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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립 (Earip)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trex 2013. 10. 5. 22:20




이아립 (Earip)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열두폭병풍 | 2013년 8월 발매



01. 이 밤, 우리들의 긴 여행이 시작되었네

02. 두 눈에 비가 내린다

03. 등산

04. 뒷일을 부탁해

05. 바람을 일으키다

06. 우린 곧 알게 될 거야

07.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08. 서라벌 호프 (Feat. 강아솔)

09. 사랑의 네비게이션

10. 리버 피닉스



여성 뮤지션들의 약진이라는 표현은 홍대 앞 블루스의 대두라는 표현만큼이나 구태의연하거니와, 사용하는 이들의 식견과 인식을 의심케하는 구석이 있다. 음악은 언제나 세상에 존재하며 울림을 주고 있고, 뮤지션들은 음반을 발표하고 또 누군가들은 새로운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에만 '늑대들' 사이에 다시 홀로 돌아온 오지은이 있었고, 어여쁜 곡을 안 써도 되는 자유를 얻은 듯한 한희정이 있었거니와 수작 이상의 평가를 하지 않으면 눈치를 줄 듯한 분위기의 장필순의 신작도 있었다. 



여성 보컬들의 목소리엔 제각각의 바람이 분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하곤 한다. 시와의 한산하면서도 툭툭 끊어지는 결을 지닌 목소리도 있고, 반면 강풍기를 탑재한 듯한 김윤아의 목소리도 있고, 이처럼 다양한 모양새의 바람이 각자의 음반 안에 맴돈다. 이아립도 자신만의 바람결 목소리를 지닌 싱어다. 왠지 남자인 나조차도 '언니'라고 불러야 할 듯한 독특한 자리매김도 그렇고, 스웨터와 프로젝트 듀오 하와이를 거쳐와 CD를 꺼내기 위해선 조심해야 하는 솔로반들의 이력에서까지 이아립은 차분히 여기까지 닿았다.



신작의 분위기를 규정하는 멘탈(?)은  4번곡 「뒷일을 부탁해」로 대표된다. 어쿠스틱 사운드가 주조를 이루는 여유로운 분위기는 여전한 채 「서라벌 호프」등의 강아솔의 피아노가 그렇듯, 음악 친구들의 세션이 곳곳에 박혀 있다. 이런저런 무대에서 같이 해 온 기타리스트 조정치의 조력이 「두 눈에 비가 내린다」에 눈에 띄고, 듀오 하와이에서 같이 활동한 이호석의 존재 역시 편곡에서 돋보인다. 홀로 땀 흘리며 세공한 이전의 정성도 좋았지만, 이런 '부탁한 뒷 일'의 결과물도 좀 더 좋다. 덕분인지 「뒷일을 부탁해」는 탄력 있는 피아노 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게 되면서도, 가사가 주는 괜한 일상적 뭉클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상상력 보다는 일기장 언어에 가까운 「등산」, 러브 발라드에 육박하는 「서라벌 호프」등의 곡들이 여러 일면을 보여주는 가운데 「사랑의 내비게이션」의 가사와 분위기는 다소 간지러운 구석이 있긴 하다. 창작자 자신이 락 편곡에 대한 의욕을 비췄던 「우린 곧 알게 될 거야」도 그렇지만, 내겐 「사랑하지도 않으면서」도 비슷한 방향으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더불어 들었다. 다음 음반에선 '부탁한 뒷 일' 더미를 만들어서 좀 더 일을 크게 벌여도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 이아립만의 바람결 목소리는 어떤 편곡에서든 명징하고 산들하게 불어올 듯 하다. [131005]



+ 음악취향Y 게재 : http://cafe.naver.com/musicy/18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