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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중문화의 추천 조각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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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중문화의 추천 조각들.

trex 2013. 12. 14. 11:19


격랑 치던 2013년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말이 마무리지만 이 격랑은 다음 해 첫해가 중천에 뜨더라도 잦아들진 않을 듯합니다. 그러다 오붓한 설날 친지들의 모임 자리에서 난데없이 종북이라는 몇몇 ‘개새끼’들의 이름이 호명되겠지요. 참 심란하지 않습니까? 이런 걸 보면 지금이 해방 공간이나 전후 공간과 뭐가 그리 다를까도 싶어요. 어르신들의 첨예한 대립각은 여전하고 시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비하면 이렇게나마 푸념하는건 지나치게 배부른 호사스러운 일입죠? 모든 것이 제로(O)의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했던 박토의 시간대와 달리 지금의 우린 대중문화의 호사를 누리고 있으니 말이죠.


그렇습니다. 대중문화. 말초적이라고 공격을 받지만 우릴 따스한 혀로 핥아주는 온기를 지닌, 매번 꿈틀거리는 그 무엇들. 그것들로 인해 잠시나마 피곤한 뉴스들과 이합집산의 쟁투거리를 만드는 존재들을 잊고 위로받습니다. 물론 창밖을 열면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엄중한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우린 외면해서도 안될 테고, 종북이라는 이름의 ‘개새끼’들로 얼룩진 어른들의 언어와 인식을 풀어야 할 테죠.(가능할까요?) 이 전제를 잊지 않고, 올해 저를 즐겁게 해준 대중문화의 조각들을 잠시 나열해 봅니다.

 


(1) [바람이 분다]는 본지에서도 기대와 우려의 대상이었습니다. (http://daasi.net/?p=1697 : 바람이 분다에 부는 바람들에 대한 바람) 실제로 관람해보니 가히 장관이더군요. 2D 셀 애니메이션의 정성과 정교한 CG가 이질감 없이 화사한 색채에 어우러져, 결핵 환자 부인을 눕혀놓고 담배를 피는 정신 나간 사내의 비행체에 대한 집착이 시종일관 이어지더군요. 아연했습니다. 제게 이 작품은 전쟁 찬양과는 거리가 아득히 멀어져 보였습니다. 대신 이해할 수 없는 한 남자의 비행에 대한 탐미적 감각이 노장의 연출력에 의해 충실히 그려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환상적이었고 한편으론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쩔지만 거지 같다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기분?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든 연출가의 마음 속 풍경이 어떤 모양새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국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책은 제법 나온 터이고, 제가 소개할 책도 소위 ‘미야자키 하야오 컴플릿 박스’격은 안되는 책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미야자키 하야오 저 / 황의웅 역 /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는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력 전반기를 다룬 [출발점 1979-1996] 1권과 <원령공주>와 <벼랑 위의 포뇨> 까지의 경력을 다룬 [반환점 1997-2008] 2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작품 비평과 작품을 만드는 해법이 궁금하시다면 다소 경기도 오산? 그의 육성과 여러 인터뷰를 읽고 싶으시다면 어느 정도 맞으실 겁니다. 한 애니메이션 장인의 이력과 말들이 두 권에 책에 나눠 실려 출간한다는 것 자체에 한국에선 진경 아닐까요. 그가 직접 그린 그림 등은 일종의 덤이고, 텍스트에 파묻히고 싶으시다면 귤 봉지와 함께 준비하십시오!


 


(2) 아라카와 히로무의 전작 [강철의 연금술사]는 저에겐 다소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비슷한 소년 연령대 대상 작품이면서도 긴장감을 덜어주는 가벼움과 세계관의 무거움이 동시에 존재학고, 흔한 파워 인플레이션([드래곤볼]로 대표되는 챔프 계열 만화에서 죽 이어져 온)도 없이 볼만한 활극을 만든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공정하지 못한 발언인 것을 알지만,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도 저에겐 이 작품을 호의적으로 기억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아, 질질 끌지 않고 종료했다는 점도 가산점입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종료 이후 잠시 선보인 [백성귀족]에서 보여준 개인사 이야기는 이 작가의 새로운 일면이었죠. 농경 예찬, 노동 예찬, 가족 긍정까지 좋은 에너지가 엉킨 작품이었습니다.

 


그 연장 선상에서 연재되는 [은수저](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 학산문화사)는 소년물이되 활극은 아닙니다. 개그감은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다사다난한 농경의 풍경과 학원소동극을 적절히 배합시킵니다. 작가의 전작 [강철의 연금술사] 캐릭터 디자인을 일부 다시 빌려오는 귀여운(?) 애교도 일품입니다. 연애와 진로, 열혈류의 스포츠물 같은 소재를 즐겁게 그려내고 있고 무엇보다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진하지 않는 효과적인 연출이 좋습니다. 귤 봉지가 더 필요하실 듯하네요? 현재 8권까지 출간 되었습니다.


 


(3) 연말 하면 음악이죠. 거리는 시한부 캐럴들이 행인들의 귀를 휘감고, 월말이 되면 한 해를 결산하는 TV 음악축제와 시상식들이 시청자들의 하품을 유도합니다. 근사한 음악들은 사계절 언제든지 곁에 있었건만 우리는 바빠서 쉬이 놓치곤 했습니다. 핑계 삼아서라도 밀린 음반들과 음원을 이참에 정리해 봅니다. 어떤 곡들은 이 시점에서 새삼 들리시진 않던가요?



김예림의 [Goodbye 20](씨제이이앤엠 | 2013년 11월 발매)는 이미 그녀가 올해 발표한 두 장의 미니 음반 [The 1st Mini Album : A Voice]와 [The 2nd Mini Album : Her Voice]를 묶고 두 곡의 새 곡을 담은 정규반 형태의 음반입니다. 이미 두 장의 타이틀에 적혀있듯 김예림의 가장 큰 가치는 ‘목소리’입니다. 가수라고 불리는 이들 모두는 목소리라는 고유의 바람결, 또는 자신만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만 김예림은 보다 특별한 듯합니다. 올해 들은 목소리 중 가장 기억될듯 합니다. 물론 두 장의 다른 음반을 묶다 보니 신곡으로도 해결 안 되는 문제, 구성력의 단점이 이 음반에는 있습니다. 아무래도 별도로 제작된 한 장의 정규반으로는 들리지는 않는단 말이죠. 음원 판매와 단타력 있는 미니 음반의 융성 시대에는 이런 쌉쌀한 뒷만은 자주 감내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걸출한 싱글들은 그래도 위로를 줄 것입니다!


귤 봉지 속에 이제 귤 껍질만 남았다면, 이제 밖을 나서 눈 덮인 거리를 좀 걸어볼까요? 마음 속 결산은 아직 끝나지 않았네요. [131213]




* 웹진 다:시 게재 : http://daasi.net/?p=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