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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관람기를 대신하는 : 3부작의 마무리 [다크 나이트 라이즈]

trex 2012. 7. 24. 10:48

영웅에의 길은 실패했다. [배트맨 비긴즈](1편) 당시 고담시에 활개치던 이탈리아계 팔코네 집안 세력들은 [다크 나이트](2편)에서 어느새 범죄 장사의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고담시 전체는 조커라는 새로운 '혼돈'에 의해 선과 악의 두 명분 자체가 실험대에 오르고, 배트맨 가면의 남자 브루스 웨인은 결단을 내리기에 이른다. 올곧은 선은 악의 영향력에 허술하기 이를데 없다는 실험대의 결과물인 하비 덴트(또는 투페이스)를 정의의 상징물로 박제화 시키고, 배트맨 자신이 악의 표상으로 남겠다는 판단인 것이다. 그 결과인 3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이르러선 8년간 '하비 덴트 법'(범죄자를 즉결 구속 가능 - 가석방 없음)이 세상의 축소물인 고담시 전체에 발효된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대비되는 허물어진 육체의 자본가 주인공, 영웅적 행각의 쇠락...



이런 식으로 간다고 히어로물의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을 것은 뻔한게 아니겠는가? 겉으로는 평화로운 고담시엔 '전쟁 시대'의 경찰청장을 내년 봄에 퇴임시키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새로운 탐욕자본이 신환경 자원과 사회환원 사업을 하던 기존 자본세력을 넘보며 도시를 잠식하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 : 이어 원] 등의 기존 그래픽 노블이 조성한 고담시의 분위기를 빌려와 3부작의 끝에 이르렀다. [이어 원]의 고담시는 범죄 세력과 경찰력이 규합하여 탐욕의 질서를 끈질기게 지탱하고 있었고, 그 안에 어두운 정의감을 지닌 두 남자와 정체불명의 여자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제 놀런은 3부에서 '아마도' [배트맨 : 다크 나이트 리턴즈], [배트맨 : 나이트폴], [배트맨 : 노맨스 랜드] 등의 그래픽 노블들의 토대를 빌어 시리즈의 마지막을 빚어내는 듯 하다.



항구적인 영웅 놀음도 불가능하며, 지속적인 정의의 유지도 불가능하다. 음침한 하수구 밑에선 거대한 악의 세력이 다시금 창궐하고 있으며, 이들은 조커와의 패턴과도 다른 존재다. 조커는 유희로써의 악이며, 끝간데 없이 치솟는 광기였다. 3편의 베인(과 일당)은 구체적인 테러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혁명'의 허울과 유사한 악의 확산을 도모한다. 글로 적으면 여느 그래픽 노블과 다를 바 없는, 그림 속의 광경 같은 이야기를 놀런은 놀랍도록 현실의 톤으로 채색한다. 그 유효한 장기는 3편에서도 여전하다. 누가 봐도 뉴욕을 위시한 미국 대도시인 장소를 고담시라는 비유 안에서 클라이막스에 이은 클라이막스의 구조로 휘몰아간다. 3편은 그 급박함이 중반부 이후 시리즈 이래 가장 심한 편인데, 표면적으로 편집이 덜컹거리고 설명부족으로 보이는 호흡곤란의 대목을 자주 만나게 된다.



여기에 9.11의 '테러증후'를 되새김질케 했던 [다크 나이트]에 이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월 스트리트 점거 시위'를 필두로 한 21세기의 풍경은 물론 프랑스혁명 같은 역사의 기록들까지 들추게 하는 복잡다난함을 보여준다. 자본가(브루스 웨인 - 또는 배트맨)의 무기를 빌어 도시의 행정과 질서를 폭력적으로 지배한 악당들이 프랑스 혁명재판소의 풍경을 빌어 기시감을 부추긴다거나, 경찰 세력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광경들을 보자면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준 전작보다 더욱 도덕적 판단을 부여받은 기분을 준다. 마치 [다크 나이트]에서 어느쪽을 선택해도 법 또는 파국으로의 단죄를 주던 하비 덴트(또는 투페이스)의 동전 게임처럼 말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좀더 파행적으로 '죽음 또는 (죽음을 답보한)추방'이라는 판결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리히터 강도 7.6의 강진으로 인해 미국 사회 안에서도 고립된 고담시의 1년간 아비규환을 담은 그래픽 노블 [노맨스 랜드]와 왜곡된 저널리즘과 악의 부활로 인해 퇴임(?) 후 귀환한 배트맨의 폭력적 영웅담 [다크 나이트 리턴즈] 같은 작품의 중간 지점을 짚고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놀런의 작품들이 그랬듯, 다양한 대중 작품 및 사회적 이슈들과 더불어 심사숙고할만한 해석의 대상이다. 



도덕적 판단과 우리 안의 윤리학 시험지 같은 복잡한 심사와는 별개로 영화는 후반부 무진장 바쁘게 진행된다. 주인공이 쓰러진 무대 외에도 주변부 인물들 역시 당사자가 서있는 자리마다 제 역할을 하기에도 바쁘다. 모든 이가 고담시의 '배트맨'이길 바랐던, 오히려 그 덕분에 2편에서 소중한 이를 잃은 파국을 겪은만큼 브루스 웨인은 가치관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이가 배트맨이 되기는커녕, 가짜 자경단이 범죄와 유사한 형태로 횡행하였고 영웅 주변 인물은 사망하거나 악의 실험체가 되었다. 이제 이 영웅 무대의 종극은 물론, 영웅의 승계를 동시에 꾀하는 그만의 판단이 내려진다. 



여기서부터가 내겐 감동적인 구석이 있었다. 1편을 연출할 당시부터 기존 그래픽 노블과 원작 코믹스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놀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3부작의 시작을 열었는데, 결국 3부의 마지막은 기존 코믹스 팬들에게 여러 해석을 낳을 원작(들)에 대한 예우로 충만하다. 몇몇 노골적으로 보이는 작품의 단점들과 달리 현실과 코믹스 사이의 아슬아슬한 균형감과 더불어,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다층적인 답변으로 가득한 벅찬 마무리! 한스 짐머의 스코어가 교향악과 엠비언트를 뒤섞으며 종횡으로 귀를 그어대고, 놀런은 임무를 완수해낸다. [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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