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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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뭐라칸다/창의극장

거친 마음.

trex 2012. 3. 14. 20:12



솔 담배가 마지막 한 가치만을 남겨두고 입술과 공기 사이에서 사라졌다. DJ는 속절없이 임지훈의 '사랑의 썰물'을 연거푸 재생할 뿐이다.


"오늘 저희 업장에 오신 소중한 손님 손님 한 분이 유독 많이들 신청하고 계시네요~."


어지러운 나의 지글거리는 뇌 속은 LP 잡음을 뚫고 유려하게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재생하고 있건만. 아 여자 련아. 사람 속 태우는 것도 정도껏이지, 이토록 한 줌 재 남길 새도 없이 한번에 화르륵 태우고 가는 것이냐. 장사에는 상도가 있다고 하지만 연정의 문제엔 도덕도 윤리도 없는 모양이다. 박정한 사람 속내 간의 전장이다.


련은 국민학교 교사였다. 재잘거리는 것들이 또래 보다 수풀 속 새들이 더 많은 섬동네여서, 이렇게 살다간 말라붙어 거무퉤퉤해지는 사과껍질 같은 인생이 될 듯 하여 무조건 공부만 하였다 한다. 계집애가 공부해서 뭐에 쓰랴는 할머니의 홍두깨질 같은 말에도 오전 등교 오후 등교 가릴거 없이 붙박이마냥 학교에만 붙어 교과서의 언어들을 갈기갈기 주워담았다 한다. 


재잘거리는 것들이 뒷산 새들보다 교정에 더 많았던 국민학교에 부임해서 정작 얻은 것은 교감 선생이라는 작자의 손길 정도였던 모양이다. 그 작자가 련의 둔부를 한 움큼 쥘 때 애써 그이는 저것은 암탉 알을 하나둘 수확하던 할매 손이다 그 할매 손이다 주문이라도 외웠던 모양이다. 달성대공원에서 솜사탕을 뜯니마니 하던 초조한 손길로 저런 곡절을 늘여 놓았을 때 그때 나는 다짐하고야 말았다. 저 사람은 내가 황해 바다의 씨가 마를 때까지 지키고 만다.


다짐을 배신하는 것은 강인한 여심이었다. 련은 민주화 시위인지 만주화 시위인지 도통 알 도리가 없는 일을 벌이는 족속들 중 한 무뢰한과 얼마전에 안면을 튼 모양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그 무뢰한을 지켜줘야 한다는 이해될리 없는 말을 뱉고는 감감 무소식이다. 학교인지 직장인지를 찾아가도 돌아가라는 대꾸만 들었고, 고향집에 전화 걸 처지는 또 안 되는게 내 답답함이다. 태평성대라면 태평성대인데 나같은 행원이 그 무뢰한에 모자랄 바가 도무지 있겠는가? 갑갑함이 다시금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누를 올바른 길은 아님은 알지만, 오늘은 교감인가 하는 양반을 찾아가볼 심산이다. 련의 행방이나 다시 묻자는게 일차적인 목적이지만 실은 그 못된 더러운 손목을 오늘은 한번 바스러지게 꺾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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