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빌리카터 (Billy Carter) 『Billy Carter』: 사포 같은 질감의 몸통, 몸통 안의 엉킨 장르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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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카터 (Billy Carter) 『Billy Carter』: 사포 같은 질감의 몸통, 몸통 안의 엉킨 장르들.

trex 2015. 7. 29. 16:00

사포 같은 질감의 몸통, 몸통 안의 엉킨 장르들.



빌리카터 (Billy Carter) 『Billy Carter』





01. 침묵

02. LOST MY WAY

03. Time Machine

04. 봄

05. YOU GO HOME




 

한국에서의 블루스(록)란 단어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신촌블루스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블루스라는 단어가 여러 번 호명된 간만의 예시는 『블루스 더, Blues』(2012) 발매 당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우리는 한국에서 블루스(록)란 장르명을 가지고 명료하게 활동하는 일군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그들은 CR태규, 김마스타, 하헌진, 김대중 등의 이름이었다. (나를 포함한) 일부 글 쓰는 이들은 이런 일련의 태동이 앞으로 어떤 명확한 무브먼트를 낳을지, 아니라면 행여 한때의 모래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일일지 전망을 했고 작은 우려를 느끼기도 했다.

 

경박스러움은 세상만사 모든 일에서 경계할 일이다. 델타 블루스 등에 기반을 둔 이 남성 싱어송라이터들은 세상의 지면이 어떻게 떠들든 간에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 있고, 생존으로 현재형 답변을 하고 중이다. 어쿠스틱 스트로크음이 세상의 경박스러움과 진중함 사이의 선을 그을 때, 한편에선 어느샌가 좀 더 다른 소리인 까슬까슬한 일렉음이 2015년의 중반을 울리기 시작했다. 앞서 이 웹진에서 이야기된 바 있는 웨이스티드 쟈니스와 더불어 중요한 이름이 될 빌리 카터다.

 

이 두 팀을 동시 선상에 놓고 간혹 거론하는 이유는 별것이 아닐 것이다. 멤버 영입을 통해 3인조 편성으로 밴드의 모양새를 완성하였고, 힘찬 프론트 우먼(들)의 발성과 꽂히는 언어(가사)들이 우리의 주목을 낳게 한 동인이다. 무엇보다 블루스록을 기반으로 개러지, 펑크, 메탈 등 표면이 거친 음악화법을 통해 인상적인 첫 음반을 출시한 시의적절함도 그 이유일 것이다. 본작은 정규반이 아닌 EP라는 아쉬움을 즉각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그들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내보이고 싶었던 거의 모든 것들이 유감없이 담긴 작품이다.

 

관계, 또는 관계를 넘어선 세상 시국 모든 것의 언로가 막힌 형국을 가사로 그린 「침묵」은 첫 곡으로써의 인상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2인조 시절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요동치는 기타, 그리고 이 기타의 요동을 정리하는 드럼의 가세는 간략한 2부 구성의 마무리까지도 힘을 유지한다. 다만 타이틀곡일 뿐 「침묵」 한 곡으로 이 음반을 설명하는 것은 요령부득하거니와 사실 이어 포진된 넘버들이 좀 더 빌리 카터를 명확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두 명의 다소 다른 톤을 지닌 보컬이 번갈아 컨트리풍의 정서를 표현하는 「LOST MY WAY」나, 하모니카 연주로 로커빌리풍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내 레드 제플린 풍의 뇌쇄적인 하드록 정류장을 경유하여 후반부 휘황한 사이키델리아를 펼치는 이 음반의 핵심 「Time Machine」은 이 팀에 집중케 하는 동력원이다. 음반을 듣다 보면 이기 팝(Iggy Pop)이라는 키워드로 의기투합한 초창기 2인조가 메탈, 펑크 장르로 취향과 연대의 고리를 형성하다 영국 체류 동안의 경험치를 통해 지금까지 닿은 이력에 대해 여러 부분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초기 블루스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로 시작하다 기어이 교란의 고함을 지르는 「봄」에서 숨길 수 없이 내재한 밴드의 에너지나, 블루스록을 연주하는 개리지 밴드의 흥겨운 줄타기가 느껴지는 「YOU GO HOME」에서의 마무리 역시 여운이 만만치 않다. “안녕”이라는 내뱉는 곡 막바지의 다이얼로그에 글로 화답하고 싶다는 충동도 이 때문이다. 내일의 행보, 다음의 음반이 기대되는 팀이다. 한국에서의 블루스(록)라는 대의와 명제에 고민하기보다는 한 팀 한 팀의 존재에 긍정하는 것이 당장으로선 최선이거니와, 빌리 카터가 이 긍정에 부합하는 팀임은 확실하다.

 

8, 90년대부터 그나마 꾸준한 음악팬들의 지지를 받아온 (메탈)록과 그런지 류에 비해 블루스(록)와 컨트리/로커빌리 등은 한국에서 드문드문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락타이거즈 등의 밴드들이 있었지만, 그것은 계보라기보다는 시대별로 간혹 점 찍혀있는 존재들이었고 어떤 조류를 보여주진 못했다. 최근의 상황 역시 특정 장르에 대한 붐업의 가능성이 조심스레 보였으나, 음악인들의 생존 여부를 묻는 일들이 언제나 우선이 되었고 간혹 이렇게 귀를 확 잡아끄는 이들이 수면에 올라온다.

 

빌리 카터의 음악들 겉에 드러난 사포 같은 질감과 내적으로 엉켜있는 숱한 장르들이 지닐 가능성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표출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블루스록이라는 규정을 애초부터 벗어난 것일 테고 그 어지러운 광경들은 미리 기대되는 부분이 있다. 아무튼, 지금 당장은 이 음반을 들으시길. [15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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