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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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올해의 음반 12장

trex 2014. 12. 31. 22:24

- 2013년 12월 1일부터 2014년 11월 30일 국내반 발매작

- 무순입니다.

- 일부 음반들은 기존에 적은 글 재활용/가공일 가능성이 큽니다.




해오 (Heo) 『Structure』

세레머니 뮤직 / 미러볼뮤직 | 2014년 2월 발매


눈 쌓인 골목길의 아련함을 닮은 향수 취향의 1집과 달리 2집은 수록곡 「Good Day」의 후반부처럼 때론 고즈넉함과 산란함이 교차한다. 해오가 한때 프로젝트로 발매했던 스타쉽스의 넘버 「Luna」를 다시 제 손으로 재해석한 대목은 엄연히 변한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선언과도 같다. 바삭 말린 앰비언트의 기운으로 포문을 열고 포스트록과 프로그레시브를 경유하는 「Ride the Wave」의 지글지글함으로 이어지면 아연하고 행복해진다. 이 변모와 전환은 받아들이기에 따라선 금기된 것의 매혹과 폭력에 다가서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 류의 국면과 유사하게 보일 것이다. 아름다운 구축물이다.




할로우 잰(Hollow Jan) 『Day Off』

도프엔터테인먼트 / 오픈뮤직 | 2014년 3월 발매


1집의 마지막에서 '언.젠.가.다.시.되.돌.아.온.다'라는 울부짖음은 영겁회귀의 넋이 되어 귀환하였다. 이젠 회색빛 낯을 한 죽은 이의 목소리로. 그래서 상승하는 벅참보다는 일종의 제례 의식처럼 감정의 결이 매생이마냥 엉겨붙어, 마음이 축축해지는 음반이 되었다. 1집보다 훌륭한 음반이냐는 물음표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지만, 죽음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승하는 감정의 고조에는 설득될 수밖에 없다. 




언해피 서킷 (Unhappy Circuit) 『Just Waiting For A Happy Ending』

3단레코드 / 제뉴인뮤직 | 2014년 3월 발매


글리치한 사운드와 파시식하는 노이즈 사이에서도 명료한 건반음이 당신의 감수성 안에 끊임없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다. 마치 올해 발매된 게임 타이틀 [와치독스(Watchdogs)] 의 회상 장면처럼 군데군데 절단되어 있고, 훼손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듣는(보는) 이의 집중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섹스도 있고 멜랑콜리도 있다. 온건한 음악이자 좋은 음악이다.




아이러닉 휴 (Ironic Hue) 『For Melting Steel』

미러볼뮤직 | 2014년 3월 발매


초반은 1집의 포스트록의 성향과 어느 정도 선을 긋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오해」를 들으며 이 곡을 한 번 더 듣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사는 '과학의 바람'을 말하고 있었지만, 신체 한쪽에 생체적인 바람이 분다는 기분이 들었다. 표제곡 「For Melting Steel」의 가사 '녹아내리는 사람들'은 마치 이 바닥 위의 모든 사람, 피해 입은 이들/피해 입은 이들의 가족/피해 입은 이들의 지인들/연루자/주시자/그 외 모든 이들을 일컫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주술의 기운은 핑크 플로이드 등이 들려준 프로그레시브 록 장르의 익숙함에 온 것이기도 했는데, 이것저것 따지는 머리에 망치질이라도 하려는 듯한 「거짓말」의 노기에는 그저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작은사람」이 상기해준 내 입장의 누추함에 이르러선 울컥해지고 말았다. 작은사람'들'의 나라란...




루디스텔로 (LudiSTELO) 『Experience』

선데이디스코 / 미러볼뮤직 | 2014년 4월 발매


(언제나처럼 훌륭한) 솔루션즈의 신작도, 프럼 디 에어포트의 음악도 그랬듯이 일렉트로닉과 8, 90년대를 소환해오는 록 기타들의 조합은 언제나 귀를 끈다. (아직도 TV 옐로우를 발매된 그 해의 가장 좋았던 음반으로 기억하는 취향으로선 그렇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만든 이상한 음반'의 레이시오스의 주축이었던 일원들이 돌아왔다는 점에서도 반가웠고, 그때와는 다른 충돌과 합이 있어 앞으로가 기대된다. 공교롭게 「Sunset Of Your Sky」는 예전 생각이 나는 수록곡인데 반해 「Jungle Activity」, 「Edge Of The World」 등은 더 밀어붙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쏜애플 (Thornapple) 『이상기후』

해피로봇레코드 | 2014년 6월 발매


레퍼런스들의 내음이 느껴지지만, 이것저것 잘한다는 이유로 주목받았던 데뷔반에 비해 컨셉 음반의 응집력에 더욱 신경을 썼다. 관능적인 보컬과 베이스와 드럼이 만든 차진 리듬감과 파열을 주도하는 사이키델릭한 기타, 더 좋은 밴드로 발돋움하리라는 믿음을 주는 단서가 곳곳에 있다. 




피기비츠 (pigibit5) 『Mr.M.U.N.B.A』

헬리콥터레코드 | 2014년 6월 발매

(음반 실물을 결국 구매하지 못하여, 밴드의 사이트 http://pigibit5.bandcamp.com/ 를 통해 음원 구입)


선명한 멜로디 위에 1집보다 강조된 낡은 오르간의 빽빽하고 우렁찬 소리, 교란하는 바이올린과 관악, 노이즈 잔뜩 걸린 기타가 엉켜 기세 좋게 달리는 요란 복잡한 이 인디팝/록은 호오를 가릴지언정 잊기는 힘들 것이다. 해독하기 힘든, 그러나 무언가 오타쿠 감성과 성적 코드의 고명이 수북하게 얹어진 가사는 또릿또릿 들리고 상상력을 자극한다. 게다가 1집보다 2집은 치기 어림과 복잡한 연출을 더욱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음도 보여주고 있으니 역량 레벨 업!




글리터링 블랙니스 폴 (Glittering Blackness, Fall) 『Untitled』

일렉트릭뮤즈 / 워너뮤직 | 2014년 7월 발매


트랙들의 번호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그들의 첫 번째 음반의 연장선이다. 가사라는 요소와 제명이 상기시키는 정서상의 단서마저도 배제한 채 묵직하게 연주로만 밀고 나간다. 이 불친절함 때문에 밑 입술이 삐죽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공포의 힘은 한때 주목했던 ‘더 히치하이커’에 미치지 못할지언정 공기의 중량감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언체인드 (Unchained) 『가시』

진저레코드 / 미러볼뮤직 | 2014년 8월 발매


엉뚱하지만 얼터너티브 전성기 당시에 장르를 차용해 왔다고 자임하며 ‘잔인한 너’ 어쩌고 하는 구절을 부르던 밴드 등이 떠오른다. 헛된 일이었다. 그 당대는 2014년이 되어서야 정갈하게 재현되었다. 그것도 차용이 아닌, 이렇듯 당당하고 밴드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로 말이다. 무엇보다 첫 정규작이라 의욕이 넘쳐 과잉이 우려되었던, 어떤 부분에 대한 걱정마저도 접게 하는 말쑥함과 정돈됨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올해 발매된 노이즈가든 세트(?)와 가교를 잇는 이 웜홀의 짜릿함은 어디 가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자립생산 / 자체제작 | 2014년 8월 발매


내게 『동물』이라는 음반명은 차라리 단편선의 이전작 EP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동물이라고 호명하기엔 본작이 본능적인 기조보다는 밴드라는 조직에 걸맞게 마련된 치밀한 편곡, 서로의 파트가 들어오고 나갈 때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해온 계산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신곡의 비중이 기존 곡의 비중보다 현저히 낮은 아쉬움은 있지만, ‘만파식적’ 등 밴드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준 회기동 단편선이 얻은 결실이기에 그만큼 값진 구석이 있다. 




로로스 (Loro's) 『W.A.N.D.Y』

ORM Ent. / 미러볼뮤직 | 2014년 10월 발매


수년 전의 EP 『Dream(s)』에서 보여주었던 질주감의 가능성이 비로소 만개하여 확인되었다. 아름답고 격정적이고 극적이고 시리고 맴도는 온기를 감추지 못한다. 수록곡 한 곡 한 곡마다 주석에 관한 영상과 그림을 덧붙이고 싶을 만치 정서적으로 충만한 음반이자, 이들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앞선 음반. 




9와 숫자들 『보물섬』

튠테이블 무브먼트 / 소니뮤직 코리아 | 2014년 11월 발매


10장 결산하고 말까 했는데, 12장 결산으로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의 음반. 


이야기를 한참 겉돌자면 병영 시절 스매싱 펌킨스의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를 듣고 그 안에 담긴 드립팝, 슈게이징, 챔버팝, 인더스트리얼, 블랙 사바스 풍 헤비메탈 등으로 인해 풍족한 행복감을 느꼈는데, 이 나라의 음반에서도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했던 때가 있었다. 그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각각 다른 면모를 지닌 수록곡이면서도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기조의 연장선이자, 앞으로도 확장될 가능성이라니 이런 결과물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