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2016년의 상반기 국내 음반들, 10장 본문
- 2015년 12월 1일 ~ 2016년 5월 31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13 스텝스 『Venom』
도프엔터테인먼트 | 2015년 12월 발매
음반명에 걸맞은 사악한 면모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밴드의 역사를 담은 비타협적 태도를 끈질기게 견지하고 있다. 올드스쿨 하드코어에 연원을 둔 사운드는 메탈코어 조류가 난무하는 지금에도 유효함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뿌리와 근육으로 만들어진 헤비니스.
방백 『너의 손』
미러볼뮤직 | 2016년 1월 발매
백현진(또는 어어부) 음악이 지닌 삶의 비의와 운명적이면서도 누추하기 그지없는 비수의 순간보다는 더욱 포용 있는 내용을 담은 음악이 되었다. 그럼에도 어른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세션들이 가세한 연주의 온기와 사랑이란 단어에 삶이 함몰된 성인들의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음악들을 덜 끈적하게 만들었다.
키라라 『Moves』
자립생산 / 미러볼뮤직 | 2016년 2월 발매
깨끗하고 매끈한 음악들이 포진된 초반부는 춤의 욕구를 자꾸만 자극하다, 「Featherdance」에서 JINSHA의 기타 연주 소스를 자르고 붙이며 재조합하는 순간부터 키라라식 송메이킹의 진가를 발휘한다. 「Thunderbolt」, 「Swords Dance」가 이어지며 곡들은 점차 어여쁨을 지향하기보다 무겁고 날카롭고 까슬한 것들을 표현하고, 「Sleep Talk」에 이르면 야심을 담아낸 어떤 그릇이 놓인다. 만만치 않거니와 무엇보다 힘과 센스가 어우러진 잘 만든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다.
수상한 커튼 『3집 - 수상한 커튼의 1년』
CJ 뮤직 | 2016년 2월 발매
한 달에 한 곡씩 싱글을 발표해 1주년이 되는 달, 하나의 오롯한 음반으로 발표한다는 발상이야 전례가 있지만 적지 않게 도전적인 작업일 것이다. 이 성실한 여정에 어울리는 믿음직하게 들리는 보컬이 있고, 차분하게 일관적인 서정의 기록이 하나로 묶였다. 중요한 것은 지루하지 않거니와 재청을 필요로 하게 한다는 점이다.
위댄스 『Produced Unfixed Vol.3』
미러볼뮤직 | 2016년 3월 발매 (아이튠즈로 구매)
위댄스는 하나의 수수께끼다. 관람하러 온 대중보다 한 발짝 앞선 흥을 가지고 춤을 추며, 때론 구성지게 때론 치밀하게 일렉트로니카와 그루브한 록이 교미한 음악을 들려준다. 물론 보는 이를 처음엔 당혹케 하는 춤사위는 여전하다. 그게 하나의 정규음반의 형태로 오롯하게 나왔다. 무대도 인상적이지만 음반이 준수해서 소유의 기쁨이 크다. 인삼껌 맛이 나는 가사도 다시 곱씹을 수 있고.
레인보우99 『Calendar』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미러볼뮤직 | 2016년 3월 발매
한국의 지도를 펼쳐보고 예수의 꺾인 허리를 상상하는 이도 있고, 웅비하는 호랑이의 몸짓을 떠올리는 이도 있고 토끼를 상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난 한국의 지도를 펼쳐보면 온통 보이지 않는 멍투성이가 언뜻언뜻 보이는 듯하다. 레인보우99는 그렇게 멍든 곳, 멍들지 않은 곳 등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채집하고 여정의 증거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가 만든 사운드의 점묘들은 내 청취의 의도와 달리 애초에 정치적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들리길 원하는 입장도 아닐 테다. 그래도 내겐 정치적이고 당대적인 올해의 일렉트로니카로 읽혔다. 이건 과민일까 자만일까 오해일까.
전범선과 양반들 『혁명가』
두루미레코드 / 소니뮤직코리아 | 2016년 3월 발매
철학자 이진경은 이명박 체제 당시 발간한 그의 책 『뻔뻔한 시대, 한 줌의 정치』(2012)에서 지배계층의 가치와 사고방식에 반하는 ‘소소하고 미천한’ 것들의 정치적 존재와 활동을 긍정한 바 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듣자마자 자연히 그 책 안의 몇몇 문장들이 떠올랐다. 칼칼하게 끓는 전범선의 목소리에 실린 항거와 축제 사이에 자리한 서사, 노도 하는 연주, 당대의 상황들, 하드록 장르가 들려주는 고색창연의 즐거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언어 사용을 의도적으로 뒤집은 상황 등이 뒤섞인 이 혼란스런 마당극들을 난 그저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향하는 컨셉에 부합하는 음반 아트워크도 인상적이었다.
단편선과 선원들 『뿔』
미러볼뮤직 | 2016년 4월 발매
전 멤버 권지영의 바이올린은 교란과 공격성이 도드라졌었지만, 장수현의 바이올린은 더욱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듯하고 그게 곡들의 축제다운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피처링을 고려하는 등, 천방지축 무서운 짐승 같았던 1집에 비해 심지(뿔?)를 가지고 신중한 태도로 송메이킹에 임한 듯하다. 「이상한 목」은 원저자의 의도와 달리 내겐 솔로반 쪽이 여전히 좀 더 취향이긴 하다.
파리아 『One』
타운홀레코드 / 미러볼뮤직 | 2016년 4월 발매
블라스트 비트의 낙석이 소나기처럼 내리고, 찬미와 위로의 단어장 반대편 세계의 저주들이 밀도 있게 쏟아지는 이 어두운 펑크와 메탈코어의 융합 안엔 자비란 없다. 척박한 한국의 지형도 위에 블랙큰드 하드코어의 첫 알박기를 시도하는 밴드, 하지만 당연히 이들은 토지대장 서류에 어떻게 기재될지 따윈 관심이 없을 것이다. 슬럿지와 스토너로 대변되는 최근 몇 년간의 경향 후, 한국 헤비니스가 소수 성과에 의해 사람들 사이의 소문도 없이 진일보하게 되는 또 한 번의 컬트스러운 과정이 진행 중.
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미러볼뮤직 | 2016년 4월 발매
아이러닉 휴의 「For Melting Steel」(2014)은 일종의 예견이었고, 줄리아드림의 본작은 후일담일 것이다. 전자는 재난과 참사의 예고가 되었고, 후자는 침통한 비극의 기운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자리의 기록이 되었다. 「만선」에서 블루지하게 도입을 연 기타는 이윽고 세이렌(The Sirens)이 되어 거대한 검은 바다 안에 힘없는 육신을 삼켜 버린다. 마지막 25초를 남겨두고 이윽고 장중하게 확장되는 이 사이키델릭 록은 해일이 되어 청자를 집어삼킨다. 짧은 도입부와 긴 곡들이 배치된 컨셉 음반의 형식에 더블 음반의 외형이라는 현실착오(!)적인 야심이 밴드의 전작조차 압도해 버린다. 꾸준한 행보가 곧 발표할 싱글에서 어떻게 이어질지도 실시간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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