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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 답을 주지 않는 우주

trex 2012. 6. 23. 14:05

*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42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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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이후 헐리우드 감독들에겐 한가지 뚜렷한 목표 지점이 생성된 모양이다. 자신만의 에픽(Epic)을 만들고자 하는 타오르는 욕망의 불길! 그 욕망이 제임스 카메론의 (예정된 3부작)[아바타]를 만들게 하고, 리들리 스콧으로 하여금 다시 [에일리언] 연대기를 잇겠다는 다짐을 서게 한 듯하다. 



리들리 스콧이 처음 1편을 만든 [에일리언]은 헐리우드의 친숙한 공포의 아이콘이었다. 1편 이후 제임스 카메론이 맡은 2편에서 이 괴물 아이콘은 '여왕벌과 일벌'의 생태계로 변모하여 '람보 시대'의 액션 장관을 보여주었고, 데이빗 핀처는 구리빛 남성 욕망들이 억압된 수도원의 분위기로 꿀꿀한 3편을 만들었다. 마지막 4편에 이르러서는 장 피에르 주네가 동화풍의 악몽을 만들었고 정식 시리즈는 이윽고 문을 닫았다. 이후 에일리언 이야기는 [에일리언 VS 프레데터] 시리즈로 옮겨 생명력을 연장하였으나 매니아들이 '마징가Z 대 그랜다이저'류 이야기를 반길리가 만무했다. 이윽고 30년 만에 리들리 스콧이 직접 지휘봉을 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로메테우스]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프리퀄(본 시리즈에 앞선 전사[前史]를 다룬 새로운 창작물)일까. 별개의 이야기일까. 엔딩 크레딧엔 [에일리언] 1편의 메인 테마를 작곡한 故 제리 골드스미스의 음악을 썼다는 내용도 표기되어 있고, 애초에 리들리 스콧의 제작 의도 자체도 1편의 스페이스 자키(1편에서 배가 뚫린 사체 상태로 의자 같은 곳에 누워있던 의문의 외계인)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어느정도 이상은 [에일리언] 시리즈에 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그럼에도 세세한 디테일은 어긋나 있다. [에일리언] 1편에서 인간들이 최초로 제노모프(에일리언을 일컫는 또다른 명칭)을 조우하는 것은 위성 LV-426이나, [프로메테우스]에서 '사건의 전조'가 발생하는 것은 위성 LV-223이다. 설정에 대해 목숨거는 매니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에일리언 연대기' 전체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1편 사이의 시간 사이엔 공백이 발생하고 설명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런 사소한 어긋난 부분들과 달라진 부분(가령 제노모프, 또는 에일리언의 번식 방법과 외양 등)에 대해 [프로메테우스]는 설명을 아낀다. 아니 아낀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화는 묵직하게 끝을 향해 갈 뿐이다.



리들리 스콧은 왜 30년만에 에일리언 이야기를 끄집어낸 것일까? 2편부터 이미 자신의 의도와 달리 뒤틀어진 시리즈의 방향을 지금이라도 바로 잡기 위해서? 단순히 그 정도의 심산에서 끝내자는 것은 아닌 듯 하다. [프로메테우스]의 도입부를 비롯한 영화 전반은 울퉁불퉁할지언정, 요즘 헐리우드 블럭버스터에서 보기 힘든 품격과 무게감을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세트와 소품을 시리도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디지털 화면에 천천히 담아냈으며, 전체적으로 과학과 신성함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개념에 대한 질문을 끈끈하게 담아낸다. 그것은 마치 에일리언이 뱉은 타액마냥 뜨뜻하고 질척한 것이라 좀체 답안을 얻기 힘든 것이지만.



[프로메테우스]은 새로운 영화라기보다는 익숙한 영화이다. 영화 도입부의 생명 창조(?) 장면은 이미 테렌스 멜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에서 선보여진 장면을 보다 과감한 로케와 CG로 다듬은 것 같고, 무엇보다 아서 C. 클락과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리메이크한 비전 같다. 돌아온 비쥬얼리스트 H.R. 기거이 디자인한 공간 안에서 불가해한 공포와 조우하며 교살 당하는 인간군상들은 익히 알려진대로 H.P.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건 [프로메테우스]에게나 [에일리언]에서나 천형같은 과제였다. [에일리언] 자체가 H.P. 러브크래프트의 묵시록과 (우주에서 만난)'유령의 저택' 같은 호러물의 관습을 수혈받아 탄생한 작품인 덕이다. 덕분에 30년만에 우주로 돌아온 리들리 스콧의 새 영화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주석을 달며 새롭게 편곡을 한 뮤지션 같은 인상을 준다.



사람들의 불만은 여기서 발생한다. [에일리언]은 장르의 관습을 받았으되, 다각도로 해석되며 평자들을 흥분시키는 지점이 있었다. 신화적으로도 보이고, 수정과 착상 그리고 임신.출산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의 원칙을 흉물스럽게 뒤집어보이는 공포의 법칙도 있었다. 문제는 [프로메테우스]는 비슷한 이야길 하는데 설명은 불친절하고 편집은 튀고 성과는 의심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데이빗'이라는 새로운 로봇 캐릭터를 끌고 온 그는 자신의 작품 [블레이드 러너]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데이빗이 인간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사실상 인간이 신에게 던지는 질문들과 겹친다. 당신은 왜 날 탄생((또는 제조))시킨 것인가요?) '아서 C. 클락'을 연상케하는 우주적 탄생의 장면과 '필립 K. 딕'식의 로봇 캐릭터와 인간됨을 향한 질문, 'H.P. 러브크래프트'식 공포까지 작품 하나에서 한웅큼이 되어 뒹군다. 과연 [프로메테우스]는 혼란스러운 실패작일까? 



영화의 마무리를 보자면 그럼에도 뭔가 벅차오르고 뭉클한 구석이 있다. 단순히 새롭게 디자인된 제노모프, 또는 에일리언의 신세기가 도래했다는 흥분감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리들리 스콧은 '외계인 초고대문명설'(에리히 폰 데니켄이 주창)이라는 낡은 가설을 들고 온다. 이 촌스럽고 생경해 보이는 가설을 리들리 스콧은 신성과 과학이라는 양쪽 개념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웅장하게 연출한다. '불의 지혜'를 획득하려던 시도처럼, 탄생의 기원에 대해 질문하려던 '섣부른' 인간들은 공포 속에서 과학자고 기업가고간에 구분없이 허우적댄다. 인간됨의 가치란 무엇이며, 인간은 감히 신성함과 기원에 대해 물을 완숙한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감독은 재앙으로 화답한다. 어리석은 인간의 육체는 뚫리고 부러지고 묵직한 것에 깔려 압사된다. 우주에 펼쳐진 가히 지옥도의 풍경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벅차게 만드는 장면은, 그 어리석음을 안은 한 인간이 '목걸이에 십자가를 다시 걸고' 본체의 상당수가 '훼손된' 로봇과 함께 질문을 마저 던지기 위해 떠나는 여정의 제시이다. 우주 진출이라는 강대국들의 소위 '프론티어 정신'은 그동안 [에일리언]류의 영화에서 부정당하고 조롱당했다. [이벤트 호라이즌] 같은 걸작 우주호러물에서 승무원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여 학살극의 당사자가 된다. 이런 영화적 상상력을 이어받는 [데드 스페이스] 같은 게임들은 출중한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기업은 음모를 꾸미고, 사정 모르는 대다수는 죽어 나가는 '스페이스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 그 가운데서도 횃불을 얻기 위해 아득한 우주로의 여정을 포기 않는 생존자가 있다. 리들리 스콧의 새로운 캐릭터 '엘리자베스 쇼'는 [에일리언]의 '리플리'의 바톤을 이어받는 것인가.



내 개인적으론 이 새로운 시리즈의 개막이 '엘리자베스 쇼'의 새로운 모험담 2편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주는 답을 주지 않는다. 설사 신이 신성함 대신 제조력을 지닌 엔지니어일지라도. 탄생의 기원과 진화의 법칙을 쥐고 있는 신은 결코 인간의 언어로 친절한 답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완강한 어조는 이미 1편으로 충분힌 한 듯 하다. 그렇다면 남은 이야기들은? 친절한 답과 벅찬 여행담 보다는 더욱 검게 가려진 진실의 공포들을 처절하게 묘사하지 않을까. 이것이 리들리 스콧식 스페이스 오페라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블레이드 러너] 프로젝트 역시 쥐고 있다. 멈추지 않는 노장의 활동력을 당장에 확인한 것만으로도 [프로메테우스]는 충분한 듯 하다. 그가 품은 이야기들의 궤도를 확인하고픈 욕심은 여전하다. [1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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