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안녕, 魔王 : Epilogue]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본문
* 웹진에서 신해철 타계 이후, 추모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그리고 오늘 마무리 되었다. [링크] 기존 정규 디스코그래피를 비롯, 몇몇 아티클로 구성중이며 나는 그중 3꼭지 정도를 적었다. [안녕, 마왕] 운운하는 타이틀은 나도 맘에 안 들지만, 아무튼 시리즈 전체 잘 읽어주시길...
[안녕, 魔王 : Epilogue]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그 날은 월요일 저녁 9시가 넘어서였습니다. 머릿속을 짓누르는 걱정이 있었지만, 당신에 대한 지분은 크지 않았습니다. 원래 일상을 부둥켜안고 산다는 게 그러하듯이, 보람과 기쁨 한 숟가락과 걱정 한 포대가 공존하고 있었지요. 그럼에도 편의점을 다녀오는 길에 지인에게 받은 문자 한 통으로 아연한 실감은 공포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당신이 이제는 더이상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육신의 흔적들은 아직 남아 있되 음악 하는 당신, 입담을 푸는 당신, 병석에서 아파하는 당신, 회복되어 온건한 당신은 이제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과 100 사이가 오가며 가능성과 실망감이 교차하던 당신과 우리 사이의 현세는 이렇게 0으로 마지막 파국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방문한 영안실 건물 1층에서 당신의 모습이 실린 안내 사진을 보는 순간, 전 그 0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BGM
10대에서부터 곧 40대에 진입하는 지금의 나에게, 당신의 음악은 어쨌거나 인생의 배경음악이었습니다. 「Turn off the T.V」(1992)의 “세계 최고 동양 최대”는 교실 학우들과의 우스개 신호에 불과했지만, 대학 1학년 홀로 자취방의 카세트로 처음 들었던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1994)에서부터 사정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 /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 친구들과 경쟁하며” 중 1/3만 실천해 온 학창 시절이었지만, 이 가사가 제 심중을 겨냥해 발사한 본격적인 신호탄은 대학 생활 초입에 ‘늦은 중2병’의 후유증을 앓게 했습니다.
입대 후 야간 탄약고 경계근무를 마치고 들어온 조용한 밤, 내무반에서 선임들이 잠에서 깰세라 최소한의 음량으로 들었던 「절망에 관하여」(1996)가 안겨준 실감나는 절망감은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 곡 하나가 남은 군 생활을 버티게 된 힘이 되었다는 거짓말을 적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명백히 고통은 고통일 뿐이고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입니다. 다만 그 곡(과 함께 병장 시절 본, 넥스트 해체 기자 회견 같은 일들)이 남긴 그 시절의 명징한 기억은 아마 인생의 끝까지 안고 갈 끈덕진 유산일 것입니다.
연극 속(또는 바깥)에서
그런데 당신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직접적이 되어 갔습니다. 「The Pressure (압박)」(2000)에서“나가 뒤져 버리든 말든 / 네가 죽을 용기가 있냐?”라고 묻던 당신은 「개한민국」(2004)에서 “남편은 애 엄마를 패고 선생은 학생들을 패고 / 의원님은 지들끼리 패고 패라 패라 뒤질 때까지”의 영역까지 나가더군요. 전 그런 당신이 싫지 않았습니다. 매미와 민물장어로 대표되던 개인과 세계 사이의 긴장감은 이후 ‘껍질을 파괴’한 후, 성난 분노를 외벽으로 감싸고 돌진하는 극단의 전형을 보여주더군요.
당신의 솔로 2집에 있던 「The Greatest Beginning」(1991)를 처음 들었을 때 흡사 그렘린처럼 변조된 다이얼로그를 들으며 당시 저는 웃었습니다. 그 ‘시퀀스 하는 아이돌’은 미소와 대본을 강요하던 환경과 세계의 압력에서 벗어나려 노력해 왔고, 어느샌가 이 땅을 「현세지옥(現世地獄)」(2004)이라 명명하는 개인적 주체로서의 어른이 되어 있었지요.
당신은 그 가운데서도 부인을 떠올리며 만든 노래라며, 발라드를 만들기도 했고 (「Last Love Song」) 부인과 가족도 모두 편히 들을 수 있는 음반을 꾀하기도 했습니다. (『The Songs For The One』) 하지만 당신이 극히 개인적인 음악으로 숨통을 틀 때, 저는 잠시 반감을 품기도 했습니다. 연극 무대로 비유되는 거대한 세상과 그 내부에서 벗어나려는 탈주하는 개인으로서의 긴장감을 연출할 때, 당신이 가장 빛났다는 것은 저만의 생각이었을지요. 그런 ‘가혹한 왕관’을 팬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머리 위에 굳이 씌우려 했던 것은 아닐까 문득 생각해 봅니다.
굿바이, 미스터 트러블
한편, 당신은 자신의 숨통을 음악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틔기도 했습니다. 밤의 DJ로서 당신은 남녀노소의 음침한, 하지만 화통한 친구이기도 했고 토론 프로그램 패널로서의 당신은 ‘지적 능력이 광대 노릇을 압도’하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한 것도, 지지한 당선자에게 실망감을 숨기지 않고 1인 시위를 자처한 것도 한 사람의 언행 안에서 나온 파격이었습니다. 공교육 붕괴를 말하였으며, 입시학원의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세상과 불화하는 순간들이 출몰하였고, 불화를 겁내지 않고 일일이 무언가를 답해가며 태도를 밝혀 왔습니다. 그 순간마다 팬이자 음악 듣는 사람인 저는 찬성하기도 했고, 반대하기도 했고, 당신이 일으키는 불화들을 괜히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불화를 반기거나 그에 중독되었거나 불화를 위한 불화에 탐닉해오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선대에 대한 존중을 숨기지 않았으며 - 부활, 신대철, 정태춘 등등 - 후진들을 걱정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음악 만들기의 감각이 둔중해지는 것을 최근엔 다행스럽게도 경계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욕을 자주 피력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0이 되었으나, 저는 그 0이 주는 황망함을 당분간 힘든 과제인양 풀지 못할 듯합니다. 인생의 BGM을 순간순간 부여하던 사람, 새로운 음악이 줄 흥분감과 실망 또는 상념의 허탈 중 어느 쪽도 예측하지 못하게 된 이 마당엔 더더욱 말이죠. 그것은 일종의 애증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론 당당히 실망감을 피력할 수도 없는 이 무기력함은 거대한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남은 일은 당신이 해왔던 일을 떠올리며, 사적이든 공적이든 반추하는 길 외엔 없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생전에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보낸 헌정곡의 제목이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와 저의 입으로 곱씹게 되었습니다. Good bye. Mr. Trouble 신해철. 명복을 빕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남은 인생 어떤 순간에도 다시는 만날 순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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