나래 | 01년)가 기억나는 저작물이었는데, 입문서 보다는 당시 씬의 풍경을 생생하게 설명함으로써 되려 초심자들에겐 '공부'가 필요한 부분들이 많았었다. '깊이있음'은 확연했지만 '깊이'를 획득하기 위해 일단 별도의 '부삽'이 필요했던 기억이...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의 저작 기획과 맥을 비슷하게 가는 측면이 있는데, 일단 두 저자들은 초심자를 위한 '가독성 있는 편집'과 '문체에 대한 읽기 적응 / 용어 문제에 있어서의 쉬운 접근' 등에 신경을 쓴 듯 하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힙합의 역사순과 같이 한 대표작 50장들은 그 당시 씬의 풍경과 힙합 역사에서의 비중에 있어 놓칠 수 없는 목록들이며, 이 목록을 선정하기 위해 두 필자가 머리를 맞댄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문득 비슷한 과정을 위해 강남 모 닭집에서 아저씨들끼리 빈 안주 접시를 배경으로 머리가 불이 난 기억이...)

접근법이나 기획은 비슷하지만 구성은 다른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과의 차이라면 전저의 경우 한국힙합씬의 탄생과 각종 관련 문화의 가지뻗기(클럽/패션/댄스/그래피티 등), 한국에서 (힙합)뮤지션이 밥 먹고 사는 문제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상당부분 할애 되었고, 본저는 확실히 앨범과 앨범 관련 이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에서의 명반 30장이 일종의 최종 (챕터가 아닌)부록 같은 면이 있었다면,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에서의 명반 50장은 한 특정 장르를 낳게 한 본토 씬의 역사를 설명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이로써 두 필자들은 그들의 10대를 뜨겁게 채우기 시작했던 특정 장르에 대한 편린과 애정을 헌사하고, 동시대(또는 후발 세대) 독자들에겐 입문과 전염을 유도한다.

물론 이런 베스트 선정식의 구성은 개인적인 호오에 있어 민감함을 준다. 가령 이 글을 쓰는 독자인 나는 모 뮤지션의 2장 등극을 기뻐하면서, 동시에 어? 왜 사이프레스 힐은 없어?라는 투덜거림도 뱉는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궁극의 베스트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저자와 독자들간의 베스트 목록을 둘러싼 호오는 즐거운 긴장감 정도로 느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이런 아쉬움을 상쇄하기 위해 각 리뷰당 뒷 페이지엔 '대안적 선택'과 '편집자의 추천'으로 관련 앨범들도 거론하고, 될 수 있으면 한정된 지면 안에서 보다 많은 앨범과 싱글들을 소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부록중 인상적인 것은 본토씬의 역사와 한국씬의 역사를 비교한 '동시대적 풍경'(뭐 이리 거창하게 조어법을 쓰는 버릇인 든 것인지. 나란 인간은)의 연표.

물론 아쉬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색인 검색이 없는 것은 다소 치명적인 약점 같고, 장르 명기에 있어 한국어/영어 병기가 민감한 Funk 같은 단어는 한국어로만 기재되어 있다. 네이버에서 오늘도 밤 지새며 헤매는 모 네티즌 X군은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을 더 클래쉬와 같은 '펑크' 뮤지션으로 알 것만 같다. 불안하다.

한국의 음악팬들은 공멸하고 사멸하는 자국의 음악씬을 보면서 본의 아니게 짊어지게 된 의무감이 좀 많은데, 그중의 한개는 앨범을 여전히 꾸준히 사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중 하나는 자국의 문화도서들을 관심 가지며 사봐야 한다는 덕목이다. 누가 딱히 그러라고 그렇게 정한건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생각한다. 혹시나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네 생각이 어떻든간에 철마는 달린다주의자들은 한번 관심 가지고 일독해주시면 좋겠다.

MC 해머 이름만 듣고 생각도 없이 테이프로 사던 시절, 마키 마크 앤 펑키 번치 듣고 마루에서 혼자 춤추던 시절, 아무튼 이 장르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사랑한 적은 없지만 살다보니 새겨진 익숙함의 인자라는 것이 있다. 그 인자의 기억을 일깨우기에도 좋다. 이상.


+ 표지가 맘에 안 들면 나같이 직접 그려서 새로운 표지를 만드는 지혜로 발휘하는거 어떨까 싶다. 초안은 이렇게 그려보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