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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동 단편선 『처녀』

trex 2013. 8. 22. 23:00




회기동 단편선 『처녀』

비싼트로피 레코드 | 자립음악생산조합 / 2013년 6월 발매



01. 공

02. 노란 방

03. 언덕

04. 전통

05. 이쪽에서 저쪽으로



비싼트로피 레코드의 대표인 박정근씨는 2013년 8월 22일 수원지방법원 형사3부 선고공판에서 '전부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대법원 상고가 예상되긴 하지만, 한층 홀가분한 소식이었다. 눈물을 보였다는 본인의 트위터 고백도 있었고, 이제 발이 풀린 셈이니 하고 싶은 일 좀 하고 싶다는 인터뷰 기사도 보인다. 묶인 발의 형편 안에서도 박정근씨의 온라인/오프라인을 오가는 활동은 활발해 보였고, 그 애쓴 씩씩함이 사람 입을 다물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회기동 단편선의 음반 『처녀』 역시 박정근이 그간 해온 이력의 증거이도 하다. 



그의 카메라에 잡힌 '두툼한 육체'의 여장차림 단편선은 에로틱하기 보다는 전작 『백년』에 담긴 사운드들의 의인화 같이 음습하고 묵직하고.. 무엇보다 처연한 아련함이 있다. 외면하기 힘들게 매번 뒤돌아보게 만드는 불편한 매혹, 그럼에도 가까워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그런 모습. 아무튼 1년만에 신작을 들을 수 있을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어느샌가 '만파식적'이라는 밴드를 결성해 번외 활동을 보여준 바 있었고 그와는 별개로 31여분에 달하는 본 EP를 내놓았다. 이 음반이 발매된 후부터 지금까지 날씨는 들끓었고, 그의 목소리 역시 예의 변함없이 뾰죽한 발톱 달린 성대인양 앙칼지고 때론 끓고 있다.



라틴풍의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에로틱한 열정의 기운보다는 중첩되는 보컬과 불길한 기운을 내세운 첫 곡 「공」을 필두로, 타악기와 신디사이저 등으로 얼기설기 엮인 환상성을 표현하는 「노란 방」은 수수께끼 같은 가사로 작가의 의중을 궁금케 한다. 도저하게 깔린 시대의 불안함을 표상하는 것일수도 있고, '사람답게 사는 사람' 같은 가사는 아예 비유가 아닌 직언일수도 있겠지만 그런 쉬운 문제를 애초에 낼리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전작의 「이상한 목」처럼 대상을 짐작하는 것 자체가 이미 진 게임일수도 있겠다) 



이어지는 3번곡과 4번곡은 각각 8분에 육박하는 뼈대를 자랑한다. 「이상한 목」은 헤비메탈과의 근친성을 보여주는 장관을 보여주었지만, 「언덕」은 기타와 목소리만 가지고 펼쳐내는 사이키한 풍경이다. 「전통」은 전작의 동명 타이틀 「백년」처럼 국악을 연상케하는 장치를 데리고 왔지만, 「백년」의 경우는 흔히들 표현하는 '정한'(情恨)의 정서를 의식적으로 따온 것이라면 「전통」은 집단이나 원시성의 모습에 가깝다. 덕분에 보컬과 백보컬은 가사를 씹어서 표현한다기 보다는 주술에 근접해간다. 『백년』보다 조금 더 무서운 음반을 사서 들었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은 이때부터다.



예쁜 실로폰 소리 동동거리고 멜로디언이 흐물대는 마지막 곡 「이쪽에서 저쪽에서」은 그나마 '포키'의 노래에 가까운 노래다. 물론 데모 음반 『스무살 도시의 밤』시절의 '예쁜' 목소리는 재현되지 않지만 말이다. 안팎의 활동으로 인해 단편선은 '땀방울 송글송글한' 뮤지션이자 맨발의 퍼포먼서이자 고운 머리결 활동가이자 온라인 '개드리퍼'로 다양하게 비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근작 두 음반을 통해 보여준 복잡한 국면은 웃음 대신 이맛살을 접으며 심사숙고케 하는 매력이 있다. 화보는 여전히 4초 이상 못 보겠지만. [130822]



* 크레디트 *



Recorded, Mixed by 이상우 @ 좆밥 프로덕션

Photo by 박정근

Design by 김성구



- 음악취향Y 게재 : http://cafe.naver.com/musicy/17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