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3. 6. 7. 17:08

내 음악듣기의 처음은 이문세 아니면 바비 브라운이었다. 사촌누나 방에서 이문세 4집을 주머니에 몰래 넣고 나온 경험에서부터 이문세 듣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반면 바비 브라운은 용돈을 모아 ‘구매’하는 도덕적인 행위에서부터 듣기가 시작되었다) 첫 음악듣기로써의 이문세는 진귀한 경험 하나를 선사해 줬는데, 그것은 ‘음반에서 한 곡도 뺄 곡이 없다’라는 이상적인 개념이었다. 이후로 ‘한 곡도 뺄 곳이 없는 음반’을 종종 만나긴 했지만, 처음이라는 강렬함엔 좀체 이길 수 없었다. 이문세 4집은 완전무결한 클래식이었다. 그 음반의 위력에 닿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제압했다고도 볼 수 있을 5집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겐 그랬다.


 


그런데 공연으로 그를 이제서야 만나게 되었다.



공연 속의 이문세는 언제나 라이브 음반 안의 이문세였다. 즉 상상력을 빈 간접 경험으로만 가능했었고, 무대 속의 열기는 짐작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도 기회가 생겼다.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대형 공연을 앞두고 이문세의 매체 노출도가 최근 부쩍 높아졌다. [1박 2일]에서 난데없이 후배들을 위해 고기를 싸들고 등장하였고, 뉴스란을 검색해보니 잠실 주경기장에서 ’5만의 관객’을 모을 야심찬 기획이 보도되고 있었다. 잠실 오 잠실. 잠실 주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관객 동원력은 마이클 잭슨과 드림 콘서트류 외엔 국내에선 극히 드물지 않은가.(아 싸이 선생을 제외할뻔 했구나) 그건 감동적인 음향을 일정 수준 포기하고, 세를 과시해 보겠다는 야심으로 보였다.



게다가 공연 제목 [대한민국 이문세]이라는 타이틀은 하나의 선언으로 보였다. 발라드라는 장르 한정뿐만이 아니라 한국에서 이문세라는 싱어가 가진 의미는 하나의 인상적인 봉우리가 아닐까. 애창과 애청이라는 획득하기 힘든 두 지점 모두를 가진 얼마 안되는 ‘복받은 이’이기도 하고, 그 특유의 목소리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데뷔 30주년이라는 자축의 의미가 겹치니 힘주어 붙인 타이틀도 그렇게 어색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리하여 발길은 종합운동장역으로 향했는데, 주말의 야빠 행렬을 압도하는 관객들의 군집체는 대단한 것이었다. 암표 장사들이 속된 말로 ‘쪽도 못 펼’ 숫자였다. 행사요원들은 분주하였고, 공연 전 사람들의 설레임으로 매표소 앞은 부글거렸다.


 




공연은 시작되었는데 포문을 연 곡은 애국가였다.



그럴 수 있다. 한국 관객 5만명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곡은 ‘카리미나 부라나 Carmina Burana’보다도, 베토벤 9번 4악장 ‘합창’보다도 무엇보다 애국가일 것이다. 난 최대한 섣부르지 않으려 했다. 운집한 관객들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애국가를 듣고 ‘우경화’ 같은 유행어를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애국가가 나올수도 있고 아리랑이 나올수도 있지 그게 또 무슨 큰 대수랴! 이윽고 인트로 격으로 ‘붉은 노을’이 나왔고 – 그는 이 공연 피날레에 이 곡을 다시 불렀다 – ‘파랑새’ 등의 히트곡을 이어갔다. 형광봉 수만개가 파닥대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시간은 마침 8시를 다소 넘어 까만 별밭을 보여주는 밤 시간대로 향하고 있었다.



공연은 크게 나누자면, 이영훈과의 황금시대에 대한 기억을 건드리는 주옥같은 넘버들의 향연과 그의 30주년을 축하해 주기 나온 게스트들의 등장이 주조를 이뤘다. 관객들의 연호와 함께 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나 많은 이들의 심금에 눈물 방울을 스포이드로 뿌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등이 전자에 포함될 것이다. 후자는 ‘소녀’를 부르다 무대 하단에서 등장한 성시경의 등장이나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을 부르기 위해 등장한 안성기/박찬호/송종국/박수홍/박경림/이수영/양동근(그외 다수) 등의 게스트 군단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전자가 더 반가웠을 것은 몇몇 분들이 짐작하셨을지 모르겠다. 가령 윤도현과 김범수에 후반부를 내맡긴 ‘그녀의 웃음소리뿐’은 다소 불만이었다. 물론 다음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겠지만.


 


아무튼 거대한 잔치 한마당이었다.



뮤지컬적인 연출의 ‘조조할인’ 같은 무대도 있었고, 종이배 장치를 타고 무대 전체를 누비던 ‘깊은 밤을 날아서’ 같은 무대도 있었다. 될 수 있다면 공연을 기획한 측은 주 경기장의 규모를 감안해 남부끄럽지 않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한 듯 했다. 이승환과 김장훈 등이 전례를 남긴 대형 무대의 계보 못지 않은 순간에 닿고자 하는 노력들이 분명히 있었다.(거대한 풍선 괴물 같은건 없었지만) 공연 전 영상으로 율동 배우기를 권장하고, 오래된 팬들 성원에 대한 감사 자작곡 영상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문세의 위치가 ‘조용필식 가왕의 권좌’와 ‘발라드의 왕자’ 사이에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걸 보는 심정이 의외로 복잡한 면이 있어 2시간 내내 귀는 듣는데, 마음 안에선 두툼한 실타래를 푸는 기분도 분명히 있었다. 풀다가 엉키고 풀다가 엉키고…



그렇게 하여 난 최종 결론은 그것이었다. ‘예전엔 절친했으나 언제부턴가 소원해진 분의 생일 잔치에 엉겹결에 초대된 기분’. 그랬다. 이문세의 음악은 이영훈과 있을 때 가장 빛났던게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 시대 이후 나는 이문세의 음악과 멀어졌다. 다른 음악들이 발빠르게 치고 들어왔고, 한 때의 소중한 음악들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되고 전시되었다. 간간히 라이브 음반이나 편집 음반으로 만난 추억의 전시물들은 상상력의 블럭이 되었고, 막상 현장을 확인하니 상상력의 블럭과는 다른 모양새의 축조물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일이기는 하였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의 절절함과 ‘이별이야기’의 떼창은 다시 없을 경험이기는 했다만.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위풍당당한 타이틀이 내가 생각한 폭의 너비와는 애초에 달랐음을 알았어야 했다. 좋은 경험 안에서 뼈저리게 깨달은 낭패감이랄까. [1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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