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능력. 본문

생각하고뭐라칸다/창의극장

능력.

trex 2011. 11. 7. 14:43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오빠의 호언장담이 맞았다. 오빠가 말한대로 핸드폰은 오빠의 배 위에서 어떤 지지대나 줄도 없이 홀로 두둥실 떠올랐다. 몇초간 떠 있다가 바닥에 떨어지며 뒹굴기는커녕 제법 몇분간 떠있다가, 오빠의 심호흡 후 스물스물 손바닥 위에 내려왔다. 어린 시절 유리겔라의 숟가락 초능력 이후 - 몇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사기라고 했다 - 가장 진기한 구경거리였다. 게다가 TV 화상도 아닌 내 눈 앞에서 바로. 그것도 오빠가.


오빠의 미소가 환했다. 오빠의 실행은 이어졌다. 머그컵, 컴퓨터 하드, 칫솔, 핸드크림통 등이 아까 핸드폰처럼 오빠의 배 위에서 흔들흔들 떠올랐다. 오빠는 난처함도 동시에 표했다. 이게 전부고 이게 한계라고. 이걸로 딱히 뭔가를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진전되는 것도 아니라고. 가령 잠긴 핸드크림통이 열리거나 하는 응용력의 범주나, 좀더 무거운 데스크탑 따위를 염력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뭔가 내 눈치를 보는건지 앞으로 좀더 계발해 보겠다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오빠의 눈치. 아마도 오빠는 이 능력으로 뭔가 타계책을 마련하고팠던 모양이다. 어떤게 가능할까. 오빠가 이 능력을 가지고 무대에 올라서서 관객들을 감탄시키고 돈을 벌면, 그가 바라는 바대로 될까. 오빠는 좀더 영화적이고 근사한 것을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능력으로 은행 보안 담당자의 키를 손에 넣고 은행 안의 금들을 깨끗하게 털고... 어떤 방안이든지 오빠는 마련하고팠던 모양이고, 그 이유엔 내가 있었음은 사실일 것이다. 진작에 알았던 사실이었고 그만큼 두려운 사실이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앞으로도 나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노력은 분명 그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행복'을 위한 것일테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역시 그 사실을 명제처럼 인식하고 나와 2년간 해온 것이리라. 나는 대체로 행복했고 때론 굉장히 만족했고 고마워했다. 아마도 오빠는 어느날 문득 발견한 '능력'으로 인해 그가 그토록 추구해온 '행복'을 위한 열쇠를 마련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감을 얻은 듯 하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 결실로 인한 수확물은 내게 주어질 것이다. 그게 온당한 일일까 아닐까하는 질문 자체를 오빠는 막을 것이다.


지하철 8호선의 땅굴로 사라진 오빠를 배웅한 뒤, 편의점에 들려 플레인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았다. 오빠가 다이아몬드 채굴로 유명한 아프리카 어느 국가의 독재자에게 요구르트를 건넨다. 독재자가 흡족하게 빨대로 요구르트를 마시는 동안 오빠가 '능력'으로 빨대를 식도로 넘겨버린다. 독재자는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고, 그 나라의 채굴권을 오빠가 획득하고 그걸 나에게 죄다 바친다면? 쓴웃음을 짓고, 오늘 하루도 그에게 정리의 단초조차 끄집어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어둑한 골목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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