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너의 이름은.] 본문
대중적 성공작 앞에 우리는 작가의 사적 공적 전력을 늘여놓고 싶다. [너의 이름은.] 역시 그런 유혹을 떨치기 어렵다. 피치 못하게 시간대가 어긋나 버린 남녀의 소통과 도구라는 저메서 [별의 목소리]를 닮았고(일본식 핸드폰의 이메일[문자]은 이제 아이폰의 네이저 라인 재팬으로 대체되었다), [별을 쫓는 아이]처럼 현세와 다른 세계의 환성성을 구분짓는 대지와 물의 존재가 있고, 우리는 결말을 보면서 [초속5센티미터]처럼 갈라진 남녀가 결국 먼 거리의 교차를 나누고 맺어지지 못하는 것인가 [언어의 정원]처럼 여운이나마 남는 결합의 여지를 볼 것인가 기로에 서기도 한다. 남자 주인공 타키의 "여기서 난 뭘하고 있는거지?" 되묻는 장면에서 [초속5센티미터]의 다 내려놓은 도시 청년의 체념 같은 것조차 느껴지지 않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와 다소 호소다 마모루 같은 경쾌함이 빚어져 [너의 이름은.]은 엮어진다. 이성의 성감대를 만지작대는 일본 청춘 애니의 에로스가 있고, 붉은 실로 엮어진 익숙한 인연론이 토대를 이루고, 실과 베틀로 대변되는 전통성에 대한 회고 취향이 있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는 전통에 대한 애착을 보인다기 보다, 도심의 지하철 문과 시골의 미닫이 문을 자주 보여주며 어떤 공통적인 요소의 반복을 즐기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지진에 대한 상흔과 징후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의 묘사까지.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고민하며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모처럼 흥미로웠다.
물론 그 흥미를 밟는 것은 별반 큰 개선이 보이지 않는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아닐까. 지금 현재 가장 흥행가도에 오른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형이 이 정도 수준 정도에 이르렀구나 하는 밉살스러운 심술이 자연히 드는건 사실이다. [괴물의 아이]로 주춤해 보였던 호소다 마모루, 낡아 보이는 가치관으로 아이폰 세대를 정공으로 찔러버린 후 앞지른 신카이 마코토. 이들 일군의 창작자들이 앞으로 보여줄 성취, 또는 뒷걸음은 앞으로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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