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김일두 『달과 별의 영혼』: 메모장 위 삶의 무게. 본문
메모장 위 삶의 무게.
김일두 『달과 별의 영혼』
01. 하나 그리고 둘
02. 개미 모빌
03. 직격탄
04. 시인의 다리
05. 벙어리 피아노
06. 방랑자 (원곡 CR태규)
07. 정신병
08. 물보라
09. 바라던 바다
10. SBGR
11. 밤 불
12. 별이 뜨는
13. 숙명
14. Old Train
15 (Bonus Track.) Drunk old train
‘부산 중구의 어쩔 수 없는 천재’ 김일두의 첫 번째 음반 『곱고 맑은 영혼』(2013)은 김일두의 20대를 표상하는 소산물이었다. 첫 번째 CD는 서스펜스(Suspens) 활동 시기의 단면들을 고스란히 정리한 작업이었고, 두 번째 CD는 이것들을 다시 부름과 동시에 현재 자신이 지니어스(Genius)의 일원임을 모르는 이들에게 밝히는 포트폴리오였다. 사람들은 펑크와 포크 사이에 걸친 한 허름한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듣기 불편한 세상을 향한 발라드들은 사람들에게 불면을 부추겼고 목 넘길 술잔을 찾게 하였다. 2집 『달과 별의 영혼』에서의 강점이자 단점은 1집의 연장선을 보여주는, 달라지지 않은 음반 속 세계관의 풍경이다.
『달과 별의 영혼』은 20대의 기록 위에 얹은 30대의 기록이라 할만한데, 그게 완벽하지는 않다. 이 음반을 위한 곡 쓰기는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되기는 하였으나. 그가 밝히길 「개미 모빌」은 20대에 쓰인 곡이고 알려지다시피 「방랑자」는 CR태규의 원곡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일두 세계관의 2차선 국도 위에서 각 곡은 세상을 향한 들끓는 울분, 관조와 긍정, 사랑과 연민, 선지자의 언어와 주정뱅이의 장광설 사이들이 14중 추돌 사고의 수라장을 보여주고 있다. 완성도의 들쑥날쑥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시(詩)를 닮아가는 문장들과 조각조각 난 단어들의 조합은 음반 듣는 복잡한 심사를 부추기고 있다.
이는 평소 그가 말한 작법인, 생각날 때마다 무언가를 마주칠 때마다 기록으로 남기는 메모들의 결과가 아닌가 한다. 흩어진 단어와 문장들은 사적 경험과 맞물려 낯선 문장을 만들어낸다. (며칠은 쓰지 않은 바지 앞주머니 진갈색 지갑 안 땀에 절은 색깔별 종이돈을 꺼내어 / 살짝 가린 두 눈으로 거리 누런 외등운 본 후 태웠어. : 「시인의 다리」) 세상 누구보다도 수첩 안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 것으로 알려진 아무개가 발화한 바 있었던 “군 생활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군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는...” 이라는 문장을 기억하시는가. 이 같이 호응 관계를 알 수 없는 문장들보다 김일두의 가사가 더욱 유려함은 어떤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2집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대표 싱글 「개미 모빌」을 필두로 구도자로서의 화자의 이미지나 종교적 심상의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겠다. 신, 구원, 축복, 성당, 저승 꽃, 비구니, 주님, 생의 마지막, 운명. 사신 등의 단어를 음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지닌 음악 청자라면 “김일두가 김두수 등의 한국 포크 계보에서 어떤 맥을 이어가는 순간을 보았도다!”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김일두 특유의 기분 나쁘지 않은 싱거움이 나오는데, 「개미 모빌」의 나그네 화자가 인사를 건네는 ‘차 밑에서 언제나 열애 중인 / 내 동생 러블리 진들’은 사실 동네 고양이를 뜻한다. 교미 기간 고양이들에 대한 동네 형아의 애정의 혼잣말이 구도의 길을 떠나는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치환되는 작은 기적들.
굳은살 배인 손가락과 현의 떨림이 감지되는 날 것의 스트로크,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이 결코 잘 부른다고 할 수 없는 보컬, 이런 요소들은 여전히 김일두의 음악이 천상의 영역이나 형이상학이 아닌 땅 위의 음악임을 들려주고 있다. ‘삐조리’라 스스로 칭하는 음악인의 태도가 그러하고, ‘진실 없는 사랑은 타살’(「시인의 다리」)에서 들려주듯 진실만이 자신의 미덕이라 여기는 그의 답변이 그러하다. 이는 라모네즈(Ramones)에서 시작해 레너드 코헨, 자니 캐쉬, 김민기 등을 거치는 그의 취향과 철학, 장르적 경험이 합산되어 배출한 화학적 배설의 결과가 아닐까. (거짓말과 부질없는 것들은 꼭 바람과 같아 : 「별이 드는」)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인상적인 가사가 귀를 휘감는, 「직격탄」, 「벙어리 피아노」 등이 포진한 음반 초반보다 서정으로 물든 「밤 불」, 「별이 드는」 등이 있는 음반 후반의 긴장감은 다소 풀려있다. 물론 김태춘의 독설 뺨치는 로커빌리 컨츄리 넘버 「SBGR」과 영어 가사로 적은, 그리움과 순도 높은 욕정의 넘버 「Old Train」이 도드라지긴 하지만 객들이 자리 비운 주점의 적적함을 닮은 기분은 어찌할 수 없다. 메모장에 수북이 적혀있는 단어와 문장들은 달과 별이 있는 시간에 간택되어 노래가 되었고, 남은 잉여들은 해가 뜨는 숙취의 시간에 휘발되었을 것이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달에 130만원, 아니 150만원, 아니 180만원만 벌고 싶다는 음악인의 삶의 무게다.
그의 솔로 3집이 또 한 번 영혼을 거론할지 아닐지는 알 도리가 없다. 아무튼 그의 메모지 위에 꾹꾹 눌러 새롭게 적힐, 단어와 문장들이 부산 중구와 그의 삶이 가진 아슬아슬한 진실들을 차곡히 담을 것이라는 믿음만은 여전하다. [15/05/24]
★★★★ / + 음악취향Y에 게재 : (링크)
'음악듣고문장나옴' 카테고리의 다른 글
Single Out : 45회차 - 프리츠, 리츄얼리티 (0) | 2015.06.01 |
---|---|
Single Out : 44회차 - 김성규, 나팔꽃 (0) | 2015.05.25 |
Single Out : 43회차 - 아시안체어샷, 휘슬즈 (0) | 201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