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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니 (Pony)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 'Black Pony' 본문
포니 (Pony)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 'Black Pony'
trex 2015. 10. 14. 13:44'Black Pony'
포니 (Pony)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
검은 음반 커버 안엔 쓰러진 남자의 몸 위에 까마귀(아니, 멤버들의 인터뷰엔 독수리라고 했다)가 남자의 눈을 파먹고 있다. 근원은 있었다. 멤버들은 일찌기부터 홍대 꽃미남 밴드 수식어를 싫어했고, 사람들은 『Little Apartment』 (2012)에서부터 슬슬 변화의 징조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엔 몽구스 친구라도 해도 믿을법한 서두와 진행이 있었던 「너의 집」, 「누구의 방」 등의 곡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시의 봄」에서의 일렉트로니카는 청중들을 쾌락의 중심에 휘몰게 하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소외시키기 위한 듯이 들렸다.
여기에 밴드의 휴지기 중 멤버 일부가 프로젝트로 결성한 쿠메오 프로젝트는 칠아웃풍 라운지 또는 EDM으로 주요 멤버들의 관심사가 다른 방향으로 쏠렸음을 보여주었다. “모두 춤춰요”라는 태도보다는 개인의 무드를 중시한 이 분위기는 데카당스한 내음을 슬며시 풍기가다 『I Don`t Want To Open The Window To The Outside World』로 완연하게 굳어진 듯하다. 실상 그렇게 닮지 않은 음악들이나 개별의 여정을 따라 선을 그어보면 흐름은 엿보인다. 쿠메오 프로젝트를 건너뛰고 『Little Apartment』에서 바로 이어 청취하면 이 과정은 다소 ‘단절’로 보일 공산도 클 것이다.
그저 흔한 인트로 역할이라고 생각될 앰비언트한 첫 곡 「Ocean Song」은 이런 흐름을 생각지 않으면 흘려듣기 십상일 터이다. 연이어 뚝뚝 떨어지는 리듬의 타격감과 축축한 연주가 함께하는 「Pire」를 들으면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왜지. 이제부터 음반 제목이 새삼 신경 쓰인다. 게다가 마무리도 왠지 책임감(?)있게 매듭하지 않는 기분마저 든다. 이윽고 「Waiting For The Day」에 이르면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경쾌한 개러지 펑크와 ‘얼어죽을’ 청춘 운운 문장 전성시대의 포니가 아님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간대 밴드의 기타들이 마치 발명가라도 된 양 온갖 다양한 리프를 발명하는 마당에 「Seed Sizes」에서 포니의 기타는 뚝뚝 떨어지는 연주를 들려준다. 녹음은 로파이를 지향했고, 크라우트록의 양분을 먹었다고 토로한다. 한국이 아닌 범아시아적인 멜로딕함이 마지막을 장식한...다라고 엉망진창의 문장을 적으려는데 이곡 역시 무심하게 끝나고 만다. 대다수의 곡들이 이런 식이다. 동명의 영문 제명의 영화 《아비정전》에 바치는 듯한 「Days of Being Wild」는 퇴폐적인 보컬에 연주는 트립합 알약을 삼키며 허무주의 찬가 노릇을 하고, 「When Your Love Comes To Grave」는 그루브가 주는 운동성으로 몸을 슬슬 움직이게 할 줄도 안다. 이처럼 음반 수록곡들이 우왕좌왕인데, 이상한 뚝심이 음반을 딱 받치고 있어 감상에 있어 흔들림이 없다.
왜 이렇게 만들었지?라는 질문보다는 이 음반을 만들었을 실내 환경과 제조의 과정을 궁금하게 만드는 음반이다. 하프 스프링이 넘실대는 「Drunken Boat」의 아름다움과 강박적이고 규칙적으로 박힌 리듬과 흔들리는 비트, 무심한 보컬이 엉켜 교란을 일으키는 「Be My Evil」에 닿으면 아예 밴드의 이런 변신에 환호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음반 제목과 커버, 수록곡들의 프로듀싱이 혼연일체를 이뤄 음습함의 총합을 만들어냈다. 이런 마당에 개러지록 「Starfuckers」이 안겨주는 어긋난 일관성은 문제될게 아니다. 어긋난 일관성을 허락하는 음반의 포맷이라 이질적이라기보다는 한 밴드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복잡한 심사로 즐겁게 고통 받을 수 있다.
간혹 음악사에서 이런 음반들이 튀어나온다. 스매싱 펌킨스의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다음엔 『Adore』가 있었다. 대중들의 쏠린 기대감을 배반하는 이런 어긋난 음반들로 인해 대중음악의 역사는 다른 한 편으로 풍족해졌다. 데프톤즈의 『Around the Fur』 다음엔 누구나 기억하는 『White Pony』이 있었고, 밴드의 프론트맨 치노 모레노(Chino Moreno)는 이 음반부터 뉴메탈과 헤비니스의 영역 안에서 유명했던 밴드의 육체를 슈게이징, 포스트록, 드립팝 등의 요소로 확장시켰다. 음악 역사 안에서 이 인상적인 ‘하얀 조랑말’을 문득 떠올리며, 나는 괜시리 포니의 신작을 두고 ‘검은 조랑말’(Black Pony)라고 호명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151005]
★★★★
+ 음악취향Y 게재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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